때는 3.1 운동의 물결이 아직 가시지 않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 무렵이다.
중국 만주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휘하던 한 지하 단체의 젊은 지도자들은 그들의 거처를 알아내고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 경찰들에 의해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모두 체포되었다.
당시는 감옥에 독립운동가들을 같이 가두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감옥에 갖혀서도 서로 대화를 나누며 끊임없이 외쳐대는 독립과 애국심에 일본 순사들이 지쳐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따로 가두어놓고 일일이 독방에 배치시키는 등 감시가 심했다. 아예 한국말을 잘 하는 일본인 순사를 배치해 한국어가 나오는 족족 감독을 해서 한 자라도 독립에 관한 이야기가 입에서 튀어나올 경우는 가차 없는 고문이 이어졌다.
때문에 한 젊은 독립투사는 처음으로 동료들과 떨어져서 깜깜한 방 한 켠에 가두어졌다. 만주 감옥은 제국주의에 눌려 인권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곳에 동료들과 떨어져서 갖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젊은이는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이대로 모두가 생사를 알 길 없이 죽거나 사라져 버린다면 고생 끝에 이루어 낸 이 지하단체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순사 한 명이 이 젊은이를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종이와 먹, 벼루와 한 자루의 붓이 들려 있었다. 옆에서 보좌를 책임진 총을 든 군인 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철컹~!"
감옥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그제서야 그 젊은이는 고개를 들었다. 가늘지만 야비한 미소를 띄고 있는 순사가 갑자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자네, 살고 싶지 않나?"
젊은이는 대답이 없다.
"물론 살고 싶겠지. 흐흐, 그게 인간의 심리니까. 하지만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더 쉽다고 하지 않았나? 이 총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모르게 넌 온데간데 없는 시신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순사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젊은이를 노려보았다. 젊은이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누구나 기회가 있지. 자, 선택해라. 위대하신 천황의 명을 받들어 위대한 대일본제국의 식민이 되어 남은 여생을 편히 살겠느냐, 아니면 저 미련한 조센진들과 한 패가 되길 택하여 아까운 목숨을 내놓겠느냐?"
젊은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서 약간의 흔들림만은 감지할 수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이 감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보고픈 가족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도 있을지 모르는 둘 도 없는 기회다.
"자, 붓과 종이를 줄 테니 너의 새 이름을 적어라. 그 순간 너의 인생도 새로워질 것이다."
여전히 비열한 웃음을 띈 일본인 순사가 그에게 붓과 종이를 내밀었다. 옆에 서 있던 보초병을 시켜서 먹도 갈아주었다.
"선택은 네가 해라. 자, 어서 적어!"
젊은이는 종이와 붓을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말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가족들이 보고 싶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그의 결정을 쉽게 만들지 않는다.
'아, 안돼! 이 빼앗긴 조국의 한을 겨우 내 목숨 하나와 맞바꾼단 말인가! 살아서 동료들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고민하는 젊은이를 보던 순사가 갑자기 보초병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잠시 후 나갔다 들어온 보초병의 손에는 새 옷과 신발, 그리고 약간의 노자돈이 들려 있었다.
"선택은 네가 하라고 했다. 이름만 적는 게 그리 어렵더냐? 저 새 옷을 입고 가족들의 품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순간 젊은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 그래. 이름을 쓰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자. 여기까지 와서 헛되이 목숨을 버린다고 나라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는 붓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먹이 갈린 벼루에 붓을 찍고 한 자 쓰려는 찰나였다.
'네 이놈! 네놈이 이 나라를 버리고도 떳떳하게 흙으로 돌아갈 성 싶으냐!'
젊은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젊은이의 아버지였다.
'너의 동포들이 굶주리고 피가 말려 신음을 하고 있는 참에, 겨우 네 놈 목숨 하나 구걸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하는 게냐? 총에 맞아가면서도 독립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장병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감옥에서 혀를 깨물고 조용히 죽어간 투사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아, 아버지! 제가 불효하고 불충하였나이다. 용서하소서.'
'그렇다면 지금 네가 그 종이에 써야 할 석 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렷다!'
젊은이의 눈이 갑자기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 눈에 놀라 순사의 입에서는 미소가 가시고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몇 초가 지났을까. 젊은이는 붓을 찍어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옳거니, 그럼 그렇지! 그렇게 간단한 것을."
한바탕 웃음을 쏟아내며 그의 한 자 한 자를 바라보던 순사는, 갑자기 일순간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씨 박 자(朴), 석 삼 자(三), 한 일 자(一)."
젊은이가 써 낸 이름은 박삼일(朴三一).
"무....무슨 뜻이지? 이....이게??"
갑자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순사의 표정은 한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순사의 얼굴 앞에 대고 그 젊은이는 한 문장을 내뱉었다.
.
.
.
.
.
.
"대한독립 만세!"
순사는 옆에 서 있던 보초병의 총을 빼들어 젊은이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총대가 사정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순식간에 젊은이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소리를 지르기는 커녕 오히려 가만히 당하면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한독립 만세."
그 때, 감옥 안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며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미국에서 파송되었던 선교사 한 명이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는 기겁을 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당장 그만 두지 않으면 본국에 보고하겠소!"
당시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던 미국과의 관계를 불편해 하던 일본이라 순사는 분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체 총을 내려놓았다. 젊은이는 이미 기절하여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신이시여, 죄 없는 자들이 핍박을 받나이다. 부디 도와주소서."
선교사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젊은이는 감옥에서 바꾸었던 그 이름 석자 그대로 평생을 살아갔다. 그는 한국 광복일의 산증인이 되었고, 독립운동의 공로가 인정되어 국가유공자로 선정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그는 대전 국립묘지 독립운동가 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의 비석에 새겨진 이름 석자 역시 본래의 이름이 아닌 박, 삼, 일 석 자로 표기되어 있다.
유머 게시판에 적절하지 않은 글이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위해 죽어가신 분들을 국경일이 아닌 평소에도 항상 생각하며 기리고자 실화를 토대로 각색을 하여 써봅니다.
실화는 바로 저의 증조부이셨던 독립운동가 고 박삼일 선생님이 중국 만주에서 겪으신 독립운동 일대기를 토대로 하였습니다. 대전 국립묘지에서 쉬고 계시는 증조부께 부끄럽지 않은 증손자가 될 수 있도록 타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미래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 귀한 터전을 위해 피를 흘리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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