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에 사는 김모(여·63)씨는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와 언니, 오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김씨가 두 살이던 1950년 6·25전쟁이 터졌고, 집안의 장남인 큰오빠(당시 18세)는 전선으로 갔다. 그해 오빠는 북한군과 전투하다 전사(戰死)했다. 김씨의 두 언니도 전쟁 중에 폭격으로 모두 사망했고, 아버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친마저 전쟁 후 자식을 앞세운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김씨의 어린 시절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전쟁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가족을 전쟁으로 모두 잃은 김씨는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2008년 4월 아는 사람으로부터 오빠가 6·25전쟁 때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소문 끝에 오빠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김씨는 그해 12월 보훈처에 전사자 보상금을 신청했다.
그런 김씨에게 지난 4월 24일 국가보훈처 로부터 통지서가 한 장 날아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고인(故人)에 대한 보상금은 5000원으로 결정됐음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고인'은 6·25전쟁 때 전사한 김씨의 큰오빠였고, 5000원은 오빠의 죽음에 대한 보상금이었다.
보훈처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6·25 전사자에 대해 이번 사건을 포함해 보상금 신청 3건에 대해 '5000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전쟁에 나가 죽은 혈육의 목숨값이 5000원이라니…"라며, 마치 모욕을 받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어떻게 국가가 전사자를 이렇게 예우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 국민권익위원회 에 이의를 제기했다.
권익위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이하 행심위)는 지난 16일 "보훈처의 5000원 보상금 결정은 부당하니 다시 검토하라"고 결정했다.
김씨가 처음 보상금 신청을 했을 때 보훈처는 "보상금 청구기간이 지났다"며 유족 인정은 물론 보상금 지급 자체를 거부했다. 현행법과 과거 폐지된 군인사망급여 규정에 따르면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전사 후 5년 안에 청구하도록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씨는 "큰오빠가 6·25전쟁 때 전사한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는데 어떻게 규정대로 할 수 있었겠느냐"며 2009년 창원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김씨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 "(김씨가 오빠의 전사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청구 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적잖은 6·25 전사자 유족은 "청구기간이 지났다"는 말만 듣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훈처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지난해 6월 김씨의 유족 자격은 인정했다. 문제는 보상금이었다. 김씨처럼 청구 시효가 지난 유족들에 대해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보훈처와 국방부 의 책임 떠넘기기가 시작됐다. 보훈처는 "현행법상 보상금 지급 기준은 국방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군인연금법상 보상금 지급에 관한 일체의 사항은 보훈처가 맡게 돼 있다"고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두 기관의 책임 떠넘기기는 1년 가까이 지속됐고, 결국 올해 4월 보훈처가 내린 결정이 5000원 보상이었다"고 했다.
이 결정에 대해 보훈처는 "과거 군인사망급여 규정에 따르면 김씨 큰오빠에 대한 보상금은 5만환이었다"며 "이 금액을 지금의 '원'으로 환산하면 5000원이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물가 상승이나 이자는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 화폐개혁 때 이뤄졌던 '10환=1원'의 교환 비율에 따라 단순 환산한 것이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과거 민주화운동 보상 차원에서 수억원 이상 보상금을 지급해왔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국군에게도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한다. 그런데 5000원을 보상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실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2000년부터 올해 4월까지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부상자 752명에게 4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1인당 평균 5300만원 꼴이다.
다른 관계자는 "간첩한테도 수천만원 이상 정착금을 줘 왔는데, 이런 식으로 6·25 전사자를 대한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2009년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1인당 '99엔(1300원)'을 지급한 사건과 비슷하다. 당시에도 일본 사회보험청은 "현행법상 당시 화폐 가치만으로 탈퇴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며 99엔을 지급했다. 정부 관계자는 "두 사례 모두 물가 상승 등 현실은 무시하고 규정만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보상 기준을 만드는 것은 고려할 사안이 많아 매우 힘든 작업"이라며 "두 기관이 책임을 미룬 것도,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권익위 행심위는 16일 "6·25 전사자 유족이 또다시 상처를 입는 일이 없도록 최근 보훈처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보상 지급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행심위 결정은 정부 내에서 구속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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