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하도 답답해서 그동안 고민 상담도 정말 많이 하고싶었는데, 무슨 얘길 어디서부터 할지 몰라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냥 여기에 올려서 모든 사람이 나의 상황을 알기만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올립니다. 아마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는 부분도 있으시겠지만... 그냥 넉두리처럼 올리는 글이니 이해해주세요. 읽어만이라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말을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모르겠어. 일단 싸우는 내용이 아닌 나의 진심과 사랑이 담긴 편지는 안쓴지가 너무 오래된것 같아서.. 너가 이 글을 믿을지 의심이 가기도 해.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하진 안을게. 나도 피차 잘한건 하나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개강 하자마자 정신없이 바쁘네. 결국 벌써 9월도 거의 끝이 나고 있어. 오늘 우리는 또 작은 싸움이 있었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점점 돌이킬 수 없도록 멀어지는 것 같아, 우리 둘 사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각자의 가족들로부터 상처입고, 사소한 말투나 행동으로 미친듯이 싸우고. 더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서 싸움을 만들 기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들은 모두 잘라내버리고 얘기를 하려니 이제 더이상 할 말 조차 없어진 기분이야.
내가 너의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다 한 글자도 듣고싶지 않듯이 너또한 우리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알고싶지도 않겠지. 일상의 대화에서도 언제나 조심 또 조심.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야.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 편히 행복하게 대화할 수도 없어. 지금 현재보다 미래가 나는 더 두려워.. 오롯이 나의 인생,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모두 뿌리치고 너와 함께 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나의 부모님, 이런 나때문에 더 큰 부담감을 안게될 우리 언니, 그리고 주변에서 수근대고 손가락질 할 부모님의 지인들, 이 모든게 날 붙잡아. 내가 하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폐륜이라고.
며칠 전에 자신의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한 소녀의 글을 읽었어. 이미 자신의 부모님께도 그 여자친구를 소개했고, 그 전에 커밍아웃을 했다고 해. 처음엔 엄청 싸우고 울고 그랬는데 결국엔 엄마는 그 딸을 이해해주셨대. 아빠는 엄마보단 쉽게 받아들여주셨댔고,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동생은 엄청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것 조차도 싫어했었대. 더럽다고. 하지만 여차저차해서 동생도 누나를 이해해주었고, 이제는 둘이 함께 동거를 하기 위해 서로의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글이었어.
그 글을 읽으며 나는 한낱 겁쟁이일뿐인건가 하고 생각했어. 잠시동안은 나도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맞서 싸우면 이해받을 수 있을지도 고민했어.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다른 한국의 엄마들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부정적이고 다른 사람이니까.. 괜히 섣불리 남들처럼 실행에 옮길수가 없었어.
정말로 너를 평생 못 볼 각오를 하고, 혹은 평생 부모님을 못 볼 각오를 하고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상, 난 결코 글 쓴 소녀처럼 행동을 할 수는 없을거야. 하지만 둘 중 한 명을 평생 못 볼 각오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겁이 많고 두렵고 그래. 차라리 모든걸 다 끊어버리고 죽고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 하지만 나같은 겁쟁이는 죽기조차 힘들겠지.
어쩌면 내 마음 속에는 차라리 너가 날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나에게 매몰차게 대하고, 걷어차고, 욕하고 그렇게 날 떠나버리면 삶이 더 편해질 수 있을까?
어차피 나는 사면초가야. 널 만나서 만질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터넷상으로 행복하게 지내며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미래가 확실하지도 않고. 내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로지 너와 함께 보낸 행복한 추억들을 기억하는 건데, 어차피 우린 항상 싸우고 대화를 잘 안하니까 그마저도 그냥 혼자 해버리고 말지.
밤길을 달리다가 야생동물을 칠 뻔한 기억, 케빈의 집 근처에서 사슴을 가까이서 본 기억, 키웨스트에서 함께 주얼리를 팔던 기억, 혼자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주문한 기억, 파이브 가이즈에서 물컵에 몰래 콜라를 따라 마시던 기억..
너도 나처럼 이런 기억들이 떠오를때마다 혼자 웃고 말아버리고 있겠지..
장거리를 하면서 시차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가 감성적이게 되는 밤에 나는 한창 수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바쁘게 생활하는 낮이고, 또 이곳이 밤이 되면 너는 이제 막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아침이 되지.
너의 감성적인 그런 글들을 대낮에 수업을 듣다가 읽게 되면 솔직히 감정이입이 잘 안되. 바쁜데 왜 갑자기 이러나, 내가 또 뭐 잘못해서 서운해서 이러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또 여기가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워 네 생각을 하다가 연락을 하면 너의 단조로운 답장에 나는 나 혼자 또 상처를 받고. 너나 나나 똑같으니 그런 너를 향해 서운하다고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어. 내가 잘못한 점도 너무 많으니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매듭을 풀어야 하는걸까. 정말 우리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우연히라도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다 해 버린 인연을 붙잡고 미련때문에 놓아주지 않고 있는것은 아닐까?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데.. 너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데.
나는 원래부터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다 모든 것을 영어로 번역해서 대화를 하려니 더 많은 것을 그냥 내 속에 담아둬. 그러다 가끔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면 폭발해서 한국어로 말을 하면 너는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이런다고, 너도 답답하다고 하소연만 늘어놓겠지..
결국 쓰다보니 또 부정적이고 우울한 내용만 써버렸네.. 아직 할 말은 너무나 많은데 혹시나 네가 이걸 읽고 또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일까봐 무서워.. 다음 편지는 조금 더 밝은 분위기로 낮에 써보도록 노력할게. 너에게 항상 상처만 주는 나지만 그래도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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