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십자가’를 ‘시위용 소품’으로 쓰다
19일 영락교회 ‘개정 사학법 반대집회’서 십자가 행진…비난 쏟아져
▲ 19일 오후 서울 저동 영락교회에서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 5천 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기독교 사학 수호를 위한 한국교회 비상 구국기도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번갈아 십자가를 지고 시청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서울=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영락교회에서 개정 사학법에 반대하는 기독교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사학수호 한국교회 목회자 비상기도회 및 십자가행진’이 열린 영락교회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대표하는 대형교회다. 이날 집회에는 5000여명의 기독교 목회자와 신도가 참여했다. 이 집회가 열리던 시각 영락교회 맞은 편에서는 ‘사립학교법 왜곡하는 목회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교사·학부모 기도회’가 개최되어 사소한 충돌이 있기도 했다.
19일 영락교회에서 시청까지 벌어진 ‘십자가 시위’
기독교 교파를 초월해 개정 사학법에 반대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날 영락교회 집회에서 유독 눈길을 끈 것은 집회가 끝난 뒤 벌어진 ‘특이한 행진’이었다.
영락교회에 모인 기독교 목회자들과 신도들은 기도회를 마친 후 ‘십자가’를 짊어진 채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날 행진에 쓰인 십자가는 2000여년 전에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사렛 출신 예수가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을 만한, 2m 크기의 대형 나무십자가였다. 20일자 몇몇 신문에 이 사진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십자가 지고 사학법 투쟁’이란 제목의 기사와 함께 십자가 행진 사진을 실었다.
기독교 목회자들은 개정 사학법에 대한 반대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형태로, ‘십자가 행진’을 시위방법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기독교 목사들이 벌인 ‘십자가 행진’은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했다.
내로라 하는 목사님들이 모여 감행한 “개정 사학법 반대“ ‘십자가 행진’은 정치적·집단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십자가 시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9일 집회가 열린 다음 영락교회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영락교회는 각성해야만 합니다(박OO)
사학법반대로 인해 십자가를 지고 사학법반대를 하시는 목사님! 정말 추하더군요...기독교인으로서 정말 창피스럽고 역겹게 보입니다.
사학법이 무엇이건데..예수님의 고난의 성스런 상징인 십자가를 그런 농성장에서 사용한단말입니까? 사학법이 교회의 근본을 없애려하는 악마의 행위입니까? 교회는 종교인의 성소로써...학교는 교육자와 피교육인의 교류터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겁니다. 사학법은 결국엔 이권에 관계되는 사회적 문제인데 교회에서 이권에 개입하고 세속적인 일에 앞장서서 사탄의 행위같은 일을 하다니...인터넷상의 일반게시판과 토론장에 한번 가보세요.. 피종교인들과 종교인들이 쓰는 글들을요.. 이래서 종교인들이 욕을 먹는 겁니다..이땅에서 살고있는한 그들을 소외시키고 우리 종교인들만 살수는 없는 겁니다. 대다수 국민들과 소시민들이 오래토록 원하던 사학재단들의 비리를 척결하자는 관련법인데 기득권의 이권수호와 강제적인 종교전도는 이제 이땅에서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이땅의 교회들은 변하지않을겁니까? 십자가 지신 목사님과 나서는 분들 각성하세요...정말 추합니다. 사학법에 반대하시면 종교인답게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세요. 그런 믿음도 없다면 기독교인이라고 하시지를 마세요. 예배중에 하시는 기도내용은 늘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 그러시면서 왜 교회 나와서는 그런 추한 모습을 보입니까? 학생들을 볼모로, 교인들을 볼모로 그런 정치적인 놀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 영락교회 앞에서는 개정 사학법에 반대하는 목회자들의 집회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연합뉴스)
목사님들의 ‘십자가 시위’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조선일보의 독자라고 해서, 오마이뉴스의 독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마이뉴스) 순교정신과 십자가를 더럽히는 목사님들께 드립니다. (사학교감,안수집사(kim51im)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사학의 교감이란 자리가 그렇고, 5대째 내려오는 기독교집안에 태어나 안수집사로 봉직하고 있음이 이토록 부끄러울 수가 있을까? 기독교 초창기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집안에 할아버님은 교회의 장로님으로 평생을 신앙생활에 매진하셨던 분이셨고, 아버님과 형님과 동생이 목사님이신데 왜 이토록 부끄럽단 말인가?
사학법이란 한마디로 "왜 마음대로 돈 못 떼먹게 하느냐? 왜 내 기분나는 대로 해먹지 못하게 하느냐?" 이런 것이 아닙니까? 개방이사 1~2명이 무슨 결정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사장 마음먹은 대로 다 결정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십자가 지고 사학법재개정을 위해 순교자의 길을 가자구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읽어보지도 듣지도 못하셨는 모양입니다....
국민들 보기에, 아니 교인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제발 부끄러워 하십시오. 제발 제발 수치스러움을 느끼십시오. 목사님들의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질을 해대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지 제발 느끼십시오.
(조선일보) 현OO
생명윤리 앞에 한마디의 입장도 없던 교회가 부패사학을 위하여 결단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7명중 1~2명도 수용할 수 없다면 차라리 학교 문닫으십시오. 교회의 담도 더 올리세요. 환란, 핍박 받았을 때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이미 성장이 멈추었습니다. 차라리 핍박을 택하십시오. 정말 하나님을 믿으시나요?
왜 ‘십자가 시위’는 ‘신성 모독’일까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구약성서 신명기 21:23)는 구절처럼, 십자가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 이전에는 저주와 형벌의 상징이었다.
이후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서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죄악에서 거꾸로 기독교적 신앙을 상징하는 가장 거룩하고 신성스러운 것이 되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신성시’되는 것이 있다. 한국이 기독교국가이자 기독교사회는 아니지만, 특정 종교의 상징을 정치적·집단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소품쯤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천만명을 웃돈다는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을 감안하면, 게시판의 비판처럼 ‘십자가 시위’는 ‘신성 모독’이다.
상대를 가장 심하게 모욕하는 방법은 상대가 가장 애지중지하고 여기고 신성시하는 상징을 짓밟는 것이다. 말다툼을 하다가도 부모와 조상을 언급하면 주먹다짐이 되는 법이다. 때문에 동서 고금에서 가장 심한 욕은 공통된 모습을 띤다. 그 사람과 사회가 가장 신성시하는 것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에서 심한 욕은 모두 어머니의 성기와 관련한 욕설이고, 종교적 상징을 모독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학법에 대한 찬반을 떠나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상징 ‘십자가’를 동원한 시위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더욱이 그 ‘십자가 시위’가 기독교적 의미에 낯선 “자신들의 죄를 알지 못하는” 외부인에 의해서 저질러진 게 아니라, 교인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설교하고, 따르라고 전하는 목회자들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더욱 참담한 일이다.
‘십자가’는 2000년 전에 ‘시위 소품’으로 쓰이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고난의 길을 올라갔다. 기독인들에게 십자가가 시위의 소품이 되기에는 너무 신성하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구본권 기자
[email protected]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