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휴일이라 강의가 없어 리딩하러 집앞 카페에 갔다. 한 시간 반 거리의 학교를 가기에는 너무 멀고 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콜로세움 방지를 위해 미리 언급하자면 2인용 테이블에 앉아, 프렌차이즈라 비싸긴 해도 세네시간에 한 번은 음료를 주문한다.)
얼굴이 빨간 할아버지가 내게 학생이냐고 물어보셨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나 최대한 공손하게 학생이라고 대답했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화장을 하고 나와서 그런지 할아버지가 날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요즘은 여자들도 배워야 하는데 여자들이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고 다녀서 싸보인다는 요지의 말을 하셨다. 안 그래도 없던 싸가지가 더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러마 하고 넘겼었다. 자꾸만 내게 요즘 년들은 싸가지가 없다 어떻다 소리를 하시면서 나한테도 왜 학교에 안 나가고 여기서 이러냐고 물어보셨다. 이상한 대학 다니지 말고 편입이라도 하라는 말에 결국 내가 참을 수가 없어서 저 여기 다녀요 하고 학생증을 내밀었다. 할아버지가 순간 말문이 막히셨던 모양이다.
나한테 서울대생이냐고 다시 물어보시더니 할아버지는 이제 왜 대학생이 그러고 다니냐며 배웠다는 애가 이렇게 따박따박 대들어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학생증만 내밀었는데 제가 대들었나요 하고 여쭤보니 한 마디도 안 지는 게 버릇 없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께 그럼 왜 할아버지는 가만히 있는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하자 어른이 가르쳐주는 건데 못 배워먹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배울 만큼 배웠고 어디 가서 가정 교육 못 받았다 소리 못 들었다고 아침부터 술 취해서 카페에서 처음 보는 여자애한테 시비 거는 할아버지는 얼마나 배우셨냐고 여쭤봤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렇게 시비를 걸었겠냐고 여쭤보자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셨다. 함께 계시던 할머님이 할아버지를 말리셔서 할아버지가 내게 직접 말씀하시는 건 멈추셨다.
그런데 자꾸 다 들리게 요즘 년들은 대학을 보내놔도 공부를 안 한다고 중얼거리셔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약간의 욕설을 섞으며 옆에서 웬 이상한 할아버지가 요즘년들이 대학을 보내도 공부를 안 한댄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 애들도 다 밤새서 공부하느라 곧 뒈지기 직전의 몰골인 애들만 있는데 대체 그런 년들은 어디 있는걸까 하고 물어보았다.
내가 진심으로 화가 난 기색을 보이자 할아버지가 주춤하셨다. 30분 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님은 지금 카페에서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