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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방문한 박제가의 이야기
외진 마을의 가난한 집이라도 보통 여러 칸 크기의 광을 소유하고 있고
그 안에는 여러 가마니의 곡식을 저장하고 있다. (박제가 북학의)
일반 백성이 사는 집들은 모두 하나 같이 크고 반듯한 벽돌로 지어졌다. (박지원 열하일기)
변방의 시골여자라도 얼굴에 분가루를 바르고 머리에는
꽃장식을 하고 긴옷에 수를 놓은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 (박제가 북학의)
아무리 변방 오지의 첩첩산중이라도 수레가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이유로 유통업이 발전하고 백성들은 재산이 풍족해질 수 있다. (박지원 열하일기)
중국은 도시와 시골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양자강 이남 오촉민월과 같은 외딴 시골 동네만 하더라도
번화한 도회지에 높은 문화 수준을 자랑한다. (박제가 북학의)
일본
100만채는 있다고 생각되는 집 모두는 기와집이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 '조선 최대의 대저택'의 10배 이상의 넓이로
구리 기둥에 내부는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
도시의 크기는 약 40 km(10리) 정도로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도시가 있을수 있을까?
한양 번화가의 수만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접해본 통역 통신사가 있지만 그도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진다'라고 말했다.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2천년동안 이렇게 평화롭게 번영하고 있었다니 원망스럽다.
(조선 통신사, 김인겸의 저서 '일동장유가')
누각이나 저택의 사치스러움, 사람들의 활기참, 남녀의 화려함, 성벽의 아름다움, 교량과 배
모두가 오사카와 같이 뛰어나다.
이 훌륭함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나고야와 같다.
(1764년 2월 16일 에도(도쿄))
대규모의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하였고 방대한 견문록이 저술되긴 하였으나
이들의 기술력을 제대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것은 고작 물레방아나 고구마 재배 등에 국한되었다는 것이 난 믿기질 않는다.
이는 우리가 일본을 너무 성리학적 테두리에 가둬놓고 생각한 당연한 결과이며 한계일 것이다.
왜놈들의 일본 경제상에 대해서 내심 경탄하면서도
우리는 왜 화이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대체 알 수 없다.
조엄 이놈은 역사에 남을 죄인이다.
대일외교관계를 담당한 조엄이라는 작자는 어떻게 이러한 발전상을 보고도
왜인들이 짐승과 같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혹평하였는지 궁금하다.
순조 13년 (1813년) 3월 [.... 분개에 가득차 느낀점을 정리하며...]
조선 서민들은 1년에 무명옷 한벌도 제대로 입지 못한다.
남자나 여자나 태어나서 침구가 무엇인지 구경조차 못하고 이불 대신 멍석을 깔고 살아간다.
아이들은 겨울에도 벌거숭이가 되기 일쑤고 신발도 신지 못한다. 한둘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다. (박제가 북학의)
요약 : 실학자들만 분개하고 끝남
이중 박제가는 유배당함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