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들이 대선후보 토론에 소극적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재명·윤석열 두 사람을 한 자리에 초청해 치열한 논쟁을 펼치게 하는 건 이제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윤 후보 혼자 스튜디오에 나와 공약을 검증 받는 정책 토론 섭외마저 쉽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 전언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PD는 27일 통화에서 “토론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후보가 나오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 PD는 후보를 특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최대한 우리 방송에 나오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 섭외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윤 후보 측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토론을 성사시키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 간부도 “다른 방송사도 비슷할 것이다. 토론이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섭외에 응하지 않는 후보 태도에 있다”고 꼬집었다. ‘윤 후보가 그렇게 소극적이냐’는 물음에 이 간부는 “(윤 후보 측이)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레거시 미디어가 유튜브 보다 못하다는 반응이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후보가 유튜브에 나가면서 지상파 출연은 어렵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토론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던 중에 윤 후보가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이목을 끌었다. 특히 삼프로TV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인터뷰 영상을 같은 날 게시했는데, 이로 인해 두 후보 경제 정책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었다. 한 방송사 PD는 “지상파TV에는 ‘편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삼프로TV 같은 유연성을 구현하긴 어렵다”고 했다.
윤 후보 측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내년 2월15일 이후 열리는 법정 토론만 참석한다는 방침이다. 공직선거법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대담·토론회 횟수에 대해 “선거운동 기간 중 3회 이상”으로 규정한다. 후보 사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달랑 3회로 끝날 수 있다.
윤 후보는 여전히 양자토론에 회의적이다. 코로나19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연대는 지난 20일 두 후보를 초청해 코로나19 피해 지원 방안을 청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성사되지 않아 이 후보에 대한 1인 대담으로 대체됐다. 윤 후보 측은 군부대와 지역행사 일정 탓에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난달 초 방송기자클럽이 기획한 두 사람의 1대1 토론도 윤 후보 불참으로 무산됐다.
언론도 윤 후보를 비판한다. 동아일보는 28일자 사설(“‘비호감 대선’ 극복하려면 토론 늘리고 수준도 높여야”)에서 “국민의힘 경선 토론을 16번 했지만 그 토론을 누가 봤느냐”고 말한 윤 후보를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TV토론은 신문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전파된다”며 “시청률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네거티브 위주로 흐른 경선 토론회와 본선 토론회는 차원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신문은 윤 후보를 조준해 “토론보다는 공약을 보고 국민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게 낫다는 주장은 공급자의 발상”이라며 “이 후보 공약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면 토론을 통해 조목조목 따지면 될 일”이라고도 비판했다.
한겨레는 27일 사설에서 “윤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열리는 법정 토론회에만 응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윤 후보의 이런 태도를 두고 ‘침대 축구’라는 비난마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고, 서울신문도 같은 날 “윤 후보가 사실상의 ‘토론 무용론’을 피력한 것은 유권자의 후보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는 28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 후보를 겨냥해 “확정적 중범죄 후보와 토론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양당 후보의 양자토론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같은 날 MBC에서 방송한 정강정책 연설에서 “이 자리를 빌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께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 드린다”며 “국민들이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도록 주1회 정책 토론을 제안드린다”고 했다. 최근 민주당은 선관위 주관 대담·토론회 횟수 하한선을 6~7회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TV토론 개최를 요구하며 윤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