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기를 못 먹게 된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0살때 였을 거예요.
외할머니 댁에 놀러갔는데, 그때 당시 할머니 댁에서 항상 똥개 2마리를 키우고 계셨는데 시골에서 종종 그렇듯
그 개들은 식용으로 길러지고 있었어요. 어렴풋이 종종 보신탕을 먹었던 기억도 나요. 그런데 저의 평생 트라우마가 된 10살의 그날 이후론 고기를
입에 못 대는 자체가 됬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개를 잡는걸 본 거예요.
막상 개를 죽이는 장면은 못 봤어요. 그런데
죽인 개를 매달아 피를 빼고 그 개의 털을 불태우고 개를 토막내 물에 담가 피를 빼고 고기를 손질하고....그 모든 과정을 다 봤어요.
그리고 개의 피냄새와 껍질을 태울 때의 그 냄새....아직도 나는 것 같아요. 다 기억하고 있어요 아직도.
집 앞마당에서 잡으셨거든요. 그리고 그날 저녁 고스란히 식탁 위에 보신탕이 나왔죠. 엄마는 평상시엔 잘 먹던 애가 왜 오늘은
안 먹느냐고 물어보셨지만 저는 본능적으로 이걸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희안하게도 그 뒤로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왜 고기를 굽거나 삶으면 고기가 익은 결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보이잖아요? 특히 수육이 잘 보이죠.
아무튼 그런 결을 보게 되면 그때 토막난 개의 다리가 물에 잠겨 남은 피를 빼고 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전 고기를 안 먹는게 아니라
못 먹어요 무섭거든요. 소세지나 튀김 옷이 두꺼운 냉동 돈까스 치킨너겟 이런건 고기의 모양이 아니라 어느 정도 먹을 순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최대한 작게 잘라서 밥이나 야채 등과 함께 같이 먹어야만 입에 넣을 수 있습니다. 고기가 안 보이게요.
그래도 즐겨 찾지는 않아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치느님은 저에겐 별로 땡기는 존재가 아니죠 ㅎㅎ
가끔 침색어택으로 야밤에 올라오는 고기 사진들은 저에겐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게 사실은 참 힘이 들어요. 어딜가나 누군가와 먹을 때 정말 불편하거든요. 특히 단체로 어딜 가면 나오는 메뉴가
삼겹살, 뼈해장국, 감자탕 주로 이런것 들인데 전 절대 입에도 못 댑니다.
아니 입에 대기도 전에 보는 거 자체가 괴로워요. 심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래도 제가 이런걸 티내고 다니는 건 아니예요. 그냥 고기집을 가게 되더라도
"전 고기 못 먹으니까 다른거 먹을게요." 이렇게 말하거나 최대한 먹는 척을 합니다. 절대 인상을 찡그리거나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울상이 되거나
그러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 친구가 고기 먹는 걸 보고 "더럽다." 고 했다가 친구랑 엄청나게 싸운 적이 있거든요. 밥 맛 떨어지게 그게 뭐냐고. 그 뒤로 저도 최대한 조심합니다. 아마 그때 취향존중이 뭔지 확실히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제 취향이 존중 받고 싶으면 많은 분들이 고기를 먹고 싶은 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걸요.
그런데 저의 주변 분들은 왜 안 그래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왜 고기를 못 먹니부터 시작해서 제가 키가 좀 큰 편인데 뭘 먹고 키가 그렇게 컸냐 그럼, 키가 그렇게 큰데 고기를 못 먹으면 어떡하니 등등 놀라움 섞인 비웃음인듯 비웃음 아닌..뭐 그런 말들을 많이들 하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개 잡는걸 봐서 그 뒤로 못 먹어요."하고 말해도 "나도 내가 먹을 닭 골라서 잡아 먹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시면서 절 이해를 못합니다.
그게 너무 속상해요. 왜 야채 편식하는 사람들은 안 이상하게 보고 고기 편식하는 저는 이상하게 볼 까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른들과 회식자리가 많아지는데 그럴때마다 항상 회식 메뉴는 고기류...... 이상하게 회식하는 자리는 꼭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그런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반 같은 것도 좋은데....... 그리고 왜 고기를 못 먹는 절 "이상하다"고 하는 걸 까요. 제가 못 먹으면 못 먹는 거지 굳이 먹어봐라고 입에 대주고, 고기를 못 먹으면 안된다고 설교하시는 분도 계시고.......
저번에는 저희 학교 선배가 저에게 돼지 껍데기를 꼭 먹게 해주고 싶다며 저를 고기집에 끌고 가셨어요. 끝까지 입에 넣지는 말아야지 이렇게 마음 먹고 따라 갔습니다. 가서 전 자연스럽게 다른 밥류를 시키고 몇 번 거절했어요. 돼지 껍데기는 익기 전에 그 껍질이....정말.....너무 너무 무섭거든요 정말 무서워요. 그런데 그 선배가 갑자기 제 턱을 잡더니 입을 벌리고 껍데기를 집어 넣으셨어요. 제가 울상이 되서 못 씹고 가만히 있으니까 씹어! 씹어보라니까? 이 맛있는걸 대체 왜 못 먹니? 라고....하.....다시 생각해도 그때는 제 인생 최고로 괴로운 날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냥 꿀떡 삼키고 라면 국물을 들이켰습니다. 집으로 와서 바로 토했던 것 같네요. 제 속에 고기가 있다는게 무서웠거든요. 저는 맨 처음엔 이런 감정이 단순히 싫음일까? 혐오?? 생각했었는데 무서움인 것 같아요.
다행이 저와 친한 친구들이나 제가 정말로 못 먹는다는걸 알고 있는 분들은 더 이상 고기로 절 괴롭히거나 강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분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게 너무 고민이예요.
저는 억지로라도 고기를 먹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걸 까요?
앞으로 회사 다니게 되면 회식자리가 더 많아질텐데 그럼 고기 먹을 일이 더 많아지겠죠?
아,
혹시라도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를 욕하실 분이 계실까봐 미리 말할게요. 욕하지 말아주세요.
저희 엄마나 외삼촌들 다 시골에서 자라셨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자랐었으니 할머와 할아버지는 저도 그럴거라 생각하셨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뒤로 저희 집도 점점 보신탕을 안 먹게 되어서 이젠 집안에 개고기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기를 못 먹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시지만 고기를 못 먹는걸 아시곤 절대 제가 먹을 밥상에 고기 메뉴를 올려주신 적이 없으세요, 절 배려해주시는 분들이예요.
그러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욕 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