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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179051
    작성자 : Keira_K
    추천 : 1
    조회수 : 548
    IP : 1.229.***.72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4/08/16 05:26:22
    http://todayhumor.com/?gomin_1179051 모바일
    자소서와 푸념 (약간욕주의)

    -

    내가 시발 대학을 꼭 가야 하겠습니까.

    이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당신네 건물에 내 돈도 아닌 손 벌린 돈을 쏟아 부으면서 학력 한 줄을 얻고자 노력해야겠습니까. 내가 대학을 입학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80프로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의 미친 대학진학률에 휩쓸린 행태인지, 진정으로 그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짓거리인지... 못난 자기소개서를 이틀 내내 부여잡고 있어보니 그 본질조차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가려 하는지 그 본질을 말입니다. 어투가 과격하더라도 아마 나는 평생 글과 친구를 먹을 테니 글로 표출하겠습니다. 이 너덜너덜한 자기소개서를 들여다보는 것이 마치 콘티와 스토리보드, 카메라 뷰파인더, 그리고 계속되는 재편집으로 n번째 편집을 하기위해 프로젝트파일을 다시 연동하여 같은 컷을 100번 이상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이젠 제가 봐도 모르겠단 말입니다. 자기를 소개하는 글이라며 끄적이는 이것이 말하는 게 과연 제가 맞는 지, 아니 애초에 제가 무엇을 위하여 이걸 쓰는 것인지. 현재 그 답을 놓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당신들을 어른이라 부를 수 있는, 청소년으로 불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제가 스스로 애처로운 고딩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회상이 충분히 병신 같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이 속에서 어른들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며 원래 나에게 주어진 자율적인 선택권이 하나도 없던 것처럼 찡찡대는 것이 저는 더 싫습니다. , 새벽에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것도 일단 찡찡거리는 것이긴 하지만요. 그냥 지금은 질린 것 같습니다. 좀 지쳤네요. 충분히 물린 것 같아요.

    사실 정곡을 찔린 겁니다. 나를 어필하는 면접관들이 읽을, ‘보여주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너무나 당연시 여기던 대전제가 저에게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사실 이건 자문이라고 해도 되겠죠. 그러나 스스로 대답할 수 없는. 내가 시발 대학을 꼭 가야 하겠습니까. 라는 하나의 질문.

     

    영화 찍는 고3 학생이에요. 솔직히 비슷비슷한 고딩들 사이에서 나름 좋은 작품 찍어서 스펙이라는 거 쌓아봤어요. 언니 등록금 하고도 남는 상금 벌어서 부모님 기대도 많이 받고요. 제 작품이 가끔 작게나마 TV에라도 나온다던지, 청소년 영화제 스크린에 걸린다던지 할 때 정말 좋아요. 그래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학생은 아닙니다. 선명하게, 간절하게 원하는 미래가 있어요, 영화과 써요. 수시 6개 정시까지 꽉꽉 채워서 넣어요. 어쩌면 상을 타올 때마다 부모님께서 대학가기 더 쉽겠네 라며 좋아하시는 말씀이 너무 귀에 익어서 그랬을까요. 나는 어째서 지금에서야 자문하는 걸까요.

    이제 모르겠어요. 내가 대학을 꼭 가야 하는 이유. 영화감독이란 목표에 대학이 필수 요소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이유. 각 대학교들에 넣을 자소서를 첨삭하면서, 대학이름의 대명사들만 교체된 여러 자소서를 보며, 각각의 기준에 끼워맞춰진 제가 좀... 기형적으로 느껴집니다.

    날짜는 한정되어 있는데 확실한 답을 찾기 전까진 진척이 없을 듯합니다.

     

    어느 학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외국계학교였을지도... 아니면 바칼로레아였던가) 영화과 입시문제로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나왔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아직 안 살아봐서 모르겠는데라는 우스갯소리로 넘겼었는데 당시 제 대답이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와닿네요

    열아홉, 앞일은 모르는 것이라고들 하나, 평균적으로 앞의 일이 더 많을 텐데 그 모든 걸 경험으로 부딪혀봐야 하는 걸까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었습니다. /너희들의 젊음은 아름답다. 부딪히고 또 부딪혀라. 실패하는 너희가 되어라/ 제가 1학년일 때, 학교를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해주신 말씀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멋있었거든요? 실패하는 내가 되자. 라는 이 말엔 우리의 무궁한 가능성이 전제되어있다는 생각에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무서워요. 아직 우리한텐 모든 일이 별일이라서, 소모해도 괜찮게 치부할 수 있는 작은 일도 없고 그래서 작은 실패도 있을 수 없고, 또 한 번 더 일어날 용기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저는 저 말이 무서워졌습니다. 제 자존감이 그렇게 바닥을 치고 있다는 증거겠죠. 맛있는 차라도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까요. 강아지나 끌어안고 낮잠을 자면 어떨까요. 오늘은 30분이라도 그렇게 해볼려고요. 앞으로 다가올 실패의 출혈이 두려운 건 비단 고3인 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겁니다. 그래도 일단 일어나야겠지요.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잘 될 것 같으냐구요?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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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6 05:33:56  1.236.***.3  눈팅만했어  347556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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