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정도 생존한 길이 약 18cm의 스파르가눔. 스파르가눔이 25년 산 기록도 있다.
무서운 사실 한 가지 더. 뱀을 먹은 환자에서 스파르가눔을 한 마리 꺼냈다고 치자.
아까 뱀 한 마리엔 여러 마리의 스파르가눔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혹시 몸속에 또 한 마리가 들어 있지는 않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진단기술로는 한 마리가 더 있는지, 그게 어디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스파르가눔이 특정 장기로 가서 증상을 일으키던지,
아니면 피부로 나오든지 하기 전엔 진단이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발목에서 스파르가눔이 나온 환자는 종아리에 또 스파르가눔이 나타나는 바람에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했고, 한 환자는 수시로 출몰하는 스파르가눔 때문에
7년간 여섯 차례나 수술을 했단다. 후자의 환자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군부대에 있을 때 낙하산을 타고 깊은 산골짜기에 투하되어 부대까지 찾아오도록 하는,
소위 생존훈련을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다.
산속에 먹을 거라곤 뱀과 개구리뿐이었는지라 그가 여러 마리의
스파르가눔을 갖고 있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듭된 스파르가눔으로 고생하던 그는 국가에 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5월 서울고법에서는 그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사람이 스파르가눔에 걸리는 방법
가장 흔한 경로는 역시 뱀과 개구리를 날로 먹는 것.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엔 뱀이 정력을 길러 준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으며,
스파르가눔이 주로 남자에게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여자도 그럴 수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사례 하나. 한 여성이 가슴에 통증이 심해 병원에 왔다.
심장에 물이 찬 탓이었는데, 원인을 모르겠어서 그냥 입원시키고 놔뒀더니
좋아지기에 퇴원을 시켰다. 하지만 며칠 못가서 다시 심장에 물이 찼고,
이런 일이 한 번 더 반복되자 의사는 혹시 이상한 거 먹은 게 없느냐고 환자에게 물었다.
환자는 그제야 고백했다. 갑상선에 좋다는 친척의 권유로 개구리 30마리를 날로 먹었다고.
그러니까 환자는 스파르가눔 때문에 심장에 물이 찬 거였다.
여기서 이걸 알 수 있다. 뭔가 이상한 걸 먹고 탈이 난 경우 의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아야
진단을 더 빨리 할 수 있으며, 날개구리가 갑상선 기능을 좋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파르가눔에 걸리게 만드는 건 100%라는 걸.
그리고 몸에 좋다며 뭔가를 권하는 주위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뱀과 개구리만 조심하면 되느냐면 그건 아니다.
만손열두조충의 숙주 중에 물벼룩이 있었고,
그 안에서 꼬리가 달린 프로서코이드 유충이 된다고 했다.
산에서 약수를 먹다 이 프로서코이드 유충이 들어 있는 물벼룩을 먹는다면
굳이 뱀 같은 혐오식품을 먹지 않아도 스파르가눔에 걸릴 수 있다.
뱀을 한 번도 먹지 않은 여성들이 스파르가눔으로 병원에 오는 건 이 때문으로,
전체의 20% 가량을 차지한다. 물론 약수라고 다 물벼룩이 있는 건 아니며,
물벼룩이 있다해도 극히 일부만 만손열두조충의 유충을 갖고 있으니 약수를 매일 먹는다 해도
걸릴 확률이 그리 높은 건 아니지만, 스파르가눔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우려면
생수를 먹거나 약수를 끓여서 먹는 게 안전하다.그밖에 멧돼지나
오소리도 근육에 스파르가눔을 갖고 있을 수 있으니,
이들 고기를 생식하는 것도 스파르가눔에 걸릴 수 있는 방법이다.
72cm에 달하는 스파르가눔을 수술로 제거하는 장면.
스파르가눔은 약에 거의 듣지 않아 많은 경우 수술이 필요한 무서운 기생충이다.
스파르가눔과 성장 호르몬
조교 시절, 스파르가눔 실습이 끝난 뒤 남은 스파르가눔을 쥐한테 먹여 놓은 적이 있다.
몇 주 뒤 그 쥐를 봤을 때 쥐가 너무 커져 버린 것에 깜짝 놀랐다.
논문을 찾아보니 스파르가눔은 성장호르몬 비슷한 물질을 내서 숙주를 크게 만드는 거였다.
기생충이 왜 숙주 좋은 일을 할까 의아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스파르가눔은 유충에 불과하며, 어른인 만손열두조충이 되어 자손을 낳기 위해서는
종숙주로 옮겨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쥐가
살쾡이에게 잡아먹혀야 된다. 여기서 스파르가눔의 잔머리가 돌아간다.
쥐를 뚱뚱하게 만들어 달리기를 못하게 만들면 야생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는가?
이게 스파르가눔이 성장호르몬 비슷한 물질을 내는 이유다.
'그럼 그렇지, 역시 백해무익이라니까'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보자.
그 성장호르몬 비슷한 물질을 사람에게 주면 키가 안 커서 고민하는
아이들이 혜택을 보지 않겠는가? 실제로 1970, 80년대에
이런 연구를 한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사람에게 적용될 만큼 결과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 발달한 유전공학으로 인해 사람의 성장호르몬과
똑같은 단백질이 다량 합성됐으니, 구태여 스파르가눔으로부터
단백질을 뽑을 필요가 없어졌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스파르가눔의 단백질이 어떤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스파르가눔의 진단과 치료
스파르가눔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ELISA라는 진단법을 이용해 환자의 혈액에서 항체가 얼마나 있는지를 측정하면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
특히 뇌에 있을 때는 뇌종양과 구별이 어려울 수 있는데 그때
항체를 측정하면 진단에 도움이 된다.
뱀과 개구리를 많이 드신 분은 꼭 항체를 측정해 보시고,
증상이 있으면 즉각 병원에 가는 게 좋다.
대부분의 기생충이 약에 잘 듣지만 스파르가눔은 약에 거의 듣지 않으니
병원에 갈 때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도 필요하다.
그분들에게 뱀·개구리 많이 드셔서 정력이 좀 좋아지셨는지 묻고 싶다.
참고문헌
1) 세계일보 기사 “두통 호소 10대 소녀 뇌 열어봤더니…'경악'” 2012-05-12
2) Kyung-Joon Lee, Na-Hye Myung, Hyun-Woo Park. A Case of Sparganosis
in the Leg. Korean J Parasitol. Vol. 48, No. 4: 91-5, 2010
3) Tsukasa Sakamoto, Carmen Gutierrez, Angeles Rodriguez, Sergio Sauto.
Testicular sparganosis in a child from Uruguay. Acta Tropica 88 (2003) 83-86.
4) 수 차례 재발한 스파르가눔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환자에서 발생한 폐 스파르가눔증 1예.
오윤정, 김미진, 조준형, 차치운, 김도훈, 오미정, 진재용, 최성실, 권계원.
Tuberculosis and Respiratory Diseases Vol. 67. No. 3, Sep. 2009; 229-233.
- 글
- 서민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호칭·직책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다. 저서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