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가을을 탐.
가을타는 남자는 글을 배설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낌.
어렸을 적 우리집은 잘산다고는 못했죠.
그 땐 다 똑같이 못살았을겁니다.
6살때 기억이 어른들은 일하시느라 애들 맡길 곳이 없어서
사촌동생들은 다 같은 유치원다니며 우리집에서 먹고자며 살았고
우리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우리 삼형제와 사촌동생 3명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그렇게 옹기종기 살았던 기억이 있죠.
그리고 아버지가 공장을 하시며 공장건물 2층에 우리가족만 살게되었죠.
그 때가 초등학교 1학년때 쯤이었는데
계란후라이는 1명당 하나씩, 커다란 김을 가위로 자른것과 볶음김치
아버지는 큰 김에 밥을 한수저 턱 얹으시고 김치와 노른자가 살짝 덜 익은 계란을 올려
한입에 싸 드시던데 저희에게도 그렇게 먹어보라 하십디다.
그래서 작은 손으로 김, 밥, 김치, 계란 (꼭 이 순서였음) 을 얹고 한입에 넣으면
세상에,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게 이게 아닐까 싶었죠.
한달 내내 그렇게 먹었던 것 같아요.
가끔먹는 짜장면도, 치킨도, 피자도 이것보단 맛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업번창,
지하와 1층건물을 쓰던 공장에서 1000평이 넘는 공장부지와 건물4채로 확장하고
방3개, 방4개로 더 넓게 이사를 가고
차도 검은색 신형그랜져로 바꾸고
집에는 비싼 양주가 있고, 벽걸이 티비도 사고
해외여행도 갔습니다.
더 이상 계란 김치 김 콤보는 저에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게 되어버렸죠.
음...
근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죠.
고2때일겁니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시고, 사업도 어려워지고, 투자도 잘못되고
집은 다시 방 3개짜리로, 주택으로, 차도 팔아버리고 전에 쓰던 트라제만 남았습니다.
제가 긍정적인 놈이라 그래도 뭐 별일 있겠어 싶었지만
아...별일 있대요...
집안이 화목하지가 못하고, 웃음이 사라집니다.
아버지는 술만드시고 눈물도 보이시고
술취하셔서 집에 들어오시면 미안하다는 말만 하십니다.
이제는 "엄마, 나 만원만" 이라는 말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3때부터 알바를 했습니다.
20살이 되는 동시에 술집서빙도 하고 주방보조도 했구요.
대학에는 갔지만 등록금이랑 자취방월세가 너무 부담되어 자퇴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편의점 야간알바를 했는데
밤이라 그런가요. 생각이 많아지고
집이 망한지 2년만에 느꼈습니다.
아...돈 없는거 서럽네 시벌...우리집이 진짜 망했구나...
그 때, 좀 아버지가 원망스럽더라구요.
친구 믿지말지...왜 땅을 사서...
밤에 일하니 생각이 많아지는것 같아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시급이 쎄고, 잡생각이 안나는 빡센 일을 찾다보니
6시간 10만원짜리 일이 있습니다.
1주일짜리 일이었구요.
당연히 갔죠.
찾아가보니 등산로를 따라 산책길을 조성하는 일인데
6시간을 다 채워야 일당을 줄 수 있다. 하십니다.
중간에 다 못하겠다고 그냥 가버려서 그 쪽도 낭패인가봐요.
더운 여름 날, 산책길 꾸밀 나무 옮기고 고무판 옮기고
나무 자르는 옆에 가면 톱밥이 땀 난 얼굴에 붙어 따갑고
다리는 떨리고 팔은 저리고 어깨는 아픕니다.
일 끝나니까 8명중에 중국인 1명이랑 저 하나 남았더라구요.
나이 어린데 잘 버텼다면서 15만원을 줍니다.
다음 날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갔는데
중국아저씨는 안나오더라구요.
4일째 되는 날 일이 좀 익숙해질 무렵 점심시간이 됐죠.
함바집이라고 하죠.
네모난 상자에 밥이랑 반찬이랑 담겨져 오는데
하필 그 날 반찬이 반숙계란, 볶음김치, 그리고 1인당 하나씩인 김
김봉투를 뜯는데
"아...맞다 이거 아빠가 먹는방법 알려줬었지"
손톱 아래 흙 낀 손 위에 김을 올리고 밥, 김치, 계란을 올려서 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상하다, 우린 망했지만 예전이 더 힘들게 살았는데
분명 그 땐 못살았지만 행복했는데...
아...그래 분명 지금 힘들지만
어렸을 때, 그때만큼은 안힘들잖아.
커다란 이불에 사촌동생들 4명이랑 붙어서 자거나
다음날 준비물 살 돈 없어서 고민하거나
적어도 지금은 안그러잖아 생각하니
아버지의 대한 원망이 사라집디다.
그치...아버지도 더 잘 살아보려고
우리 더 편하게 해주려고 하신거니까...이해가 됩니다.
아버지가 술 만취해서 오셨을 때 미안하다 하시길래
미안하다는말 하지 마시라고
우리가 여태 잘 산것도 아버지 덕분이니까 미안할 필요 없다고 원망 안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음 날 숙취와 함께 이 말 기억 못하시는 눈치였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저에겐 원망을 사라지게 해준것도
몰랐던 고마움을 알게 해준것도
제가 악을 쓰고 독하게 살게 되는것도
모두 하나의 음식에서 시작했더라구요.
아마 지금 다들 어려운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때, 힘들었을 때
그 때와 그 때 내가 먹었던 음식이 뭐가 있었지..생각해보세요.
분명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입맛도 달라지고
세상은 너무나도 맛있는것이 많기에
좋아하는 음식도 바뀌지만
그 순간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계속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을테니까요.
그때와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