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동구 마장동에 살았슴.
마장동...하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대한 축산시장이 있는곳.
그 축산시장 안쪽에 살았을 때,
우리집은 아들만 셋이라 시장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놀러나갈때면 생고기냄새와 핏물냄새, 돼지 족 삶는 냄새를 맡고 가야했죠.
집에 있는 신발은 전부 검정색 운동화였는데
이는 바닥에 흘러나오는 핏물에 흰 운동화가 물들면 안되기 때문이였겠다 생각합니다.
마장동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죠.
그 때,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연말 회식은 항상 고기!
왜냐, 마장동은 고기가 싸니까...
그리고 난 항상 회식자리에 꼈죠.
...사장 아들이니까
(그리고 연말에 바쁠 땐 나도 공장일을 도왔다, 지금으로 따지면 아동노동법위반이겠지)
그 중에 OO회관이라고 구청 뒤쪽에 있는 고깃집을 자주 갔는데
고기를 굽기 전 소지방을 한번 달군 판에 굴려주고 소고기를 구워주던
고기를 다 먹고는 밥과 다진깍두기를 넣어 밥을 볶아주던곳이 생각남.
애새끼가 배가 불러서 고기보단 그 볶음밥이 맛있어서 고기는 안먹고 볶음밥만 먹었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발로 한대 뻥 차버릴텐데...
여튼 회식은 항상 그쪽으로 자주 가다가
나 초등학교 1학년 겨울 연말회식은 사업이 번창했는지
축산시장으로 가는 사거리에 커다란 고깃집으로 감.
이름도 기억해, 선샤인
아마 그 동네에서 가장 크고 신선하고 비싼 고기 쓰는곳이라고 알고있는데
하필 그 날, 내가 뭘 잘못먹었는지 장이 꼬였는지
배가 땡기고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난리가 났는데
엄마는 그래도 자식들 고기한점 먹여서 살찌워 이 추운 겨울을 버티게해야겠다라는 마음이었는지
굳이 아픈 날 끌고 그 고깃집에...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비만의 원인은 엄마한테도 있는듯.
고기 주문하기도 전에 나오는 생간이랑 천엽
어린 나에게 그건 핏덩어리와 학교 마대걸레 잘라놓은 모양...
엄마는 기름장에 푹 찍어 아픈 나에게 들이밀었고
나는 못먹어!! 하면서 젓가락을 쳤다가 쳐버린 젓가락보다 쎄게 엄마한테 쳐맞고
방석 두개를 깔고 구석에 짱박혀 흐느끼며 배아픔에,
그리고 난 아파죽겠는데 웃음소리가 넘치는 회식분위기에
아...세상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음.
그 때 사장아저씨가 플라스틱 국그릇을 하나 가져오더니
어른들 술자리에 애들이 먹을게 없어서 어쩌냐
아까 보니까 배아프다고 하는것 같은데 이거 한번 마셔봐라 하면서
내 앞에 숭늉같은걸 주시더라.
처음엔 한약인줄알고 싫다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맛있는 갈비탕냄새가 나.
수저로 한입 두입 떠먹었더니 정말 맛있더라...
그래서 꿀꺽꿀꺽 마셨는데 맙소사
배 아픈게 싹 나은거야.
정말 아픈게 싹 나아서 너무 신기하고 사장아저씨가 멋져보이고.
한창 티비에서 하던 요리왕비룡이
실제인물이나 사건과는 아무런관련이 없습니다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 후로 두세번 더 갔는데 갈때마다 내 얼굴을 기억하시고 오늘은 배 안아프냐고 물어주셨지.
손님들이 뭐가 맛있냐고 하면 덩어리고기를 들고와서 자랑하시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사장님이라는걸 이제야 알게되었죠.
그리고 그 철없던 놈은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만 읽다가
밤비노라는 만화를 읽고 요리에 꽂혀서 요리의 길로 접어들고
지금은 23살에 지나치게 건장한 청년이 되었고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면 항상 그 생각을 하죠.
선샤인 사장님의 고기국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그 생각도 합니다.
나도 나중에 그런 사장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