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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누님이 외친 조선 5천년 가난설.
일제시대 일본놈들이 한민족을 폄하하기 위해서, 그리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
근데 전에 돌쇠의 주먹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최정상급 생산량과 먹성(...)을 보유한 나라였음.
그 중에서도 우리들조차 그냥 수학여행지로 생각하는 안타까운 경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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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주는 통일신라의 수도가 되었음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최전성기에 경주의 인구는 17만 8936호
국사시간에 늘 배우는 신라의 인구총조사 민정문서!! 의 세밀함(동네 나무 갯수까지 세어놓는 디테일)을 본다면
저 수치는 꽤나 정확한 수치라고 볼 수 있음.
보통 고대시대임을 감안해서 1가구 5인으로 생각한다면, 당시 경주의 인구는 약 90 만명
8 세기인데 90 만..
전 지구를 통틀어 당시에 있던 도시가운데 당나라의 수도 장안과 아랍의 중심지 바그다드를 제외하고는
가장 규모가 컸음. 즉, 세계 3대 도시. - 경주 바로 다음 규모로는 로마의 중심 콘스탄티노플이 있음.
문헌을 살펴보면
"" 도시전체에 숯불로 고기굽는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 ... 역시 천년전에도 우리는 고기덕후
경주의 외곽 항구 역할을 했던 울산지역에 아직까지 전승되는 처용설화에서 유추해보면
이미 그 당시에 아랍지역의 상인들은 물론 로마 사람들까지 와글와글 모여있던 최대의 무역중심지.
당시 유럽에서부터 이어진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최종 종착역이 바로 경주였음.
그 거대한 부를 기반으로 9층짜리 목탑을 포함한 거대한 황룡사를 건축했고
천년의 세월에 걸쳐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낸게 경주를 중심으로 했던 신라인들이었음.
안타깝게도 몽고의 침략으로 심각하게 파괴되는 바람에 옛날의 위대한 유산은 많이 없어졌지만
천년의 세월을 한 나라의 수도로 보냈고, 다시 천년을 버텨온 경주의 위엄을 무시하면 안됨.
근데 뭐 시발 5천년 가난이 어쩌고..
경주내려가서 박물관 마당에 있는 에밀레종 한번봐라. 그게 천년도 더 된 물건이라는게 믿겨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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