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남궁인선생님 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글 참 잘 쓰시는군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26시간 후부터 7개 질환에 걸리면 공장에서 찍혀 나온 규격품이 됩니다.
더 축하할 것은 1년 후에는 550개 질환으로 혜택이 확대된다는 거죠.
아프지 마세요 부디.
맹장염 걸리면 구멍 뚫고 수술 안합니다. 다 배 쨉니다. 흉터 커지겠군요.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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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응급실에 이상한 오더가 하나 전달되었다. 의국에서 정해놓고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일정 비용 이상의 진통제, 항생제, 항염제와 검사들을 이제부터 '맹장염 일 것 같은' 사람에게는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맹장염'이라는 진단명이 떨어지는 순간 입원부터 퇴원까지 이 환자의 수가가 일정하게 묶이게 때문이다. 이 오더의 실제를 보면, 복통 환자를 맞이하였을 때 '맹장염 일 것 같은' 환자가 오면 진통제와 항생제, 검사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검사 후 다행히 '맹장염'이 맞으면 최고 저렴한 약들을 조심조심 사용해서 수술한다. 반대로 그가 수많은 복통의 원인 중 '맹장염'이 아닌 환자로 밝혀지면 그제서야 각종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 '맹장염은 아닌 것 같은' 환자를 맞이해서 각종 약을 쓰고 추가 검사를 하였으나 나중에 '맹장염'으로 밝혀지면 이건 고스란히 병원 손해다. 그리고 이 손해는 환자를 처음 보았을 때 '맹장염은 아닌 것 같은' 환자로 판단한 내 책임이 된다.
2.
복통의 진단은 수많은 환자의 수 만큼 다양하며,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진단으로 끝날 때도 꽤 있다. '복통 환자는 3회 이상 진찰하라', '모든 복통은 맹장염에서 시작해서 끝난다.' '복통의 원인은 절반 이상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다' 등의 응급실 격언들도 이를 대변한다. 우리 병원엔 하루에도 수십명이 배를 움켜잡고 통증을 호소하며 내원하는데, 변비 설사를 호소하거나 옆구리나 명치 아랫배, 반대쪽 배가 아픈 맹장염부터 드물게는 안아픈 맹장염도 있으며 맹장인줄 알았어도 단순 장염, 결석, 게실, 드물게는 암, 장 중첩과 천공까지 사람마다 가지 각색의 진단이 된다. 때로는 이것들이 두세개가 겹치기도 하며, 암성 통증인 줄 알고 몇번을 돌려보냈다가 맹장을 찾기도 하고, 결석 치료를 받다가 맹장을 찾기도 한다. 이 수 없는 배를 움켜쥔 환자들 사이의 고뇌에서 초진을 보고 바로 '맹장염'을 정확히 골라 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환자에게 "당신은 맹장염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므로 진단이 정확히 나올 때까지는 참아 봅시다."라던지, "당신은 다행히 맹장에는 염증이 없으므로 진통제와 항생제를 추가로 더 드리지요."라고 말해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이 당장 이틀 뒤부터 다가올 실제가 된 것이다.
3.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는 포괄수가제의 장점에 "병원의 진료비 청구와 계산방법이 간소화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문장에는 숱한 환자 사이에서 진단을 고민하는 의사의 고뇌가 전혀 없다. '맹장 수술'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일괄 계산하겠다는 이 법엔 내 환자들 중 '맹장염'과 '맹장염이 아닌' 환자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라서 대접이 달라져야 하는 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 법을 생각한 사람은 환자를 달래고, 채근해가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본 적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를 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규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 환자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다. 허나, 병원에 소속된 이상 병원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도 방침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런 인간이 인간을 진찰한다는 변주와 예외가 느껴지지 않는 법을 당장 어떻게 대처할 지 혼란스럽다. 그냥 우리가 숨쉬고 있는 수많은 부조리가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상식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날은 오련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