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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chlock. 화승총. 서서히 타들어가는 화승을 이용하여 점화하는 초창기 총기. 매치락이라는 명칭은 발사 메커니즘에 중점을 두는 호칭이다.
초창기의 걍 S자 서펜틴 뿐인 서펜틴락이나 어디 시골 대장간에서 급조한 총을 제외하면, 후대의 매치락들은 스프링을 이용해서 방아쇠 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트리거 매커니즘의 구조와 서펜틴이 붙은 위치에 따라서 다시 분류가 가능하지만 사격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매치락의 트리거 메커니즘은 순발식과 완발식 두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일반적인 매치락의 경우 스프링이 꾸준히 트리거에 작용하고 있어서, 버튼, 레버, 트리거... 등등 여튼 방아쇠를 쥐어짜듯이 잡으면 서펜틴이 서서히 플래시 팬으로 다가가게 되어있다. 트리거를 놓으면 다시 서펜틴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이를테면 현대의 리벌버의 더블액션과 비슷하달까? 물론 방아쇠를 당기면 코킹을 시작하는 더블액션과는 정 반대 방향이지만... 유럽과 서아시아의 이슬람, 중국에서 널리 쓰인 방식이고 보편적인 매치락의 방식이다.
이것을 완발식(緩発式)이라고 부르는데 서구에서는 sear-lock과 trigg(거부 반응)er-lock 방식에 해당한다. 완발식은 손에 힘을 줘서 트리거를 쭈욱 쥐어짜는 방식이다보니 손의 떨림으로 인해 명중률이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유럽의 전장에서는 일제사격으로 탄막을 형성하기 때문에 명중률 손실 따위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놓으면 서펜틴이 물러나기 때문에, 화승을 물린 채로도 안전하게 휴대 이동 할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KUE4dzFPFJU
일반적인 완발식의 트리거 작동을 볼 수 있는 영상. 방아쇠를 당기면 당기는 길이 만큼 서펜틴이 내려오고, 방아쇠를 놓으면 다시 되돌아간다.
반면에, 순발식(瞬発式)이라는 것은 영어에서는 snapping matchlock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용하려면 일단 용두를 당겨서 코킹을 시켜야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스프링의 힘에 의해서 서펜틴이 슬로우매치를 플래시팬에 콱 처박는 형태다. 말하자면 싱글액션온리인 셈이다. 일본에서 널리 쓰인 방식인데, 유럽에서는 1475년에서 1640년대 정도에 쓰였고 일본에서는 1543년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일본 타네가시마(種子島)에 전해져 1880년대까지 계속 애용된다.
유럽의 군인들은 이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서펜틴을 처박을때 플래시팬과 부딛히는 충격 또는 발사의 폭압 등에 의해 화승이 꺼지거나 서펜틴에서 튕겨나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펜틴에 물려놓은 슬로우매치가 발사 시에 튕겨나가는건 매치락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다시 서펜틴에 물리면 되는데, 화승이 꺼지기 쉬운 것은 크게 문제되어서 스냅 매치락은 그다지 인기 없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싱글액션 방식과 마찬가지로 방아쇠가 가볍고 메커니즘의 작동 타임로스가 적으며 손떨림의 영향을 덜받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다. 때문에 유럽에서 스냅 매치락은 새 같은 작은 사냥감을 잡는 용으로나 약간 사용된듯.
http://www.youtube.com/watch?v=l6-VInBDvWQ
이 영상 앞부분에서 콱 처박히는 순발식 트리거의 작동을 볼 수 있다. 어쩐지 플래시 팬 안에서 좀 지발되어버렸지만, 덕분에 트리거가 빠르게 움직임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영상 후반에는 대구경의 것도 쏜다. 오오쓰스는 들고 쏘는 총인 주제에 들고 쏘는게 곤란해보일 정도로 큰 것도 있기 때문에, 들고 쏠때 버거우면 일부러 고꾸라지면서 반동을 받아내는 것도 사격법의 하나라고 함.)
일본에서는 화승총이 타네가시마(種子島)에 처음 전해져서 타네가시마총(種子島銃)이라고 부르거나 그냥 타네가시마라고도 불렀다. 해외에서는 일본의 화승총을 모두 타네가시마라고 싸잡아 부르지만, 일본식 화승총의 계보를 좀 엄밀하게 구분하려 하는 사람이라면 그중에서도 타네가시마에 전해진 타입의 짧고 굵은 놈만 타네가시마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듯.
일반적으로는 포르투갈인 상인이 일본 타네가시마에 화승총을 전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이설이 있다.
1)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포르투갈 탐험가이자 작가인 Mendes Pinto가 최초로 일본과 교역한 상인이라고 하며 그가 비누, 담배와 함께 일본에 총을 전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이것이 일본에 총이 전해진 첫 루트라고 하는데, 총의 가치에 비해서 지나치게 큰 거금을 주고 총을 구입한 것은 그 제조기술까지 전수받는 댓가였다는 말이 있다.
2) 하지만 그가 최초로 일본과 접촉한 외국인은 아니며, 당시에 일본인들이 포르투갈인이라고 부르던 것은 완벽한 포르투갈인은 적은 편이었다. 서양 세력은 동양에 진출해와서 우선 동남아에 자리를 잡고 교역 거점으로 삼았는데, 여기서 현지화된 인물이나 또는 현지인과 결혼한 그 자손이 일본에 거래를 틀거나, 이렇게 우선 동남아에 전해진 서양 총이 왜구(왜구는 반드시 일본 해적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서 해적 전반을 대충 싸잡아 부르는 용어)/교역인을 통해 일본 서쪽 해안지방에 동시 다발적으로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2번째 이야기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일본에 전해진 화승총은 순수한 포르투갈식이라기보단 그것을 동남아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개량된 말라카 방식과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동남아의 수림이 우거진 지역에서는 유럽식의 화승총과 집단 일제사격 방식은 적합하지 않지만, 개머리판이 없이 짧게 개량한 순발식 총으로 유격전을 벌이는데는 적합했기 때문에 말라카 방식이 선호되었으며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정 반대로, 일본에서 만든 화승총이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동남아로 팔려나가 말라카식이 되었다는 설도 있기 때문에 어느쪽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개인적인 판단은 하지 않겠다. 존나 파고들거 아니라믄 그냥 핀토가 전했다고 말하는게 속편할듯. 여하튼 일본이 사용하는 화승총 모델은 느슨하게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유럽식 원 모델은 별로 보편적이지는 않은 듯. 일본이 도입한 화승총은 나름대로 개량을 거쳐서 스냅 매치락의 문제점인 화승의 불이 잘 꺼지는 문제가 개량됐다고. 다만 일본은 당시 신뢰성 있는 강철 스프링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힘이 딸리는 황동 스프링을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 락플레이트 부분을 전부 다 황동으로 쓰는 경향이 흔하다.) 허나 이후에 유럽식이나 더 개량된 방식인 플린트락, 휠락이 일본에 전해질 기회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순발식만 애용된 것은 일본의 독자적인 풍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일본에서는 전장에서의 훈공을 다투어야 했기 때문에 각각의 포수가 일발필중 총의 명중률을 더 중시했다,
2) 사무라이는 교양으로 총을 다루고 백성들을 위한 해수구제에 나서야 했는데, 이런 소구경의 수렵용은 특히나 명중률을 중시했다.
3) 쇄국정책으로 기술이 정체되었다
4) 에도시대 정책으로 백성의 총의 소지를 금하고 총포의 생산과 배포를 규제했다
5) 에도시대에는 사격술이 무술화 하고 유파를 통해서 철포술이 전수된다 (※주: 본인은 사격술이 무술의 개념이 포함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여기서 무술화라는 것은 형식과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무술화 했다는 의미.)
6) 일본에서는 양질의 부싯돌이 별로 생산되지 않아서(플린트락에서 플린트는 굉장한 소모품임) 플린트락으로의 이행이 어려웠다. 방아쇠 작용 후 발사 까지의 타임로스 만을 보면 순발식 매치락보다 플린트락의 반응이 더 느리기 때문에 수입된 플린트락도 일발필중에 부적합하다 하여 외면했다... 등의 이유를 꼽을 만 하다. 해서 에도시대 말 총기가 혁신될때까지 일본에서 화승총은 꾸준히 애용되었다.
하지만 아예 개량이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지역 별 메이커(?)와 특정 지역의 철포수의 취향에 맞춘 규격이 존재했고, 구경도 분류가 되며, 강선도 파고, 총신 3개를 돌려가면서 쏘는 실험적인 연발총도 있었을 정도로 나름대로의 개량은 있었던 듯. 일본은 이런 총을 가지고 나름대로 사격술을 구사했는데, 이게 이게 에도시대에는 포술 유파가 무술 유파처럼 이어질 정도로 당대에는 제법 볼만한 구석이 있는 기술이었다.
발사 시에 화승이 튕겨나가고 불이 꺼지는 경우를 대비해서, 화승 한줄의 양 끝단에 불을 붙이고 한쪽은 왼손 손가락에 끼워서 잡고 다른 쪽을 발사에 쓰는 반으로 접기 기술(二口火)을 구사해서 순발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을 무마했다. (불이 꺼지면 왼손에 들고있는 부분을 사용하거나, 왼손에 들고있는 것을 이용해서 다시 불을 붙인다)
물론 이 방식은 유럽에서도 사용하던 것이다. 여러 정의 총을 이용해서 사수 한명과 몇명의 조수가 붙어서 조수가 재장전한 것을 사수에게 넘겨주어 재빠르게 사격하는 기술도 있었다. 이것은 총포 기술을 자랑으로 삼는 일본의 철포용병들이 잘 쓰던 기술로, 일제사격으로 탄막을 중시하는 서양과는 달리 잘 쏘는 사수에 의존한다는 일본식의 특성이 엿보인다.
흑색화약은 탄매가 몹시 심하고 한두발 만으로도 총강 내에 탄매가 끼어 뻑뻑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탄자의 직경을 작게 만든다. 브라운베스가 19mm 구경인데 탄환이 18mm 짜리를 쓰는 정도... 그래도 한 대여섯발 넘게 쏘면 슬슬 총강 내에 탄매가 끼어 총탄이 잘 안들어가고 뻑뻑해지는데, 이쯤 되면 총강에 물을 부어넣어 탄매를 녹여내고 청소를 해줘야 한다. 보통 일곱발 정도에서 한번씩 물청소를 해주면 좋은데 (급하면 꼬질대에 물에 적신 천을 물려 닦는다던가), 일본의 철포술에서는 뻑뻑해질때 쯤 일반 사이즈보다 좀 더 작은 탄환을 이용해서 10여발까지 연속 발사하는 테크닉도 구사했다.
이러면 명중률은 좀 떨어지지만 전장에서는 목숨을 구할만한 괜찮은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정량의 화약을 담아놓는 통인 탄약통(bandolier)도 물론 사용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조합(早合, 하야고우)라고 불렀다. 전국시대 후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68-1600) 정도부터 하야고우가 등장했다고 한다.
다만 일본의 하야고우는 밑바닥에 납탄을 넣고 그 위에 화약을 넣어, 하야고우를 단번에 부어넣는 것으로 화약과 탄을 동시에 장전하는데반해 서양의 경우에는 납탄은 따로 파우치에 넣어서 휴대하고 전투중에는 입안에 납탄을 몇발 넣은 채로 준비하는 것이 차이점. 하야고우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인지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불명. 화약과 탄을 부어넣은 다음 램로드를 쑤시지 않고, 개머리판을 바닥에 내리찍어서 그 충격으로 화약과 탄환이 약실에 들어가도록 만드는 꼼수는 화승총 속사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일본에서도 사용했다. 그러므로 개인 사수가 구사할만한 기술은 다 구사한 셈이다.
일본식 조총과 유럽식 화승총의 차이는, 앞서 말한 순발식 방아쇠 말고도 개머리판이 없다는 점이 있다. 개머리판이 있는 현대적인 총에 익숙한 사람들은 개머리판이 없으면 명중률이 몹시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철포 사격술은 나름대로 사격술을 개발해서 극복했기 때문에 명중률 손실은 없다. (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증거는... 만우절특집인데 왜이러세여 아마추어같이ㅋ) 그립(개머리판?)을 쥔 오른손은 조총을 뒤로 당긴다.
총신 쪽을 잡고 있는 왼손은 앞으로 민다. 앞뒤로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균형으로 자세를 유지하고, 개머리판 부위는 뼘 쪽에 가까이. 사격시 계속 힘주어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느슨하게 쥐고 있으면 반동으로 뺨맞기 때문 ㅡ,.ㅡ;; (이외에도 포술 유파의 영상을 보면 그냥 총을 뒤로 흘려서 반동을 흡수하기도 하는듯) 개머리판이 없이 힘의 균형으로 쏘는 것도 의외로 장점이 있다.
개머리판으로 쏘는 것보다 심장박동과 호흡에 덜 영향을 받을 뿐더러, 단단하게 사격자세를 유지하기 좋기 때문이다.
몸의 긴장을 이용하여 자세를 견고하게 만드는 사격기술은 현대의 권총사격술에서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게다가 유럽에서도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고 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대고 쏘는 페트로넬 같은 식으로 반드시 어깨에 대고 쏘지만은 않았으므로, 일본식 조총사격술만 폄하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개머리판이 없으면 무게가 많이 줄고 짧아지므로 기동성에서도 유리하다.
전투의 양상에 따라 짧고 경량인 무기를 이용한 유격전이 더 쓸모있을 수도 있는 법... 일본식 조총은 작동 메커니즘도 이런 사격에 적합하게 개량해놓았다. 아무래도 뺨 가까이에 대고 있다보니 락 메커니즘이 얼굴 가까이에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유럽식에 비하여 바교적 약실과 락 부분이 멀리, 총구 쪽을 향해 배치되어있기 때문에 불똥도 뒤로 덜 튀도록 배려해놓았다.
그 외에도 매치락에 라이플링 판 것도 등장하는 등 할 짓은 다 한듯. 다만 집단 사격술에 관해서는 약간 의문이다. 2단 사격 대형은 앞사람은 무릎을 꿇고 뒷사람은 서서 사격하는 것으로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1536~1588)가 고안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전장에서 채용해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3단 사격 대형 역시 제법 유명한 떡밥.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 1575년)에 오다 군이 썼다고 하고 사이가 철포대는 1568년 정도에는 이미 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다 떡밥은 실은 3열 배치가 아니라 3부대로 나눠서 사격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게다가 대형 내에서 개인 간 간격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서양처럼 비교적 밀집하는게 아니라 서로 위험하지 않도록 간격을 좀 벌리고 배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사수 1인에 조수 몇명이 붙어서 사수가 사격하는 동안 조수들이 재장전하는 방식의 빠른 사격술은 확실히 쓰였고, 철포용병 집단으로 이름을 날린 사이가슈나 네고로슈가 흔히 쓰던 방식. 서양에서 매치락 집단 사격술은 바겐부르크 같은 장애물을 이용한 사격이나 1530년경 등장한 테르시오가 사용하던 파이크 앤 샷 전법이 대표적인데, 원거리에서는 사수가 사격을 가하고 적의 기병대가 접근하면 파이크 진이 그들을 보호하는 형태가 유행했다.
당시 총기의 느린 사격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서, 제일 앞열의 사람은 사격을 가한 다음 사수 열의 제일 뒤로 가서 다시 줄을 서서 재장전을 한다. 그 뒷사람도 쏘고 뒤로 가서 줄서고... 하는 방식으로 여러 줄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카운터마치, 뒤로 행진(countermarch)이라고 한다. 규모를 이루어 대열을 구성하면 이동하면서 사격도 가능하지만, 다만 대형의 이동 속도는 몹시 느려서 기동성의 약점이 있다. 하지만 둔중한 대신에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몰려있으니 심리적으로/전술적으로 든든하고, 파이크 병과 조를 이룬 테르시오는 기병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처가 가능했다는 장점이 있다.
카운터마치를 처음 고안한 것은 오렌지공 나사우의 모리스(Maurice of Nassau)인데, 막상 모리스는 그다지 효과를 못봤다. 조총은 아퀘부스인가 머스킷인가? 그런 구분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조총이 전래된 이후로 마르고 닳도록 쓰면서 나름대로 체급구분도 여러가지로 해서 써먹었기 때문에, 단순히 유럽에서 수입한 매치락의 후예라는 이유로 아퀘부스로 치부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유럽식 기준을 강제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일본 나름의 사정이 있는 법... 아퀘부스나 매치락 머스킷으로 구분하기보다는 그냥 조총이나 타네가시마 총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중립적이겠고, 아퀘부스라고 불러도 관계는 없겠으나 유럽식 초창기 아퀘부스의 늬앙스로 후진적이라고 보는 것도 곤란하다.
머즐로더를 좀 아는 사람은 이 화승총란 놈이 원천적으로 형편없는 명중률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일본의 조총이 정말로 새를 잡을 명중률이 나오는가? 라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답은, 실제로 조총 중 일부는 새를 잡는데 썼으니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일본의 뎃포는 구경에 따라서 소구경은 엽총 및 염가의 지급용, 대구경은 정규 철포조의 전투용으로 쓰이는데, 소구경 수렵용 쪽은 특히나 명중률을 중시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매치락 주제에 라이플링 파놓은 것도 있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타네가시마 총은 명중률을 높이기에 적절한 트리거 구조를 갖고 있다. 서구 외의 지역에서 머즐로더 총기를 만들때 유럽제보다 총신을 더 정밀하게, 더 길게 만드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인데 일본 뿐만 아니라 인도의 화승총도 숙련공의 실력에 힘입어 유럽제보다 더 많은 양의 화약을 쓰고, 더 우수한 명중률을 낼 수 있게 만든 예가 있다.
고로 유럽제 아니라고 무시하면 곤란할듯. 그러면 조총은 새나 잡는 (약해빠진, 시시한, 수준 낮은) 총이냐면, 그것도 아니올씨다.
조총도 체급이 있는데... 구분법은 사료에 따라 다르므로 주의... 탄자 크기에 따라 소통, 중통, 대통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철포(鉄砲, 뎃뽀)와 대철포(大鉄砲, 오오뎃뽀)로 나누기도 한다. 탄자 크기는 몬메(匁)라는 기준으로 구분을 한다. 1匁은 3.75g. 3.5 몬메 정도면 소통(小筒, 코쓰스)이라 하고 수렵용이나 염가형으로 이 크기를 만든다. 중통(中筒, 나카쓰스)은 6문 정도에 하급 무사나 아쉬가루 등이 주로 쓰고, 소통보다 위력이 큰 만큼 반동도 세다. 중통보다 좀 큰 것을 사통(士筒, 사무라이쓰스)이라 하여 10문 정도에 매우 위력이 크지만 그만큼 까다로워서 숙련된 총포전문가나 단련된 사무라이가 쓴다고 하여 사통이라 부른다. 20문 이상 되는 것은 대통(大筒, 오오쓰스)으로 분류하는데 심지어 100~200문 급의 물건도 존재한다고. 대포와 다른 점은 오오쓰스는 일반 화승총의 격발장치를 그대로 쓴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기마시 등에 쓰는 짧은 총인 단통(短筒)도 있다.
철포와 대철포로 나누면 대략 20문 아래쪽은 철포, 20문 넘기면 대철포 그렇게 구분하는듯. 허나 분류법은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니 사료에 따라 알아서 참고하라... 조총 중에서도 소통 정도면 새총으로 보고 깔아볼 수 있을까? 하지만 임란에서 꽤 많이 사용된 물건이고 저것도 충분히 사람 잡을 물건이다. 그보다 큰 물건은 위력이 월등히 강함은 당연하다.
화승총은 여러가지 약점이 있는 총이다. 일단 화승에 계속 불이 붙어있어야 하므로 종종 화승이 꺼지지 않게 훅 불어서 불을 살려놓는 식으로 끊임없이 관리를 해줘야 한다. 전장에 나선 경우에는 화승을 손목에 둘둘 말던가 모자에 감아놓는 식으로 길게 유지를 하고 불을 살리면 되지만, 만약에 화승총을 들고 경비를 한다면 언제 적이 나올줄 알고 화승에 불을 붙여논 채로 경비를 서겠는가? 하지만 기습 당한 뒤에 화톳불에 화승 불 붙이는건 뒷북이 되고... 때문에 휴대와 준비가 불편하다.
게다가 축축한 날에는 화승에 불이 잘 안붙고, 불을 계속 유지하기도 어렵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 밤에는 불똥이 붙어있는 화승은 눈에 잘 띈다. 설령 빛을 감추더라 해도 화승 타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발각당하기 쉽다 불붙은 물건을 든 채로 화약을 다루다간 폭발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특히 화약 플라스크나 케그를 다룰때 졸라 위험하다) 때문에 화약고에서 경비를 서는 병사에 한해서는 화승총이 아니라 휠락이나 스냅헌스 같은 방식의 총기를 지급했다.
밴들리어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직접 화약 플라스크로 화약을 넣는 경우에는 화약 양은 사수의 감에 의지해야 하는데, 화약의 양이 부족하면 위력이 불충분할 뿐더러 화약이 과하면 탄이 잘 맞지 않고 총의 내구도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화약 플라스크 뚜껑이 계량할 수 있는 물건으로 쓰기도 했는데, 전장에 나서는 병사들은 정량의 화약을 담은 작은 통 여러개를 휴대하기 편한 위치에 매달고 다녔다. 매치락 머스켓티어의 그림을 살펴보면 가슴 앞에 대각선으로 띠를 메고 밴들리어를 주렁주렁 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안에는 한발 분량의 화약이 들어있어서 빠른 재장전을 가능하게 한다. 앞서 일본에서는 이것을 조합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흔히 Apostle이라고 불렀는데,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말하는 그 '사도'다. 화승총의 사수는 보통 12개의 탄약통을 휴대하는데 12라는 숫자 때문에 사도라고 부르는 것. 이것의 정식 명칭은 Collar of Bandoliers, 또는 밴들리어라고 짧게 줄여서 부른다.
당시의 느린 발사속도 때문에 어지간한 전투에서는 그 12개를 다 쏘는 일도 힘들었다. 밴들리어는 보통 12개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당시 탄약과 탄환의 배급은 무게를 기준단위로 썼는데, 보통 1파운드의 납을 가지고 12발의 둥그런 납탄을 만들고 이것이 들어가는(즉 1/12 파운드의 납을 동그랗게 만든 것을 구경으로 하는) 총을 머스킷이라고 했다. 대략 12게이지 정도 된다. 실은 반드시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각 총의 구경에 맞춰서 납탄을 녹여 만들지만, 처음에는 대략 이런 기준이었던 것. 그래서 만약 12사도가 아니라 15개의 사도를 달고 있으면 그냥 머스킷이 아닌 1파운드로 15개의 탄을 만드는 약간 구경이 작은 bastard musket을 쓴다고 보면 된다.
밴들리어가 12개가 아닌 놈은 사도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지만, 사실 이런 호칭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습관적인 부분이다보니 12개든 16개든 그냥 다들 사도라고 불러버리고, 밴들리어, box, charge 등등... 아무렇게나 불러버렸다. 서양에서는 탄환과 탄약을 종이로 싸놓은 페이퍼 카트리지가 등장하면서 이 열두 사도는 사용하지 않게 된다. 한 발의 탄환에 필요한 화약의 양은, 15세기 경에는 탄의 무게와 같다고 했다. 23mm 납탄을 쓰는 핸드곤느가 52g의 탄을 쏘았다. 18mm 납탄을 쓰는 브라운 베스의 탄환은 37g의 무게. 하지만 화약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점차 위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화약의 질과 총신의 질, 경험에 비추어 정량은 다르게 조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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