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에 나선 한국 선수 중 K리그에 속한 이는 6명에 불과했다. 이중 골키퍼 세 명을 빼면 필드 플레이어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선수는 이근호(상주상무)와 김신욱, 이용(이상 울산) 등 단 세 명뿐이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K리그 구단 소속으로 이번 월드컵에 나선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비록 한국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호주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월드컵 무대에 선 전북 수비수 윌킨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월드컵 출전 선수 명단에 'Jeonbuk Hyundai (KOR)'라고 소개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방출이 유력했던 이 '구멍 수비수'가 세계 최강의 팀들을 상대로 월드컵 무대에서 뛰게 된 드라마틱한 반전 스토리를 공개하려 한다. 이름하여 '전북에서 온 국대'다.
윌킨슨은 2012년 많은 기대를 받으며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사진=전북현대)
전북 유니폼을 입은 센트럴코스트의 주장알 렉스 윌킨슨은 2002년 호주의 노던 스피리트라는 작은 팀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2001년 호주 U-17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됐고 프로 입성 후에는 호주 U-20 청소년 대표로도 활약했지만 그를 주목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당시 호주 청소년 대표팀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윌킨슨의 활약도 돋보이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노던 스피리트 팀에서 나와 세미 프로인 라이드 시티로 이적해 한 시즌을 뛰었고 이듬해에는 맨리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청소년기에는 그나마 대표팀에 종종 이름을 올렸던 윌킨슨은 성인이 된 후에는 변변치 않은 팀에서 뛰며 단 한 차례도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못했다. 187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수비수였지만 너무 느린 게 그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윌킨슨은 2005년 센트럴코스트로 이적한 뒤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비 록 스피드는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성실하고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센트럴코스트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했다. 첫 시즌 30경기에 나선 그는 줄곧 센트럴코스트의 후방을 책임지며 팀의 살림꾼 역할을 했다. 화려하게 빛나는 선수는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선수였고 센트럴코스트는 그런 윌킨슨을 높이 평가해 무려 4년 동안이나 주장을 맡기기도 했다. 윌킨슨은 2011년 잠시 중국 장수 세인티로 임대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호주 프로리그는 아시아에서도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성인 대표팀 경력도 없는 그는 호주 무대를 벗어나면 그리 매력적인 선수는 아니었다. 2011년에는 중국 무대에서 10경기를 뛴 게 전부였다. 중국 무대를 잠시 경험한 윌킨슨은 2012년 7월 수비 보강을 노리는 K리그 전북의 이적 제안을 받게 됐다. 당시 전북은 최강희 감독이 잠시 대표팀에 떠나 있었지만 공격적인 선수 영입으로 주목을 받고 있을 때였다.
윌킨슨은 고민했다. 가장 먼저 그가 전북에 문의한 건 연봉과 계약 기간이 아니었다. "전주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나요?" 전북 구단은 흔쾌히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윌킨슨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생후 두 달밖에 안 된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조건에 이적을 확정지었다. 한국에 온 윌킨슨은 곧바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아들이 아직 신생아라 자주 병원에 가야 해요. 아들이 다닐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봐 주세요" 윌킨슨은 가정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책임감도 대단했다. 그러면서 전북에서의 각오를 밝혔다. "저는 즐겁게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축구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어 행복하고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싶습니다. 또한 아시아 최고의 팀 전북에 오게 돼 영광입니다. 팀의 우승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겠습니다." 그렇게 윌킨슨은 2012년 K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던 7월 조금은 어색한 전북의 녹색 유니폼을 입게 됐다. 전북은 광저우 헝다로 이적한 황보원의 아시아 쿼터 자리를 윌킨슨으로 메우게 됐다.
윌킨슨은 최강희 감독 복귀 후 팀의 붙박이 수비수로 변신했다. (사진=연합뉴스)
돌아갈 짐까지 싼 윌킨슨의 마지막 기회전 북이 처음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이미 사샤가 K리그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코니와 루크 등 호주 출신 수비수들이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던 터라 비슷한 스타일의 윌킨슨도 K리그에서 좋은 플레이를 선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체조건도 좋아 몸싸움이 극심한 K리그에 적합한 수비수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4년 간이나 한 팀의 주장을 맡았던 선수라는 점에서 윌킨슨이 '닥공'을 앞세운 전북의 수비를 안정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주축 수비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걱정이던 이흥실 감독 대행은 윌킨슨의 합류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대이하였다. 호주에서 시즌을 마친 뒤 시즌 중인 K리그로 합류하게 되면서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자연스러운 컨디션 저하가 발생하는 시기에 다시 한창 시즌 중인 리그로 뛰어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K리그 데뷔 첫 경기에서부터 졸전을 거듭한 윌킨슨은 기본적인 실수를 범하는 등 여처 차례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2012년 그의 활약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전북의 '퇴출 0순위'가 바로 윌킨슨"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당장 짐을 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부진이었다.
하 지만 전북은 2013년에도 그와 함께 했다. 아니, 함께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자신감이 뚝 떨어진 윌킨슨은 벤치에 앉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결국에는 2군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심지어 벤치에도 앉지 못해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일까지 생겼다. 2~3명 몫을 해줘야 하는 외국인 선수로서는 굴욕적인 순간이었고 누군가는 그를 '구멍'이라고 불렀다. 전북은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면 윌킨슨을 내보내고 다른 선수를 데려올 것까지 고민했다. 더군다나 가뜩이나 자리를 잡지 못했던 윌킨슨은 이흥실 감독대행에 이어 파비오 감독대행이 다시 지휘봉을 잡게 돼 적응이 더욱 쉽지 않았다. 이쯤 되면 모든 걸 포기하고 방황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지만 윌킨슨은 그래도 늘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벤치에도 앉지 못한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일이 있어도 항상 웃으며 훈련장에 나타났다. 윌킨슨의 이런 모습을 본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어떤 상황에서건 참 열심히 한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팀에서 나가고 싶다'고 불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 무렵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서 전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2013년 시즌 7월까지 단 세 경기에 나선 게 전부였고 2군에 사실상 방치(?)돼 있던 윌킨슨을 살폈다. 당시 윌킨슨은 K리그에서 사실상 실패하고 호주로 갈 짐까지 싸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윌킨슨과 대화를 나눈 최강희 감독은 그가 대단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와 생활했던 동료들에게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비록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동료들과 전혀 충돌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리더십도 뛰어납니다." 최강희 감독은 그가 못하는 선수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런 책임감이라면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윌킨슨을 따로 불러 말했다. "네 플레이를 유심히 보니 스피드가 부족해 오프사이드 트랩을 쓸 때 약점을 허용하고 있어. 뒷공간을 조심하고 섣불리 공을 차단하겠다고 앞으로 나서지마. (정)인환이가 공중볼에는 강하고 (김)기희는 대인마크가 좋으니 너는 그저 물러서서 상대의 길목을 차단하는 역할만 해주면 돼. 어서 짐 풀어."
전북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윌킨슨. (사진=연합뉴스)
'방출 0순위'에서 '믿고 쓰는 호주형'으로모 두가 금방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했지만 윌킨슨은 전북으로 돌아온 최강희 감독의 지시를 받고 다시 남게 됐다. 최강희 감독은 늘 윌킨슨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단점은 동료들이 보완해주니 너는 네 장점만 보여주면 돼." 이때부터 윌킨슨의 놀라운 반전이 시작됐다. 이후 모든 경기에 선발로 출장해 6위까지 떨어졌던 전북을 한때 선두로 이끄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이다. 늘 수비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던 전북은 윌킨슨이 주전 수비수로 나서면서 수비까지 안정된 모습이었다. 윌킨슨은 방출을 기다리던 2군 수비수에서 불과 며칠 사이 'K리그 최강팀'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했다. '구멍'이었던 그는 '벽(wall)'과 그의 이름을 합친 '월킨슨'이 돼 있었다. 당장 퇴출돼도 이상할 게 없던 그가 불과 며칠 만에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선수로 변신하자 팬들은 아무리 '봉동이장'이라도 이건 있을 수 없는 마법이라고 극찬했다. 높이와 힘을 자랑하는 윌킨슨은 안정적인 수비력 외에도 공격 가담 시에는 위력적인 능력을 선보였다.
그는 '방출 0순위'에서 어느덧 그는 '믿고 쓰는 호주형'이 돼 있었다. 경기장에는 윌킨슨을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흔드는 호주 국기가 펄럭였다. 또한 윌킨슨은 경기가 끝난 뒤 관중을 향해 늘 마지막까지 손을 들고 인사를 보내는 행동으로도 팬들을 감동시켰다. 그를 가정과 구단에 책임감 있는 이로 키운 부모님 역시 인상적이다. 호주에서 여행사를 하는 그의 부모님은 광저우 헝다전 등 중요한 AFC 챔피언스리그가 열리는 날이면 이 한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호주에서 전주로 날아왔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행여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연락도 하지 않고 부모님 둘이 인천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윌킨슨의 아내는 누군가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눌러 문을 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호주에서 나타난 시댁 어른을 보고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멜버른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멜버른전에서는 윌킨슨의 부모님이 멀리에서 응원 온 전북 팬들에게 맥주를 대접하기도 했다. 윌킨슨이 예의 바르고 열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건 그의 부모님 영향이 컸다.
이 무렵 호주 대표팀은 홍역을 앓고 있었다. 2013년 9얼 홀거 오지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 대표팀은 브라질과 프랑스에 나란히 0-6 대패를 당했고 결국 오지크 감독이 경질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팀을 정비하기 위해 새로운 선수들을 국가대표에 발탁해 시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두 차례 평가전에서 12골이나 허용한 수비진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선택은 놀랍게도 단 한 차례도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적 없는 윌킨슨이었다. 그렇게 2013년 11월 윌킨슨은 서른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영광스러운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윌킨슨을 선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윌킨슨을 잘 알고 있다.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K리그 전북에서 활약 중인 윌킨슨도 나의 계획에 포함돼 있다." 아예 대표팀에는 마음을 비웠던 서른 살의 수비수는 호주 대표팀 발탁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유일한 국가대표 후보였던 이승기가 부상을 당해 국가대표 선수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할 위기에 놓인 전북도 윌킨슨이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의 국가대표 발탁에 놀랐다.
지난 해까지 호주 국가대표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던 윌킨슨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사진=연합뉴스)
서른 살에 이룬 국가대표의 꿈하 지만 전북으로서는 윌킨슨의 국가대표 발탁을 기뻐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리그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던 전북은 울산과의 중요한 승부에서 0-2로 패하며 우승 경쟁에서 밀린 상황이었고 당시 2위였던 포항과 4위였던 서울을 상대로 윌킨슨 없이 경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윌킨슨의 대표팀 발탁을 예상했더라면 미리 공백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을 텐데 워낙 갑작스러운 발탁이라 그러지도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이니 당연히 축하해줘야 한다." 전북은 당시 윌킨슨의 대표팀 차출에 이어 정인환까지 부상을 당해 176cm의 측면 수비수 권영진을 중앙 수비로 기용하는 등 악전고투했다. 윌킨슨은 당시 호주 대표팀에 차출된 기쁨보다 전북의 우승 경쟁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걸 더 아쉬워했다. 호주에서 포항전, 서울전을 인터넷을 통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너무나 중요한 경기에 나서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호주에서 자신의 전북 유니폼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전북을 응원했다. 그만큼 전북을 향한 그의 애정은 넘쳤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축하를 하며 호주로 보내 준 윌킨슨은 대표팀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호주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윌킨슨을 벤치에 앉혀뒀고 호주는 이 경기에서 1-0으로 무실점 승리를 거두며 2연승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게 됐다. 고향 시드니에서 열리는 생애 첫 국가대표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던 가족들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윌킨슨은 낙담하지 않았다. "전북에서 열심히 뛴 것이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나를 알리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K리그와 전북이 나를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시켰다. 대표팀 선발의 기회를 제공해줬다. 비록 대표팀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겠다. 전북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 월드컵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윌킨슨은 전북의 배려로 곧바로 한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고국에서 휴식을 취한 뒤 전북의 멜버른 원정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3월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감격적인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자신의 익숙한 포지션이 아닌 측면 수비수로 나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에 머물렀지만 그는 역시나 불평 없이 최선을 다했다.
포스테코글루 호주 대표팀 감독도 최강희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윌킨슨을 점찍었다. 지난 5월 브라질 월드컵에 나설 호주 대표팀 예비 명단 30명에 윌킨슨을 포함시킨 것이었다. 팀 케이힐을 비롯해 마크 브레시아노, 루크 윌크셔 등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 윌킨슨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윌킨슨은 주전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대표팀 예비 명단 30명 안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것만으로도 기뻤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후 두 차례 평가전을 통해 윌킨슨을 실험했다. A매치 경험이라고는 단 한 차례뿐인 서른 살의 수비수를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 투입했고 반신반의했지만 윌킨슨은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남아공과의 평가전에 선발로 나선 윌킨슨은 팀의 1-1 무승부를 잘 이끌었고 이후 크로아티아전에서는 비록 0-1로 패하기는 했지만 크로아티아와의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상대로 전혀 기죽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 그리고 그는 지난 6월 믿기지 않는 통보를 받았다. "전북 수비수 윌킨슨을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에 포함합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방출을 눈앞에 뒀던 후보 수비수의 기적적인 변화였다.
윌킨슨은 칠레와의 경기에서 실점과 다름 없는 상황을 막아내는 '인생 수비'를 선보였다. (사진=연합뉴스)
꿈 같은 월드컵, 그리고 전북 동료들의 응원K 리그와 전북으로서도 엄청난 경사였다. 윌킨슨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카메룬 대표로 조별예선 3차전 칠레와의 경기에 나섰던 미첼(천안일화) 이후 무려 16년 만에 K리그에서 배출한 한국외 월드컵 대표 선수였다. 또한 그는 이번 월드컵에 단 한 명의 한국 국가대표도 발탁되지 않은 전북의 유일한 대표선수이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짐까지 다 싸 놓았던 윌킨슨이 이제 역사의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된 것이다. 비록 호주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칠레 등 '강호'들과 한 조에 속해 쉽지 않은 도전을 펼쳐야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당당했고 윌킨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윌킨슨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호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호주 대표팀에 합류할 때 한국을 가슴에 품고 왔다. 무명이었던 내가 전북에서 뛸 기회가 없었다면 월드컵 출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한국도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윌킨슨은 호주의 수비를 책임지며 '죽음의 조'로 뛰어 들었다.
역사적인 월드컵 첫 경기 상대는 칠레였다. 윌킨슨은 당당히 호주 포백 라인의 중앙을 책임질 선수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몇 달 만의 엄청난 변화였다. 하지만 칠레의 공격진은 무시무시했다. 윌킨슨이 막아야 할 선수는 알렉시스 산체스(바르셀로나)와 에두아르도 바르가스(발렌시아)였다. 가뜩이나 스피드가 단점으로 지적되는 윌킨슨으로서는 막기 버거운 상대들이었다. 비록 이 경기에서 호주는 칠레에 1-3으로 무너지고 말았지만 윌킨슨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1-2로 뒤진 후반 16분 윌킨슨은 바르가스가 호주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문으로 밀어 넣은 공을 끝까지 쫓아가 걷어내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공이 골라인에 살짝 겹쳐 있었지만 윌킨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부터 도입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통해 윌킨슨이 막아낸 공은 노골로 선언됐다. 그의 멋진 수비에 이어 전세계로 흐른 자막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Alex Wilkinson-Jeonbuk Hyundai' 비록 세 골이나 허용하며 실력 차이를 드러냈지만 전북의 유일한(?) 국가대표 윌킨슨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이 순간 목포 전지훈련을 마치고 전주 클럽하우스로 돌아와 K리그 후반기를 준비하고 있던 전북 선수들은 각자 방에 몇몇씩 모여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팀 동료 윌킨슨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호주-칠레전을 보며 호주의 실점 장면에는 탄식을 쏟아냈고 윌킨슨이 극적으로 공을 걷어내 한 골을 막아내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비록 국적은 달랐지만 팀 동료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윌킨슨을 위해 전북 구단은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마음 먹었다. 칠레전이 끝난 뒤 직접 한국에서 응원하는 전북 선수들의 응원 영상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서너 명의 선수 메시지만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더 많은 선수들이 "윌킨슨에게 할 말이 있다"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파비오 코치는 "내 응원 메시지를 꼭 넣어달라"면서 가장 적극적이었다. 한국과 브라질의 선수 및 코치가 호주를 위해 뛰는 윌킨슨에게 응원 영상을 제작하는 멋진 장면이었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을 통해 브라질 현지에 가 있는 윌킨슨의 아내에게 전달됐고 윌킨슨은 이 영상을 본 뒤 감동했다.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도 선발로 윌킨슨은 로빈 반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르엔 로벤(바이에른 뮌헨)을 막아야 했다. 당연히 버거운 상대였고 결국 전반 20분 로벤의 드리블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비록 호주는 이 경기에서도 세 골이나 내줬지만 네덜란드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를 선보이며 2-3 명승부를 연출했고 윌킨슨 또한 중원까지 올라가 적극적으로 네덜란드 공격수들을 괴롭혔다. 2패를 안은 상태에서 치른 스페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페르난도 토레스(첼시)와 다비드 비야(뉴욕시티 FC)에 맞서 윌킨슨은 네 번의 클리어링과 한 번의 가로채기, 87%의 패스 성공률을 보이며 최선을 다했다. 비록 호주는 이번 월드컵에서 3전 전패를 당했지만 호주의 포기하지 않는 투혼과 이런 팀을 이끈 윌킨슨은 박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윌킨슨은 대회 기간에도 전북 구단 프런트와 꾸준히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이런 말을 빼놓지 않았다. "전북에서 많은 팬들이 응원해 주고 있다는 걸 잘 안다. 전북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다. 감사할 뿐이다. 이번 대회에서 열심히 해 보답하고 나머지는 전북으로 돌아가 보답하겠다."
윌킨슨은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쏟아 부었다. (사진=연합뉴스)
당당했던 그의 첫 월드컵 도전윌 킨슨은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 후 현재 호주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다 다음주 쯤 전북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주변에서는 K리그 재개에 맞춰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최강희 감독에게 말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느긋하다. "아마 세계적인 선수들 상대하느라 몸이 많이 피곤했을 거야. 쉬라고 해. 그래도 그 녀석은 워낙 성실하고 '멘탈'이 훌륭해서 자기가 알아서 몸 관리 다 해 올 텐데 무슨 걱정을 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짐을 싸놓고 방출을 기다리던 이 선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꿈 같은 무대를 누비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늘 그가 책임감 있고 성실했기에 가능했던 일 아닐까. 늘 경기가 끝나면 마지막까지 남아 팬들에게 인사를 할 만큼 그라운드에 서 있다는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기에 그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월드컵 무대에서 3전 전패를 당했지만 그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힘들 거라고 생각한 서른 살의 나이에 이제 막 A매치에 데뷔한 '전북에서 온 국대' 윌킨슨은 그 자체로도 귀감이 되니 말이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40704n07871?mid=s9910&modit=1404435692역시 전북맨은 다르네요 ㅋㅋ
알레 전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