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문구멍으로 빼꼼히 내다보니 어리숙하게 생긴 집배원이 문 앞에 서있다.
“등기 왔습니다. 여기 사인 좀.”
언뜻 발송인을 보니 아무개다. 모르는 이름이다.
소포는 사절지 크기의 아담한 것이다.
부피도 작은 게 무슨 책이 들은 것 같다.
“옜소”
문을 닫고 소포를 ‘휙‘ 내 팽겨 친 후, 부산스럽게 방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째깍 째깍 시계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또다시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딩동, 딩동, 딩동,”
귀찮아서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는데 집요하게 울려 퍼진다.
“옘병할”
혀를 차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문구멍으로 빼꼼히 내다본다.
웬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서있다.
굵은 뿔태안경이 유난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지금 바쁩니다. 돌아 가시요.”
나는 문을 열지 않고 고함친다.
본새로 보아 틀림없이 잡상인일거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밖의 남자가 심상찮은 목소리로 간촉한다. ]
“아주 위급한 일입니다. 이문 좀 어서 열어주세요. 선생의 신변에 관한 일입니다.”
” 아 일없다니까.”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재촉한다.
“선생이 오늘 괴한에게 살해 당합니다!”
순간 귀가 ‘솔깃‘한다.
“뭐라?”
“선생이 오늘 이 자택에서 괴한에게 살해 당할거란 말입니다! ”
하도 기가 막혀서 남자의 얼굴을 빼꼼히 주시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회개 망측한 헛소리를 나불대는 거요?”
“헛소리가 아닙니다. 예견입니다. ”
“예견이라? 지금 나에게 사이비 무당 같은 헛소릴 늘어놓겠단 거요?”
남자가 다짜고짜 문손잡이를 움켜잡고 흔들어댄다.
둔탁한 쇠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찔러댄다.
“뭐하는 짓이요?”
“선생이 살해되는 장면을 봤습니다.”
어이가 없는 소리가 연거푸 이어지자 이윽고 할말을 잃게 된다.
“선생이 이 집에서 괴한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할거란 말입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돌아가시오. 허무맹랑한 헛소리 그만 읊어대고.”
정신 나간 미친 작자가 틀림없다고 판단하고 일언지하 등을 보이려는데,
뒤에서 초인종소리가 연거푸 귀청을 찔러댄다.
“딩동, 딩동, 딩동,”
“도대체 당신 왜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거야? ”
“이 문부터 먼저 열어주시죠. 들어가서 자세한 얘길 드리겠습니다.”
마지못해 문의 걸쇠를 풀어준다.
풀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남자가 집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연신 불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 호들갑을 떨어댄다.
나는 그를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된다.
“전, 정신과 의사입니다.”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내민다. 그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런 명함 쪼가리 하나 위조 하는게 무슨 대수겠는가?
뭔가 수상쩍은 남자가 틀림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오만불손한 행동이요?”
“최면요법에 대해 좀 아십니까?”
'?'
“정신과에선 우울증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최면요법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최면을 걸면 그 사람의 전생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지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미래까지 투시하곤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스트라다무스'나 성경의 '
요한'같은 예언가들이 그런 범주죠.”
갑자기 말을 뚝 끊은 남자가 심각하게 미간을 일그린다.
“선생님이 살해되는 장면이 투시되었습니다. 바로 얼마전, 최면치료 중에 말입니다.
환자에게 최면치료를 하던 중, 느닷없이 환자가 선생의 최후를 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죽는 장면이 예지되었다? 안면부지의 환자에게?”
“그렇습니다. 그 환자는 최면 중에 간혹 생판모르는 타인의 미래를 투시할때가 있습니다.
우리로선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 환자에겐 유독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21c 노스트라다무스의 부활이라 할까요. 아니나 다를까,
환자의 예지는 조사해보니, 적중률이 무려 100%입니다.
틀린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겁니다. 물론 아직 정식적으로 학계에 통보되진 않았습니다만. ”
『그럴테지 지금 하는 말 자체가 새빨간 거짓부렁 일 테니』
난 속으로 이렇게 중얼대며 더욱더 그를 미심쩍게 쳐다본다.
“그 환자가 말했습니다. 누군가 위험하다고, 괴한이 침입해 집주인을 사정없이 칼로
찔러대고 있다고,.. ”
난 하도 어이가 없어 한숨을 토했다.
“환자의 말을 추슬러 보니 바로 이곳, 즉 선생이 살고 있는 이 아파트의 이 호수였습니다.
때문에 전 이곳으로 부랴부랴 달려온 겁니다. 그 환자의 예견은 현실과 놀랍도록 적중한
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저이기에 말입니다.”
말을 맺은 남자가 어울리지 않는 뿔태안경을 한번 위로 치켜 올린 후,
심각한 표정으로 날 응시한다.
“얘기 끝났소?”
“선생님, 경솔하게 넘겨버리지 마세요. 이건 선생의 생명이 걸려있는 위급한 문젭니다.”
“이보쇼, 당신. 정신과 치료를 많이 하다보니 정신이 좀 어떻게 된 거 아니요?”
남자가 좀 언짢은 표정으로 날 쏘아본다.
뭔가 주춤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난 다시한번 매몰차게 말을 뱉는다.
“보시오. 의사양반. 쓸데없는 시간낭비 말고 환자치료에나 전념하시오.
그 허무맹랑한 소릴 지금 나보고 믿으란 거요? 내가 그렇게 아둔한 사람으로 보이요!”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니 정말 할말 없군요.”
” 할말 없으면 당장 사라져 주시요.”
내가 윽박지르자 의사가 못내 아쉬운 듯 푸념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도 말없이 일어나 현관문을 조용히 열어주며 그의 퇴장을 재촉했다.
“정말 유감입니다. 선생.”
“나 역시 유감이오.”
남자가 신발을 신는다. 나는 물끄러니 그를 바라본다.
그런데 신을 신다 말고, 남자가 난데없이 내 쪽을 올려다보며 묘하게 눈을 번뜩인다.
‘이런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싶어 움찔 방어태세를 취하려는데,
남자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선생, 혹시 선생 집에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이 있지 않나요?”
나는 두서없이 일축한다.
“없소이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는 물음푤 붙이기가 무섭게 번뜩이는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뒤이어, 거실 벽의 한쪽에 표구된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 저기 있지 않습니까?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 내가 신경쓸일이 아니요. 우리 집사람이 가져와 걸은거요.”
“보세요. 그 환자의 예지는 틀림없이 적중합니다. 선생의 아파트 명칭, 호실, 심지어
저 모사품들까지도 꿰뚫고 있지 않습니다. 가령, 고흐의 ‘해바라기’ 뿐 아니라 모네의
‘중국여인’도 표구되어 있다고 저에게 피력했었습니다. 저기 걸려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그는 고흐의 액자가 표구되어있는 바로 옆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당차게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이래도 제 얘기가 허무맹랑하다고 묵살하실 겁니까? 지금 선생의 상황은 매우 급박합니다. 제발 제 말대로 따라주세요.”
난 잠깐 동요하게 된다. 그의 말에 은근히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있다.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이렇게 멀쩡하지 않소. 그렇다면 그 예견은 애초부터 틀려 먹었다는 반증이 아니요?”
“아닙니다. 틀린게 아닙니다. 아마 조금 뒤에 사건이 발생할 겁니다. 그녀가 예견한 저
모사품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예견은 적중했습니다. 시간이 급박합니다.
어서 이곳을 피해야 합니다.”
난 잠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적어도 저 모사품이 이집에 있다는 걸 간파할수 있는 방법은 추호도 없었다.
미리 봐두지 않는 한 말이다.......잠깐..... 미리........봐둔 .....다...
앗, 그렇다.
이런, 감쪽같이 속을 뻔 했다....
난 그에게 공박하듯 내뱉는다.
“이런, 잘도 날 속이려 수작을 부리는군! 당신, 당초 집에 들어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수상쩍은 행동을 보였던 와중에 저 그림들을 은근슬쩍 기억해 뒀단 걸 내가 모를 줄 아는가!”
놈이 묵묵부답으로 날 노려본다.
아마도 내 예상이 적중했나 보다. 뭔가 불안해 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다.
그렇다. 저 어울리지도 않는 뿔태안경으로 얼굴을 가리려 했을때 부터 수상했다.
아마도 음흉한 속셈이 깔려 있는 작자가 틀림없다. 절대 말려들면 안 된다.
“선생, 정말 말이 안 통하는 분이군요. 제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내가 알 턱이 있나! 무슨 엉큼한 속셈을 숨기고 있을지, 아무튼, 그 안 어울리는
뿔태안경부터가 난 맘에 안 들어 !”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토했다.
“나, 참, 정말 할말이 없군요.”
“나 역시 할말 없긴 매한가지야. 그러니 제발 내 귀중한 시간 그만 뺏고 당장 사라져!”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저었다. 그리곤 등을 돌려 문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놈의 퇴장을 재촉하기 위해 놈을 시종일관 을씨년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런데 다음순간,
놈이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꺼내더니 느닷없이 내 머리를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난 무방비 상태로 넋 놓고 놈의 일격탄을 그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풀썩 거꾸러질수 밖에 없었다.
『 빌, 빌어먹을, 애초에.....
......문을 열어주지 말것을... 』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이다. 정신은 일순 몽롱해지더니 이윽고 빠르게 혼미해져 갔다.
먼 발치에서 놈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만 나즉히 귓가에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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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차게 몸이 흔들린다. 누군가 날 무식하게 흔들어 깨우고 있는게 분명하다.
눈을 뜨니 요란하게 울려대는 싸이렌 소리에 귀가 왕왕거릴 정도다.
난 미친 듯이 사방을 둘러본다.
이윽고 혼란스런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포착된다.
바로 놈이다.
『머린 좀 괜찮습니까?』
놈이 능글맞게 웃으며 날 위로하는 척 가증스러운 위선을 연기한다.
『선생, 제가 선생의 정체를 언제 알았는지 아십니까?』
난 침묵한다. 놈의 능청스런 얼굴에 침이라도 연신 뱉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바로 선생의 집에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이 있지 않냐고 물어보던 순간이였습니다.
선생은 없다고 딱잘라 일축했죠. 전 순간 의아했습니다. 뒤에 선생이 구차하게 '집사람이
걸어놓아서 신경쓸일이 아니다'라고 연유를 달았지만 저에겐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모사품이라고 해도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작품의 이름까지 모를수가
있나? 하물며 집주인이 말입니다....』
숨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격분이 치솟는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허파가 타들어가는
느낌이다.......굴욕적이다. 수치스럽다. 놈을 얼굴이라도 후련하게 갈겨줬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러나 그럴수 없다.
내 두손은 수갑으로 단단히 포박되어 있기에...
빌어먹을.....
『그래서 전 한번 실험을 해봤습니다.
고흐의 그림 바로 옆에 걸려있던 모네의 '일본여인'을 은근슬쩍 '중국여인'이라고 바꿔 말하며
짐짓 선생의 반응을 주시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여전히 눈칠 못채더군요.
전 그때 비로소 확신했습니다.
선생이 이집의 주인이 아니란 것을, 그럼 선생은 누굴까요?
해답은 하납니다. 예견이 100% 적중률을 보인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까요.......
즉, 제가 한발 늦었다는 겁니다.
집주인은 이미 괴한에게 살해당했다는 겁니다.
바로 당신에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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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루리웹 연재 소설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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