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은 본래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것과 정당한 것은 다르다는 것도 잘 안다. 아이가 크면서 배우는 예의, 도덕, 타인에 대한 배려 의무, 그런 것들은 전부 자기중심적 성향을 규제하고 교정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발언과 행동들이 보도되는 걸 보고 있자면, 저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자기중심적일까라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된다. 한 마디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 기분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고 내 기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들은 전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식이다.
추문과 조문, 장례는 별개의 문제다.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조문이나 추모, 서울시장례를 가지고 피해자 배려를 운운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입장에서 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연이나 감정, 인식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종래의 자기 입장에서 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바탕으로 추모하거나 조문하는 것이 왜 피해자 배려 문제와 엮여야 된다는 건지 그 폭력성이 참으로 놀랍다.
조문이나 공식 장례 절차는 그 사람이 무고하다고 선언하는 절차도 아니고 죄가 없다고 공인하는 절차도 아니다. 엄연히 추문과는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절차인 이상 각자의 입장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맞지 나의 관점과 입장을 강요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마치 그 사람을 인권운동가나 서울시장, 나의 상사, 평생의 동지 등으로 기억하는 건 전부 잘못된 것이고 (재판도 안 받은 마당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성범죄자로 손가락질해야 마땅하다는 태도다. 이건 자신들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선을 넘는 과도한 요구이며 전형적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태도라는 점에서 명백히 폭력적이다.
류호정
정의당 류호정이 조문을 가든 말든 그것도 본인 자유이고, 본인이 추모의 감정이 없는데 억지로 추모를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걸 가지고 가타부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조문이 옳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말했듯이 고인에 대한 조문은 고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되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감정과 입장이 존중되어야 할 문제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추모의 정이 안 생긴다고 한다면 그건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감정만 옳고 남의 다른 입장과 감정은 전부 틀렸다는 식의 태도는 유아적인 것이다. 제발 좀 자기 감정을 남에게 강요하려고 하지 말고,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식 절차는 문제 아니냐고?
공식 장례 절차는 직원들만의 사적인 행사가 아니고 세금을 투입하는 공적인 절차이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점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사실 관계가 공적인 절차에 의해 혹은 충분하게 밝혀진 것이 아닌 현 시점에서는 달리 객관적으로 공과를 판단할 기준이 없는 이상 형식적 요건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따라서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객관적 기준이나 근거가 없을 때 논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합리적으로 수습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공식 장례를 치른다고 해도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행실과 그에 따른 평가는 여전히 각자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유족도 사실 규명을 거부해선 안 된다
일방의 주장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빌미로 진실 규명을 거부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본다. 내가 일관되게 말하고 있지만, 자기 입장과 감정만 너무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정도의 경력과 지위라면 이미 공적인 인물이다. 공적인 인물의 행적에 대한 사실 규명과 평가를 사적인 추모 감정을 이유로 비난하는 것도 과도한 요구로 보인다. 사실이 어떠하든 그 사람에 대한 평가와 감정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안희정의 모친상에 대한 조화
이 문제 때부터 느끼던 것이 이번 문제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이 한 마디 하게 된 이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왜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과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냐는 것이다. 죄인을 재판해서 처벌하는 것은 공적인 부분이고 그건 합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적인 인연과 관계, 그 사람에 대한 평가와 감정에 대해서까지 자기 입장을 강요하려고 해선 안 된다. 아무 죄 없는 모친을 추모하는 것이고 사적인 인연 때문에 상주로서의 그 사람을 위로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존중해야지 왜 남의 감정에 대해서까지 자기 입장을 강요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것인가?
유죄 판결 역시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요구할 수 있어도 판결이 납득이 되는지 여부는 여전히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이 사건에서는 상충되는 증거들이 제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 유죄가 되기 위해서는 상충되는 부분들이 해소되어야 한다. 상충되는 증거들을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주관적으로 취사선택해서 유죄로 만드는 식의 판결이라면 그런 건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합리적 의문에 대해서는 사실과 논리를 근거로 반박해야 함에도 2차 가해 운운하며 매도하는 폭력적인 태도도 납득할 수 없다. 형사재판이란 그 자체가 중대한 통치 행위로서 전부 공적인 사안이다. 일방의 입장만이 무조건적 선이고 의문 제기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은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이므로 명백히 폭력적인 행태다.
도덕과 윤리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야 할 사람들이 왜 이다지도 비윤리적이고 반지성적인 태도만 보이는지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