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진행자 유희열(오른쪽)이 가수 루시드 폴(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희열라인’이 가요계 평정한 비결
시사INLive|입력 2011.06.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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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 경향신문 > 에서는 "찍히면 뜬다, 가요계 '유라인'"이라는 제목으로 유희열과 그 '라인'을 다룬 적이 있었다. 그 기사는 '유라인'에 대해 "아이돌이 전면에 나선 대중음악계 곳곳에서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주는 샘물 같은 존재들"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 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이라는, 자기 이름을 건 두 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는 확실히 인디나 메이저 음악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음악적 영역의 중심에 있는 아이콘처럼 보인다. 이적과 윤종신과 윤상, 장기하와 10cm와 옥상달빛, 그리고 아이유를 모두 이을 수 있는 이름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희열이 아이콘이라는 말은 그가 '사장님'처럼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예를 들면 신진 아티스트 영입에 힘을 쓴다거나 혹은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 '세'를 구축한다는 뜻과는 좀 다르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말을 빌리면 오히려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시장의 상황이 변하면서" 아이콘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토이의 이름으로 여섯 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동안 유희열은 대중 스타는 아니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뮤지션으로 꾸준히 평가받아왔다. 그렇다면 시장의 상황이 어떻게 변한 것일까.
최근 몇 년간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대중문화계 전반을 사로잡은 것처럼 보이는 화두는 '캐릭터'다. 이소라가 < 나는 가수다 > 에 나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보여주고(혹은 보여지고), 거기서 자기 노래의 감동을 끌어내(도록 편집되)는 모습은 오늘날의 방송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사연이 있거나 캐릭터가 있거나, 아니면 둘 다 있어야 한다. 어쨌든 노래만으로는 안 된다.
'유라인'의 뮤지션들이 이 상황에 잘 적응해왔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성공적으로 예능인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진지한 뮤지션'으로도 인정받는 윤종신의 경우는 가장 극적인 예다. 유희열의 최근 캐릭터인 '감성변태'는 성적 코드를 담고 있으면서도 ('유라인'의 주요 소비층일) 20~30대 여성들의 얼굴이 찌푸려질 만한 모종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캐릭터와 음악 사이의 거리가 거의 없는 10cm와 같은 그룹이 '남자애들'이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인기를 누리는 것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상의 코드를 소소한 웃음에 담을 줄 아는 '옥상달빛' 또한 캐릭터와 음악을 떼어놓기가 곤란할 정도다.
이 예능감이 '지적'이라는 점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에서 유희열은 '삑사리'를 냄으로써 '가수라면 노래를 잘 불러야지'로 요약될 수 있는 '가창력 신화'를 밉지 않게 조롱한다. 루시드 폴의 '스위스 개그' 또는 정재형의 '예술가연'하는 태도들은 자기에게 부여될 법한 통속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들(이를테면 '엄친아'나 '유학파 예술가')을 잘 알고 그걸 슬쩍 비켜나감으로써 웃음을 만든다.
1990년대 가요의 영향 받은 뮤지션들
1990년대 가요가 최근 음악시장의 유력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이 라인의 입지를 굳힌다( < 나는 가수다 > 는 이 경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른바 '아이돌판'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인디 신의 '낯선' 음악들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1990년대의 감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그러면서도 나름의 '음악성'을 담보한 것처럼 보이는 '유라인'의 음악은 단순한 틈새시장 이상이다. 메이저와 인디 사이에서 공연과 음반·음원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 '중간계' 음악들은 '가창력 신화'도 슬쩍 비켜가면서 음악성의 주요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지는 '싱어 송 라이터'라는 타이틀 또한 강하게 부여잡는다.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가요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인디 신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각광받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경우 아예 작업의 롤 모델을 015B와 토이 등으로 잡고 '수련'하기도 했다. 얼마 전 정규 데뷔작을 발표한 여성 뮤지션 '야광토끼' 역시 그 시절의 향취를 듬뿍 담은 일렉트로 팝을 구사한다. 이미 유명세를 충분히 치르고 있는 9와 숫자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인디 신의 '연성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다른 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적 뿌리를 여기서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유희열이라는 특정 뮤지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최근의 인디 뮤지션들과 유희열이 연결되는 지점은 그보다는 추상적이며 간접적이다. 오히려 최근의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레퍼런스'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원더걸스와 손담비는 모두 1980년대를 자신의 레퍼런스로 삼았다. 그러나 '텔미(Tell Me)'가 참조한 것은 롤러 스케이트장 팝송이었고 '토요일 밤에'가 본으로 삼은 것은 김완선이었다. 만약 우리가 유희열의 음악에, 그리고 1990년대의 가요에 새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 '그때는 가요의 르네상스였지요'라는 식의 추상적인 회고보다는 더 구체적인 현상에 근거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동아기획과 하나음악, 유재하가요제를 축으로 삼고 있는 '유라인'의 음악에 대해서는 좀 더 냉정한 반응이 필요하다. 이 음악들의 즐거움은 절충적인 성격의 미덕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음악에 대한 수용과 평가는 '진짜 음악'과 '가짜 음악'이라는 이분법에 암묵적인 근거를 두곤 한다. 이를테면 유희열이나 김동률, 이적의 음악을 일컬을 때 사용되던 '고급 가요'라는 말은 자동적으로 '저급 가요'의 존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나는 가수다 > 의 놀라운 성공 역시 상당 부분 이 프레임에 근거를 두었다. 그래서인지 이 '중간계' 음악에 대한 평가도 종종 관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시장 상황이 지금과 달라진다 하더라도 유희열과 '유라인'은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있을 것이다. 마치 배 위에 서 있듯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배 위에 서 있다는 것은 결국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균형감각을 냉소적으로 볼 수는 있어도 없는 것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유라인'의 '중간계' 음악이 그 균형감각에 값하는 비중을 차지하게 된 이 형국이 대중음악계의 '천하삼분'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최민우 (음악평론가) /
옥상달빛, 에피톤 프로젝트, 10㎝(맨 왼쪽부터)를 비롯해 윤종신과 이적 그리고 아이유까지 모두 이을 수 있는 이름은 '유희열' 외에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