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 년 동학 농민운동
* 부패한 탐관오리와 침략을 노리는 외세에 맞서 농민들이 봉기하다.
1895년, 을미의병. 명성황후 시해에 격분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1905년, 을사의병. 을사늑약에 반발하여 유생과 농민이 나라를 구하기위해 봉기하다.
1907년, 정미의병. 국권을 빼앗기고 군대가 해산당하자 일본에 맞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1919 년. 3.1 운동. 전국에서 독립을 요구하며 만세시위. 약 200 만명 참가. 일제의 잔혹한 진압으로 7 만명 이상의 사상자 발생.
식민지에서 벌어진 수백만 단위의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이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킴.
* 3.1 운동 당시 종로거리
1920 년 ~ 1945 년. 독립군-광복군. 항공모함 부대를 운영해서 미국과 전쟁을 벌이던 일제를 상대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항.
1,000 km 를 걸어서 행군한 뒤 촬영한 독립군 사진. 왼쪽부터 노능서/김준엽/장준하.
1950 년 ~ 1953 년. 학도병, 재일의용병
6.25 가 발발하자 징집대상이 아니던 학생들까지 자진해서 총을 잡고 전선으로 나가서 적에게 맞섬.
군산지역 학도병 기념사진. (중학생들로 이루어진 부대)
1960 년 3.15 의거.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 시민과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 경찰에 잔혹한 진압으로 사상자 대거 발생.
1960 년 4.19
3.15 부정선거와 마산의거의 잔혹한 진압에 사망한 김주열군 시신을 몰래 바다에 버린것이 발각.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여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 발생. 시위결과 이승만 하야 후 해외로 도주.
1979 년. 부마항쟁
박정희 유신정권에 결정타를 먹인 부산마산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저항.
대규모 무력진압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함에 따라 취소. 부산, 마산지역은 피바다가 되지않음.
1980년 5월 서울의 봄.
박정희 사망 후 바로 정권을 다시 찬탈한 전두환에 저항하여 서울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
최대 100 만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집결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여 전두환을 궁지로 몰아넣었으나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심재철-현 새누리당 의원) 의 주장대로 자진해산.
1980 년 5. 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대규모 시위와 무력충돌이 발생.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함.
집계된 사상자 약 3,400 명.
1987 년 6월 항쟁
독재를 연장하려는 전두환에 맞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저항. 참가인원 100 만명 이상.
이 저항의 결과로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직선제가 확립.
2004 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여 대규모 촛불시위 발생.
2008 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인 정책결정과 불소통 방식에 불만이 쌓여 대규모 촛불시위 발생
여기에 기록된 것은 고작 100 여년의 기간동안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최소 수만명 이상, 최대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불의에 저항했던 한국인들의 역사입니다.
이 외에도 미처 쓰지않은 수많은 저항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은 권력에 굴복하고 나서기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 말하며 자포자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굳이 당신에게 거리로 나서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지켜야할 가정이 있고 먹여 살려야할 가족이 있는데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알고만 있으면 됩니다.
나 대신 거리에서 피흘린 사람들이 있었고, 그 분들 덕에 내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다고 알고만 있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