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성근(75) 감독은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난달 경질을 감지하고 신변정리에 들어갔다. 이 때 구단측이 굴욕적인 ‘권한제한’권고를 받아들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1984년 OB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그동안 그룹 수뇌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했다. 지난해 박종훈 단장 영입을 결정한 한화 구단은 “더이상 비정상적인 팀 운영을 좌시할 수 없다. 장기적 강팀으로 기반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김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면서 권한을 1군 운용에만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권고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알았다”고 답했다. 그 조건으로 내건 내용이 ‘수준급 외국인 투수 두 명을 영입해 달라’였다. 평소 김 감독의 성격을 고려하면 선뜻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김 감독은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고 오갈데 없어진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분이 김승연 회장이다. 중간에 그만두면 그 분이 배푼 선의를 외면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있는 동안은 한화를 약팀 이미지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화의 사훈이 신용과 의리라고 들었다. 믿고 맡겨주신 회장의 선택에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용과 의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김 감독은 “나 하나 믿고 온 코치들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김광수 수석코치를 필두로 계형철 김정준 정민태 윤재국 코치 뿐만 아니라 올해 영입한 이철성 최태원 코치, 이미 경질된 박상열 이홍범 코치 등은 누구도 김 감독과 함께 하지 않으려 할 때 선뜻 한화행을 결정한 코치들이다. 김 감독은 “한 구단의 코치에 불과하지만 이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버지다. 나 하나 믿고 들어왔는데 내가 떠나면 이들과 이들 가족은 누가 책임지나. 사표를 던지고 떠나면 나는 홀가분하지만, 이미 11월에 갈 곳을 잃은 코치들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 이들이 눈에 밟혀 계약기간 동안은 구단에 몸 담으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마무리캠프 이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던 젊은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도 김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구단이 1, 2군을 분리운영하기로 결정한 터라 한 번 2군에 내려간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한 이유다. 그는 “이동훈이나 강상원, 김주현, 박준혁 같은 젊은 야수들은 한화의 10년을 책임져야 하는 선수들이다. 이태양과 윤규진뿐만 아니라 김범수나 김경태 등 어린 투수들도 1군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려야 다음에 올 감독이 팀을 꾸려갈 수 있다. 스스럼없이 장난도 걸어오며 ‘야구가 재미있어요’라는 어린 선수들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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