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제목 : 백마 탄 백수 작가 : 이대리 ([email protected]) 팬카페 : 8편 재방송 아, 앞으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할까. 이젠 백수라는 직업도 퇴직해야하는 건가. 그 인면수심의 철면피 같은 여우 때문에 내 백수생활의 미래가 위협을 받는구나. 우라질! 분위기도 안 좋은데 시간이나 때우고 들어가야겠다. 태풍이 쓸고 간 논바닥처럼 심하게 눌린 머리에다 때 국물이 찌든 꾸질꾸질한 런닝셔츠와 반바지차림으로 엄마 쓰레빠를 질질 끌며 끝없이 걸어댔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훌쩍~!』 어젯밤에 우리아빠가 ♬♩♪~ 험악하신 모습으로 ♬♩♪~ 한 손에는 골프~ 공을 ♬♩♪~ 사 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 밤새~ 꿈나라에 ♬♩♪~ 둥근 골프공이 날라 다녔고 ♬♩♪~ 청년백~수 한대수는 ♬♩♪~ 기절하고 말았지요 음음 ♬♩♪~ 며칠 동안 열심히 이력서 쓰고 요기조기 회사에 면접 보러 다니는 척 했다. 꿈속에서까지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골프공과 거실에 걸려있는 무시무시한 전깃줄들이 내 모든 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집안 권력자들 눈에 좀만 더 거슬렸다가는 저 전깃줄에 꽁꽁 묶인 채 고문이 시작될 것이다. 그 동안 백수로 살아오면서 권력자들에게 별난 고문은 다 당해봤지만 전기고문만큼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우라질! 피도 눈물도 없는 그 불여우에게 신용불량 블랙리스트의 거대한 빚을 어떤 식으로 상환해줄까. 일시불로 화끈하게 갚아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잠깐, 깍두기가 없으면 혼자 살고 있을 텐데, 몰래 침입해서 그 동안 모아둔 바퀴벌레로 드 림팀을 구성해 번식시킬까? 아니면 재즈댄스 회원으로 위장 가입한 다음 자진사퇴 할 때까지 악착같이 붙어다니며 괴롭 힐까? 음,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기 때문에 잠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작전을 짜봐야겠다. 잠깐, 내가 뭐하고 있었드라? 아, 맞다! 『오백칠십육개.. 오백팔십칠개.. 육백이십이개..... 육백사십구개.』 아싸! 드디어 다 샜다! 내 방 천장의 꽃무늬는 정확히 육백사십구개다. 우하핫! 드뎌 내방을 평정했구나. 장하다. 근데 이렇게 다 새고 나니 6.25때 중공군 인해전술 하듯 허전함이 밀려온다. 앞으론 뭘 새고 사냐. 수량확인 하는 아르바이트 같은 거 없나? 그런 거 있으면 오차 없이 신속 정확하게 셀 수 있는데. 쩝. 오늘은 뭐할까? 이젠 방바닥에 새겨진 도형들의 기하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지겹고, 천장과 벽에 새겨진 꽃무늬들의 틀린 그림 찾기도 지루하다. 어디를 방황하다올지 행선지 선정작업을 해보자. 오락실? 분명 이사 온 그 십센치가 뻐기고 있을 거다. 정말 분하다. 모든 오락기계에 하이스코어 남기고 내 이름 입력해둬서 동네에서 나 모르면 간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넘 이름이 1등 자리에 랭크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 세계의 직업윤리가 있기 때문에 패배자는 그 세계에서 미련 없이 떠나야한다. 그럼 만화방? 아니다. 저번에 한 권 값 내고서 세 권 보다 걸려 도망갔었구나.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올까? 헌혈하고 올까? 도살장 구경 갔다 올까? 꼬마애들이랑 짤짤이 할까? 동네 반상회 갔다 올까? 빈 병 수거하러 다닐까? 시체 닦고 올까? 후아~ 그러고 보니 할 일이 엄청 많구나. 뿌듯하다. 참, 그러지 말고 동이네 가게나 가보자. 동이녀석한테 전화를 하니 방금 일어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지금 일어났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하핫! 난 내가 더 부지런하다는 생각에 기쁨을 느꼈다. 오늘도 엄마가게를 봐준다는 동이 말에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섰다. 평상시엔 반바지에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지만, 오늘은 뭔가 뿅뿅한 일이 있을 것 같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왔다. 동이네 비디오방에 들어서니 천장에서 비행 정찰중인 날 파리들이 보였다. 자세히 봤더니, 파리 뒷다리에다 실을 메달아 놓은 것이었다. 신기했다. 왜 실을 매달았냐고 물었더니 체력은 국력이라며, 가장 오래 버티는 놈만 살려 준다고 한다. 언젠가 "세상에 이런 사람이"에 실릴 만큼의 끼가 충분한 녀석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가게 몇 시까지 보기로 했냐?』 『엄마 오실 때까지.』 『손님 많냐?』 『그냥 좀 있어. 왜?』 『아니, 그냥.』 화장실 가는 척 하며 이리저리 방을 하나씩 들여봤다. 훌륭한 한 쌍의 바퀴벌레들이 보인다. 우라질, 따로 떨어져 보면 노동1호 미사일이라도 떨어진다냐! 방 불을 환하게 켜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근데, 여기저기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카메라들은 뭐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이 카메라들 뭐냐?』 『아, 요즘 비디오테이프 훔쳐 가는 인간들 많아서 설치한 거야.』 어딜 가도 몰래카메라 투성이구나. 하긴 입 속에 있는 금이빨도 몰래 훔쳐 가는 세상이니까. 근데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감시카메라 때문에 뒤통수 간질간질해서 어떻게 사냐. 카운터에 앉아서 동이녀석에게 디스플러스 하나 빌려 피우고 있는데 럭셔리한 남자가 애로 틱한 여자 한 명을 끌고 들어오더니 말한다. 『가장 긴 영화로 하나만 골라주세요.』 그러면서 비디오테이프 진열대는 쳐다보지도 않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 나랑 똑같은 사상을 가진 넘이다. 반갑구나. 허걱! 저 여자는, 내가 예전에 등 처먹었던 여자다. 잽싸게 얼굴을 돌리고 영화를 고르는 척 했다. 다행히도 날 못 알아본 것 같다. 휴~ 등 처먹고 다닌 여자들이 많아서 앞으로 조심해야겠구나. 『대수야~ 오늘 센터에 갈 거야?』 『미쳤냐! 그 여우같은 뇬이 버티고 있는데 거길 왜 가냐! 이젠 쪽팔려서 미래한테 돈 뜯으 러 다니지도 못 할 것 같다.』 『헤헤. 몽타쥬도 괜찮은데 한번 꼬셔보지.』 『걔가 인간으로 보이냐? 여우에 탈을 쓴 악마지! 기다려봐라. 조만간 통쾌한 소식하나 들 려줄 테니. 그건 그렇고, 미리 돈이나 좀 꼬불쳐 놔. 엄마 오시면 한잔하러 나가게.』 『나, 이제 그만 놀고 싶어. 엄마 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다.』 『임마! 이런 꽉 막힌 공간에 갇혀있는 게 뭐가 좋냐!』 『그리고 나 자꾸 놀러 다니는 거 미래가 안 좋게 본단 말야.』 『신발! 너 끝까지 미래 포기 안 할거냐!』 『치, 난 미래 좋아하면 안 되나?』 『넌 국어랑 산수도 안 배웠냐! 니 주제랑 분수에 맞는 짓을 해라.』 『그러는 넌, 나보다 잘 난 게 뭐가 있다고. 난 일하는 곳이라도 있지.』 『이걸 확! 그래, 넌 이제 백수 아니다 이거지? 알았다! 나 혼자 놀 테니, 넌 계속 파리나 날려라!』 문을 박차고 나왔다. 우라질! 이젠 저 녀석한테도 무시당하는구나. 신발! 그까짓 비디오방에서 일하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밴댕이 콧구멍 같은 넘. 나 같으면 그 동안 배신 때린 게 미안해서라도 한잔 사겠다. 근데 저 넘이 요즘 이상하네. 게임에 환장해서 비디오방 제껴두고 겜방에다 텐트 치고 서식 하던 녀석이 가게에 짱박혀 있질 않나, 또 돈 띵깠다고 좋다며 수시로 불러내던 넘이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턱을 치켜드는 모션을 취하질 않나. 저 넘도 고문당했나? 거참 미스테리네. 미스테리야~ 떨어진 은빛 동전이 있는지, 땅을 쳐다보며 한참동안 걸어다녔다. 예전엔 하늘보고 당당히 걸어다녔지만 이젠 땅 쳐다보며 떨어져있는 동전 찾고 다닌다. 그렇게 주은 동전으로 옆 동네 오락실 가서 세시간은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경제가 침체될수록 수많은 경쟁자들로 하여금 길바닥의 동전들이 멸종위기에 처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져 동전 줍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동전은 안보이고 전봇대에 붙여진 장기매매 스티커만 눈에 띈다. 전화번호를 적을까말까 한참 망설였다. 한 대수. 더 이상 비참해지지 말자.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걸었다. 꼬르르륵! 위에서 밥 달라는 비명이 들려온다. 된장, 배는 고프고 먹고 싶은 건 많은데 자금이 없으니 정말 초라하구나. 확 그냥 지나가는 차에 몸을 날려서 돈 좀 벌어볼까? 됐다. 반병신 될 일 있냐.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자. 띵기리, 밀가루 살 돈도 없구나.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으라던 노래의 작사가는 밀가루공장 직원이었나? 아, 배고파서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을 지경이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누가 말했던가. 정녕 배부른 자의 오만이로구나. 머릿속으로 닭다리를 연상하며 배고픔을 달래고 있는데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옆을 바라보니 예식장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앗! 오늘이 황금의 일요일이었구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룰루랄라~ 밥 챙겨 먹으러 가야쥐~ 백수는 남들도 같이 쉬는 일요일이 허무하지만, 이렇게 무료급식소가 운영된다는 점에선 참 좋다. 하핫! 예식장으로 들어오니 신랑신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틈을 타 신랑 측에 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안녕하세요? 재식이 친구 한대수라고 합니다.』 그러자 신랑 이모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의아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래요? 재식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네요.』 『하핫! 제가 좀 어려 보이죠? 참, 바빠서 봉투를 준비 못했네요.』 『훗~! 여기 있어요.』 한쪽에 짱 박혀, 밖에서 미리 적어 온 종이를 몰래 넣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재혼할 땐 꼭 축의금 넣어드리겠습니다. ^^" 봉투를 다시 건네며 얼굴주름을 늘렸다. 『아, 바빠서 밥을 안 먹고 왔더니 배가 무지 고프네~』 『훗~! 여기 스티커 받으시고 2층으로 가셔서 식사하고 오세요. 결혼식은 30분 후에 시작할 거예요.』 『하핫! 감사합니다.』 2층으로 부랴부랴 올라가니 나의 시야에 고급음식들이 쫘르르르 펼쳐진다. 참치 회부터 시작해서 연어 회, 장어양념구이, 탕슉, 떡갈비, 초밥, 돈까스....등등, 지금까지 결혼식 나그네 경력 2년 동안 봤던 음식들 중에서 순위 권 3위안에 랭크될 푸짐한 음식들이 었다. 하핫! 오늘 땡잡았구나. 모든 음식들을 종류별로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아와서 허리띠를 푸르고 임신 10개월 레벨이 될 때까지 배터지게 먹어댔다. 커억~! 모처럼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뿌듯한 마음으로 결혼행진곡을 들으며 예식장에서 몰래 빠져 나왔다. 남들은 날 보며 백수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안빈낙도를 즐기는 도인이라 생각한다. 하핫! 뽈록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거북이걸음으로 집을 향하는데, 런닝셔츠 차림에 목에는 잔 뜩 구겨진 수건을 둘러매신 어느 할아버지가 고철이 가득 차 있는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올 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혹시나 나에게 119긴급 구조 요청을 할까봐, 못 본 척 하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갔다. 『이보게~ 와서 좀 밀어줄텨?』 웁스! 그냥 못 들은 척 하고서 마치 경보시합을 하듯이 재빨리 걸었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나쁜 넘은 아니다. 웬만하면 도와드리고 싶지만, 언덕의 경사와 리어커 의 실린 고철의 양과 무더운 날씨로 봐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아무튼 이렇게 더 빨리 걷고 있는데 다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이누마~ 귀가 먹었냐? 와서 밀라고!』 허걱! 지금 내가 이렇게 놀래는 이유는 할아버지의 말투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걸음을 빨 리 해서 걷고있는데도 아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봤다.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는 핏줄 가득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참나, 주위에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집착을 보이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된 장, 너무 착하게 생겨도 탈이구나. 『이런, 이 무거운걸 혼자서 끌고 계셨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뒤에서 힘껏 밀어드릴 게요.』 갑자기 이렇게 친절해진 이유가 있다. 주위에 모든 눈알이 나에게로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이 넘의 동방예의지국! 결국 언덕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옆 동네에 있는 어느 고물 상 앞에 도착해서야 일이 끝났다. 좀만 가면 된다더니. 지금 탈진상태에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헤롱헤롱~~ 앞으로 리어커 끌고 다니는 분들 존경하기로 했다. 고물상 앞에 쓰러져 헥헥거리며 탈진상태에 접어들고 있는데 일을 마친 할아버지가 다가오 신다. 『자네 학생인겨?』 『예? 뭐, 그냥...』 『빈둥빈둥 노는 젊은이들이 많다던데, 할 일 없으면 이거나 한번 해볼텨?" 『예? 제가 이런 걸 뭐 하러 해요?』 『때끼! 뭐 하러 하긴!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잔여! 딱 참고 한 달만 해봐. 나도 얼 마 전까지 노숙자로 지냈는디, 이렇게 땀 흘려 일해보니 사는 맛이 나더구나.』 『할아버진 이 일 하시면서 한 달에 얼마나 버세요?』 『와? 굶어죽을 까봐 걱정이여?』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일해서 얼마나 벌겠어. 그저 먹고 살 정도면 되지.』 『그러니까, 그게 얼마인데요?』 『20만원.』 허걱~! 수천, 수억이라는 가늠할 수도 없는 숫자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고서 고작 20만원만 번다는 게 말이나 되냐. 집으로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요즘같이 물가도 세고 들어갈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은 세상에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러고도 행복하단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할아버지처럼 비록 먹고살기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사는 모습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차피 뼈빠지게 벌어봐야 먹고살기 힘든 거, 그냥 놀면서 여기저기 떠돌며 급식소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노숙자들은 불행한 걸까? 어찌됐건, 나도 노숙자랑 별반 다른 게 없구나. 나도 쥐꼬리만한 월급 받고 일할 바에 차라 리 백수로 지내는 게 났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여기저기 밥 얻어먹으러 다니기 바쁘니까 말이다. 그러나 어쩐단 말인가. 돈의, 돈에, 돈을 위한 e-편한 세상에서 나도 돈 많이 버는 곳에 들어가 인정받으며 쿨하게~ 살고 싶은데. 아! 돈 뭉치로 날벼락 한번 맞아보고 싶구나. 집으로 들어오니, 아부지가 뉴스를 보고 계셨다. 요즘 촬영 때문에 한참 바쁘실 텐데, 집에 종종 계시는 게 신기하다. 날 감시하려는 건가? 아무튼, 감시카메라도 그렇고 나의 행동을 의식하고 계신 아부지도 부 담스럽다. 뉴스를 보고 계시던 아부지가 한 말씀하신다. 『요즘 실업자가 많이 늘었다는데 덜 쪽팔리겠다.』 혀 깨물고싶었다. 예전엔 백수들 보면 뿌듯했지만, 이젠 경쟁력을 느껴 죽여버리거나 죽고싶은 마음뿐이다. 『배가 많이 튀어나왔구나. 오늘은 남의 예식장 가서 식사라도 하고 왔냐?』 허걱! 무당이다. 그냥 작두를 타시지. 빨래를 하고 계시던 엄마가 고무장갑을 낀 상태로 다가오신다. 고무장갑에게 귓불을 붙잡힌 채, 오뉴월에 개처럼 내 방으로 질질 끌려갔다. 『이 쌍늠아! 니 아부지 요즘 심기도 편찮은데, 빨리 직장 안 구할 거냐?』 『엄마~ 솔직히 내가 지금 놀고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밝은 미래를 위해 잠시 휴식하 면서 인생의 설계를 하고 있는 중이란 말야. 그러니까 구박 좀 그만해.』 『처 죽일늠아! 잠시가 2년이냐! 그리고 뭐! 인생 설계 중? 설계를 한숨으로 하냐!』 『기다려봐. 정 안되면 사업이라도 할 테니까.』 『이걸 그냥 빙삭기에 갈아버려? 니놈이 무슨 돈이 있고, 무슨 재주가 있다고 사업을 하 냐?』 『말 나온 김에 말인데, 엄마 이 아들 믿고 투자 한번 해줄래? 나도 가게 하나 있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염병할 놈! 아주 정신상태가 비틀어 썩었구나.』 『내 정신상태가 뭐 어때서?』 『몰라서 물어! 저걸 하면 배고플 거 같고, 이걸 하면 잘 된다는 보장은 없고, 돈은 벌어야 겠는데 놀다보니 막상 일은 하기 싫고, 어떻게 하면 남의 등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궁리나 하고 있는 거 아냐! 엄마 말이 틀려 ?!』 『엄마, 정말 이 아들을 그렇게 몰라? 난 남들이랑 다른 선천적인 능력이 많단 말야. 봐봐. 아이디어 뛰어나지, 노가리 잘 풀지, 인상 좋지, 창의성 있지. 이런 사람이 흔한 줄 아나. 다 때가 오길 기다리는 거니까 제발 보채지 좀 마.』 『헛소리 집어치우고 하여간 1주일 안에 일자리 못 구하면, 아부지랑 작전 들어 갈 테니 그 리 알아!』 『무슨 작전?』 눈으로 거실을 가리킨다. 허걱~! 전기 줄? 방으로 들어와 물구나무 자세로 거울에 거꾸로 비춰지는 내 모습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수일 내로 직장 못 구했다가는 저승사자와 아득한 곳으로 여행가게 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다고 아무 직장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미치겠구나. 솔직히 맘만 먹으면 웬만한 직장은 들어갈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나의 꿈과 너무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리고 심각한 건 2년 동안 빈둥빈둥 놀았더니 귀차니스트가 되어 엄마 말대로 일하기가 싫어졌다는 것이다. 정말 심각하다. 과연 나의 미래는 뭐가 될까. 백수협회 회장? 그것도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겠구나. 백수협회 회장자리를 노리려면 남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고난이도의 시간 때우는 테크닉들을 가져야겠지? 오늘부터 시간 때우기 노하우들을 개발해볼까? 앗, 어렸을 때 하던 놀이가 생각났다. 숨을 최대한 빠르고 깊게 연속해서 뱉고 마셨다. 헉,헉,헉,헉,헉,헉.... 계속해서 숨을 크게 쉬다가 마지막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멈춘 다음 양손으로 목 을 졸랐다. 헤롱헤롱.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옆으로 픽 쓰러져버렸다. 눈을 뜨니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우앗~ 대단한 테크닉이다. 이렇게 투자 없이 시간 때우는 기술을 개발하게 될 줄이야. 너무 신이 나서 빨리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다. 아부지, 엄마한테도 자랑하고 싶은데 뒤통수 한 대 맞을 것 같아 참는다. 그냥 특허 내서 백수들에게 이 아이디어를 팔까? 그러기엔 좀 위험부담이 있구나. 만약 안 깨어나면 영원히 잠들 테니 말이다. 기똥찬 상품을 개발하고도 수출을 못하는 이 가슴아픈 상황이 또 있을까. 아, 스트레스 쌓이네.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다. 오늘은 두 경기 연속출장으로 한번 쉬게 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구나. 『바퀴벌레야 어디 있니?』 아침에 서랍 속에 넣어뒀던 바퀴벌레가 없어졌다. 기특한 넘! 나의 시간을 때워주기 위해 사라져줬구나. 『앗. 여기 있었구나. 어디 가면 간다고 말해야지. 하핫.』 두 번 째 서랍에서 바퀴벌레를 찾아냈다. 이 넘은 다른 넘들에 비해 등치가 특별나게 커서 따로 독방 쓰는 녀석이다. 『바퀴야~ 오늘은 뭐 할까? 개미랑 1:1 맞장 떠볼래? 너가 덩치가 크니까 다리 한쪽만 뗄 게.』 나날이 발전하는 곤충과의 대화. 백수세계의 고수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바퀴벌레와 일개미의 빅매치를 한참 벌이고 있는데 미래 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야~ 로또 번호 맞춰봤어? 난 꽝인데 오빠도 확인해봐~』 『됐다~』 이미 줘버렸는데 확인해서 뭐하냐. 그러다가 당첨이라도 됐으면 배아파서 죽으라고? 『어퍼컷~! 밟아! 앗.. 개미야 힘내!』 개미와 바퀴벌레의 싸움에 열중하고 있는데 미래가 종이쪽지를 들고 방으로 허둥지둥 뛰어들어오더니 개미에게 짓밟히고 있는 바퀴벌레를 보고서 비명을 질러댄다. 『꺄악~! 바퀴벌레 좀 치워봐!』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놀래냐.』 불쌍한 나의 애완용 바퀴. 가족들의 사랑을 못 받아서 이렇게 빌빌거리는구나. 미래가 문턱에 서서 종이쪽지를 쭈욱 내민다. 『오빠야~ 기막힌 꿈 꿨다면서? 숫자 봐봐. 이거야.』 잠시 빅매치를 중단하고 종이쪼가리를 받아들었다. 1, 10, 20, 30, 40, 45. 허걱~! 이건 내가 산 번호잖아! 이게 지금 날 약올리려고 장난을 치는구나. 『이 오빠, 지금 경기중이라 바쁘니까 건너가라.』 『왜 오빠도 꽝이야? 저번에 오빠가 말 해준 번호 세 개 다 여기에 다 있는데. 이상하네.』 『야, 그 번호 진짜야?』 『응. 못 믿으면 내 방에 컴퓨터 켜놨으니 확인해봐. 당첨이라도 됐어?』 양손에 바퀴벌레와 개미를 쥐고서 미래를 제치고 부랴부랴 미래 방으로 건너갔다. 컴퓨터 화면에 로또 당첨번호가 떠있다. 당첨번호 - 1, 10, 20, 30, 40, 45. 1등 당첨금 - 1,010,524,600원 허, 허걱~! 이럴 수가! 일, 일, 일등 당첨이 되다니! 순간, 개미와 바퀴벌레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도 곧 맨땅에 헤딩하고 말았다. 꼬르르륵~! 콰당~! 『엄마~ 오빠 쓰러졌어~!』 컷~! |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 제 목 | 이름 | 날짜 | 조회 | 추천 | |||||
---|---|---|---|---|---|---|---|---|---|---|
|
||||||||||
[1] [2] [3] [4] [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