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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순수함이란 무엇일까?
마음에 분노와 증오가 남아있지 않는것이다.
사람에게 분노와 증오는 결국
공포와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다.
지식은 사람을 원래의 목적과 동기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질 시킨다.
증오와 분노의 또다른 결과는 불통이다.
하나님과 수직적인 대화와 사람과의
수평적인 대화도
끝나간다.
환경과 고난은 자신이 가진 원래의 본질을
깨달을수 있도록 공포와 두려움의 긍정적인 방면이다.
사람이 지독한 육신의 질병이 올때 공포를 느끼지만
하나님을 접촉하고 은혜를 얻을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모든 노력과 발버둥을 멈추고 절대자의 은혜를 갈구하게 한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양심의 가책에 빠지고 공포를 알았지만
주님의 은혜앞에 나아가지 못했다.
성스런 말이나 의식과 수많은 가르침이 있더라도
고요히 흘러내리는 은혜의 강물에
자신을 내밑길수 없다면
그것은 억지요 자기기만이다.
모든 문제는 정직하지 않은데 있고
솔직한 고백이 하나님과 서로에게 상실된데 있다.
그분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지 않는데 있다.
회개는 고백에서 시작하고 회개가 사람안에 있는
공허와 상실감속에 은혜를 이끌어 온다.
공포와 두려움의 부정적인 면은 회개에 이르러지 못한체
미로와 어두움의 감옥에 갇히게 하는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오는 신앙은 사람을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이 봉사를 하는데 왜 사람들이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사역의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공급한게 아니라
지식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었기때문이다.
이젠 말로만으로 사역을 하던 시대는 지났고
내안에 살아낸 그리스도를 사람에게 흘러 보낼때
진정한 사역의 실제안에 산다고 말하는 시대이다.
은혜가 없는 지식은 많이 알면 알수록 사람을 질식시키고
분노하게 되고 증오하게 되고
나중엔 무력감에 빠지게 만들어서
영원히 빠져나올수 없는 미로에 가두어 버린다.
종교인들은 사람을 미로에 가두어 공포감으로
사람을 뒤에서 조종하게 하는것이다.
직업적인 가르치는 자들은 습관적으로 공포감을 주어서
마치 거대한 진공 청소기처럼 생명력과
사람의 자생력을 뺏어 버린다.
우리가 있는곳에 사람이 있다면
서로서로에게 거대한 벽과 공포감과 두려움의 벽이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몸의 지체로서 서로서로의 소중한
사랑과 생명의 동반자가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좋겠다.
지체를 내몸과 같이 여긴다는 말은
또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큰 빛이 필요하다.
그빛은 단순히 지식으로만 멈추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공포가 되어 버린다.
우리에게 천년왕국과 이기는자를 알게해준 사역의 말씀이 있으므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수 있지만
그분의 은혜의 보좌에서의 강물을 생수로 누리지 못한다면
다만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지식에 불과 할뿐이다.
교파에서 천년왕국을 몰라도 얼마든지 주님앞에 신실한 태도와
누림으로 평생 살아가는 자들도 있다.
우리에게 어려운 것이 필요한게 아니라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빛이 없고 은혜가 없다면
주변인들을 코너로 몰아서 질식해 죽게한다.
시작은 순수해야 하며 과정과 결과는 자연스러우며
따뜻해야한다.
우리가 온전한 진리에 이르러야 하지만
그러한 지식을 의도적으로 사람을 가르는 특정한 도구로 삼을때
오는 혼란스러움과 메마른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주님께 묻고 겸손하게 기도하는 태도가 멸시되어 져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을 천길 높은 지식의 성벽뒤에
두지 않았다.
하나님의 구원은 특별한 것이지만
구하는 자에게 원하는 자에게 두드리는 모든 자에게
만인에게 항상 열려있는 문이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위에서
만유를 포함한 고귀한 죽음을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하나님게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사53;6)
\"사랑은 여기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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