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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9893 [오마이뉴스 김갑수 기자]
내가 알기로는 두 사람밖에는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다. 그들은 돈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밝혔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은 '돈을 받았다'고 했고, 곽 교육감은 '돈을 줬다'고 했다는 점이 다를 따름이다. 내가 아는 바로 거의 모든 공직자들은 일단 부인부터 해놓고 본다. 끝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는 그 중 가장 유명한 두 사람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회장을 기억하고 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박명기 교수에 대해서는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미래를 꿈꾸며 교육운동의 길을 계속 걸어오신 박명기 교수의 상황을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총 2억 원의 돈을 박명기 교수에게 지원하였습니다. 정말 선의에 입각한 돈이었습니다."(8월 28일 곽노현 교육감 기자회견 중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2년 전의 봄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일까? 노 전 대통령은 촛불시위로 인해, 곽 교육감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문에 권력과 보수세력의 미움을 한 몸에 사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보궐선거 직후에, 곽 교육감 수사는 주민투표 직후에 본격화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검찰은 연일 피의사실을 흘리고 있고, 언론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받아쓰기에 급급하고 있다. 난데없이 '소설'을 써대고 있는 일부 보수언론도 그 모양 그대로다. 그리고 야당과 일부 진보인사들의 보신·기회주의 역시 2년 전의 상황을 영락없이 방불케 한다.
2년 전과 여러모로 흡사한 상황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8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곽 교육감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지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교육감 후보단일화 과정에서의 대가성은 부인했다.
ⓒ 남소연
곽노현 교육감은 후보 단일화와 관련하여 일체의 뒷거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2억 원을 준 것은 자기로 인해 어려워진 박명기 교수에 대한 선의였다고 말했다. 물론 돈을 받은 박 교수 측의 말은 다르다. 하지만 그것은 체포된 상태에서 검찰과 언론을 통해 전해진 것이거나 주변인의 전언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차후 확인을 필요로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자기 모르게 집사람이 돈을 받았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떤 이들은 '자기 잘못을 여자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한국 사회에는 의외로 많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공직자로서 돈을 받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왜 의심 받을 짓을 했느냐?' 고 타박하는 사람들이다.
자기는 그렇게 도덕적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타인에게 그렇게 엄격한 것인가? 그들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지, 그리고 자기는 이 험한 세상에서 타인에게 의심 받은 짓일랑 전혀 안 하고 살 자신이 있다는 것인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앞서 나는 이번 사건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했지만 크게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과하는 것 같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과 언론의 행태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도의적으로 그리 떳떳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편법적인 검찰 수사와 일방적인 여론몰이는 확실히 부도덕하거나 비법률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세 편이나 되는 글을 더 써야 했다.('노무현에게 돌 던질 수 있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할 수 있을까' '50일간 부관참시, 이제 노무현을 버리자고?' 등 참조) 허나 무력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끝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문재인 이사장은 그때 진보진영의 공격이 더욱 살을 후비듯이 아팠노라고 회고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무겁게 성찰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한다.
야당과 진보진영, 경솔하거나 보신·기회주의적이다
박지원이나 손학규가 진보진영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가장 먼저 곽 교육감을 비판했다. 특히 박지원은 주민투표 당시 오세훈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곽 교육감을 두둔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목전에 닥친 서울시장 선거를 염두에 둔 나머지 보신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진보인사들까지 나서서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대관절 뭔지를 모르겠다.
"박교수가 찾아와서 약속을 왜 안 지키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변명하지 말고 사퇴해야지요. 자신의 '선의'를 증명하는 것은 그가 법정에서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진중권)
"곽노현 교육감, 2억을 박명기 교수에게 주었지만 대가성 없는 선의였을 뿐이라고 해명. 법률적 최종판단은 신중해야겠지만, 진보개혁진영은 큰 정치적, 도덕적 타격을 입었다. 오세훈 사퇴가 가져다 준 환호에 찬물이 끼얹혀진 셈이다."(조국)
"피가 섞인 가족 간의 증여에도 이같이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는 판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도 후보 단일화 협상 대상자였던 사람에게 2억 원이란 거금을 증여한 것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더구나 자기 이름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통장을 동원해 건네기까지 했는데."(김종배)
곽노현, 그는 노무현보다 더 떳떳할 수 있다
노무현 사건이나 곽노현 사건은 둘 다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는 사안이다. 나아가 도덕적인 면으로도 그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드물 것이다. 이런 가운데에도 곽노현의 경우는 달리 보아야 할 점이 있다. 그는 돈이 결부된 단일화를 끝까지 뿌리쳤다고 한다. 보수언론이 소설화하고 있는 '사당동 모임'에서도 상대 측에서 선거비 보전을 요구하자 곽 교육감이 자리를 떠서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준 것은 당선 후 8개월 이상이 지난 시점부터였다.
박명기 교수의 양보가 있었기에 곽 교육감의 당선이 가능한 일이었다. 박명기 교수는 선거비로 재산을 탕진했다. 만약 그가 끝까지 완주를 고집했더라면 일정한 표를 얻어 선관위로부터 적지 않은 공탁금과 선거비용을 환급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물러남으로써 곽 교육감이 승리한 것이었다.
결국 박명기 교수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데에 인간적인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은 곽 교육감이다. 게다가 곽 교육감은 선거비용을 35억 2천만 원씩이나 되돌려 받았다. 또한 그의 부인은 의사로서 경제적 능력이 있다. 이런 정황에 박명기 교수가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래서 그는 박 교수에게 돈을 보냈다. 사과상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조회가 가능한 계좌송금이었다.
이럴 때도 외면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 외면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만약 곽 교육감이 그랬더라면 나는 그를 '비정상적'이거나 '유별나게 비범한' 사람이라고 간주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곽 교육감의 일부 정책을 지지했을 뿐이지 그를 인간적으로 잘 몰랐고 따라서 그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그에 대해 새로운 신뢰와 연민을 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신뢰와 연민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다. 나는 타인의 선의를 악의로 의심하는 음험한 인격자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잠깐 여기서 나보다는 단연 이성적으로 곽노현 교육감을 옹호하는 논리가 있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아래 박동천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곽노현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가? 곽노현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있어야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생기는가? 둘 다 당연히 아니다. 사람을 공격할 때에는 공격하는 편이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 공격 당하는 사람을 변호하는 데에는 공격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으로 족하지, 무죄를 입증할 수 없는 한 변호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는 한 천안함은 북한 발 어뢰로 침몰했다는 식의 억지는 인류의 지성을 모욕하는 반인륜 범죄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경우에는 입증 책임을 곽노현에게 지우는가? 그것도 그의 교육 정책은 바른 방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교육 혁신의 가치마저 훼손될 우려"를 핑계로 대는가?"
- <프레시안> 박동천 교수 기고 글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확실히 원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은 때를 맞춰 권재진 법무부장관에게 '교육 비리 척결'을 주문했다. 또한 박명기 교수의 변론을 맡은 곳은 '법무법인 바른'이라고 한다. 이 법무법인은 BBK, 도곡동 땅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박연차 차건, 광우병 손해배상, 미디어법, 대통령 부인 사촌언니 뇌물 사건 등의 소송을 맡은 곳이다. 또 한 가지, 곽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 저녁 부산저축은행 정·관계로비의 핵심을 쥐고 있다는 브로커 박태규씨가 소리 없이 귀국하여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무상급식은 물론 '교육감선거 직선제' '야당 후보 단일화'에 대해서까지 논점을 거침없이 확산하고 있다. 다만 그들이 확실하게 노리는 것은 곽 교육감의 사퇴인 듯하다. 특히 김동길씨는 곽 교육감에게 "노무현처럼 부엉이 바위에 가지 말고 그냥 물러나면 된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법정 판결이 내릴 때까지 지켜보자'는 여론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일견 이성적인 판단 같지만 나는 이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곽 교육감은 한 번 해명한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가 직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부인이 검찰에 소환되었다. 이것은 당사자에게는 실로 극한상황이다. 이럴 때 우리는 그를 격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으로 나는 물론 곽 교육감이 법정에서 승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곽 교육감에게 유죄가 내려진다면 이런 주장을 편 내가 얼마나 '우스운 놈' 이 될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를 격려하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김행수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타인의 선의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이 진보라면, '진보 같은 것 안 하겠다'고 말한다. 나 역시 스스로 진보라는 생각도 딱히 해본 적이 없지만 만약 그런 것이 진보라면 앞으로도 진보 같은 것은 해볼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