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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두 사건이 동시에 벌어졌다.
1. 며칠 전 류석춘 교수의 위안부 발언(위안부는 매춘부)과 관련, 오늘 한 시민단체의 방문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류석춘 교수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2. 이국종 교수가 이재명 지사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단다. 보수 단체의 항의 방문이 있었고, 이국종 교수가 자괴감을 느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국종 교수는 너무 단순해 매우 독특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나와 다르게 주의력 결핍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단순함 덕분에 한 분야에서 그처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을까? 장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게다가 도덕적이다.
그의 사고 체계는 이렇다. 1. 나는 의사다. 2. 의사는 환자를 돕는다. 3. 따라서 나는 환자를 돕는다. 끝. 삼단 논법 하나로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 그의 모든 정치적 행위는 환자를 돕는 데 있다. ‘권력 투쟁’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순전히 실력만으로 그 위치에 올라선 사람이다. 이런 사람, 자기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핍박하면,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무작정 우파만 탓하고 싶지는 않다. 예전, 손연재에 대한 국민적 비난은 이보다 더했으니까.
류석춘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자신이 잘 모르는 사실에 관하여 교수라는 권위로 공적인 수업 자리에서 비하 또는 혐오 발언을 했다. 일베와 워마드의 것과도 다른 유형이다.
혐오의 감정은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일베와 워마드 게시판을 폐쇄한다고 갑자기 혐오와 증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폐쇄는 문제의 원인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그런 유형의 혐오 배출은 어느 정도 방관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단, 그들이 제도권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분리해 나가야 한다. 일베와 워마드를 공공연하게 옹호한 변희재와 윤김지영과 같은 사람들을 단순히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제도권에 편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대학은 제도권에 속한다. 교수는 그 누구보다 더 사회적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보통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래서 교수들의 시국 선언엔 왠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진다. 사회 원로의 중후한 일갈인 것이다. 물론, 옛날얘기다. 시국 선언이 이토록 가벼운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류석춘 교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본다. 수많은 엘리트가 류석춘과 동류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보통은 없다. 물론, 알 필요도 없다. 생각은 자유이니 그 자유권을 침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발언을 공공연히 했다는 점은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벌이 뒤따라야 한다.
많은 우파가 류석춘과 이국종의 경우를 비교해 따질 게 뻔하다. 이들의 ‘합리성’이란 보통 이런 식이었으니까. 대전제가 틀리면 이후의 모든 논리 전개는 거짓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다.
좌파, 우파, 중도, 누가 더 논리적으로 뛰어난지 단언할 수 없다. 평균적으로 비슷하리라 본다. 그러나 논리가 문제는 아니다. 모든 사안 일일이 논리적으로 따질 시간과 에너지가, 보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라는 점을 좀, 특히 우파는,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왜 정치 투쟁을 하는가? 왜 자기 의견을 표명하는가? 같이 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 지구촌이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가치가 빠진 어떤 주장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Ps: 아, 정의를 표명하는 게 꼭 옳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정의라는 옷을 입고도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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