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겨울 프랑스는 매우 추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784년과 1785년에 연이은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의 폭발로 대기의 화산재가 태양을 가리면서 유럽의 평균기온 자체가 내려갔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다시 엘리뇨 현상으로 우박과 강우가 계속 되면서 그 해 곡물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고 도시 서민들과 농민들은 굶주림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정부대로 안 그래도 미국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지원하면서 쌓인 재정 적자로 인해 여전히 혹독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고 세금 조차도 내지 않았던 귀족과는 달리 평민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 갔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 해인 1789년부터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시민들이 인권이라든지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는 사실도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직접 총을 들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배고픔이었다는 것이라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프랑스 대혁명 직전 루이 16세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타개하고자 삼부회의를 소집하지만 평민들을 배제함으로써 큰 반발을 부르고, 부르주아라 불리던 신흥 자본가들과 평민(공화파)들은 국민공회를 발족하게 됩니다. 이들은 기존의 국왕 중심의 국가 질서를 지지하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왕당파)까지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들은 결국 축출되고 공화파 중심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프랑스를 이끌게 됩니다.
이 때 국민공회 때 왕당파는 우측에, 공화파는 좌측에 앉았다 하여 기존의 질서를 지지하고 지키려는 세력을 보수 혹은 우파라고 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을 진보 혹은 좌파라고 불리는 기원이 됩니다. 이렇게 프랑스의 절대 왕정은 붕괴했지만 영국이나 일본의 왕가는 정치 권력은 국민에 내주었을지언정 명맥은 남아서 현재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왕정과 다르게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국왕의 세력이 개혁에 동참했거나 아니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것을 지킨다는 의미로 보수나 우파라고 불릴만한 세력도 생존을 위해서 좌파적인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해봅니다. 조선 말기에 흥선대원군은 과거의 체제를 지킨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보수세력이었습니다. 조선 왕실을 지키고, 새로이 일어서고 있는 서구의 열강에 대해 적대적인 쇄국정책을 취했으니까요. 반면 수구파와 청나라의 세력에 대항해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같은 사람은 진보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추종하고 협조한 세력들은 계속 일본 중심의 질서를 지키고자 했을 것이니까 다시 보수파가 되고, 해방 후에는 이 보수파들에 대항한 민족주의나 공산주의 세력은 진보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한국전쟁을 거치고 군사독재의 시대로 내려오면서 군사독재 세력을 지키려는 세력은 보수가 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은 진보가 되고, 민주화 이후에도 특정 지역의 패권과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려는 쪽은 보수로, 이에 도전하는 세력은 진보가 되었습니다.
보수주의의 가치
프랑스 대혁명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근대역사를 보아도 보수의 모습은 어쩐지 비민주적인 지배자의 모습이고 진보의 모습은 때로는 피해자, 때로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보수는 나쁘고 진보는 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수주의의 참 모습은 이런 것이 다가 아닙니다.
특히 미국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니스벳이 정리한 보수주의의 핵심 원리 즉, 개인의 자유 보장, 재산권 보호, 법치주의 같은 개념을 생각해보면 보수는 단순한 기득권 옹호 자체를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상대되는 개념을 예로 들어보면 공산주의 체재에서 여행의 자유를 제한한다든지, 반대로 극우 파시스트 정권에서 개인을 감시하든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복지를 명목으로 수입의 반도 넘는 세금을 물린다든지 하는 것도 안되고, 국가 공공기관을 건설하기 위해 개인의 토지를 일방적으로 몰수하는 것도 보수주의와 어울리지 않으며, 심지어는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일어난 무장봉기 조차도 그 폭력적인 요소 때문에 보수주의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보수주의의 원조 이론가인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대혁명을 초기에는 지지하다가 반대로 돌아선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소위 보수정권 혹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많은 정책들이 사실은 전혀 보수주의와 맞지 않는 모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나라 군사정권 하에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탄압한 것도 보수주의의 가치에 맞지 않으며, 최근 미국에서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통과된 패트리어트 법 하에서 테러용의자를 영장없이 구금할 수 있다는 것도 진정한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과거와 미국의 현재의 예를 들었지만 현재 한국의 보수주의는 더욱 더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보수주의의 핵심 원리인 개인의 자유, 재산권 보호, 법치주의를 소위 보수주의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외면하는 보수주의
첫째, 법치주의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보면 어버이연합이라든가, 무슨 북파 공작원 동호회 같은데서 폭력사태를 일으키는 일이 뉴스에 종종 나오는데 과거 민주화 시위를 사회 폭력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던 권력층이 이런 우익 폭력은 은근히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친일과 군사정권과 같은 과오가 있었던 보수주의가 아직도 튼튼한 지지층을 가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실 법치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보수는 그 가치를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친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권력을 보존하는 것이 보수였을지 몰라도, 국민이 주인인 지금의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보수의 가치가 되어야 맞을 것 같은데 일부 보수층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일부 네티즌들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김정일을 찬양하는 것만큼이나 희화적입니다. 문제는 그 일부 보수층은 실질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네티즌은 정치권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일파 권력과 지식인은 웃음거리에 그치는 친북좌파보다 한국 사회에 더 해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셋째로 경제적 보수주의의 실종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 반값 아파트나 반값 등록금 공약, 한나라당의 무상 보육 같은 주장은 대표적인 이율배반입니다. 경제적인 보수주의라면 정부의 크기를 줄이고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국가가 나서서 사사건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진정한 보수주의라면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는 국민이 있다면 세금을 더 걷어서 시혜성 복지를 베풀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낮추고 기업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들이 더 쉽게 고품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주장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시혜성 복지의 주장은 보수의 몫이 아니라 민노당과 같은 사회주의 정당의 몫입니다.
넷째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지나친 권력에의 개입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그 자체로도 대단히 부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정화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혁명 전의 중세 카톨릭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미국에서 배울 교훈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절부터 정교분리의 전통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금 한국의 목사님들 보다 신앙심이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국가 권력과 연합하면 국가도 죽고, 교회도 죽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 보수 = 친미로 연결되는 기이한 커넥션은 한국의 보수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도 죽이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의 정치 목사들이 한국 기독교를 죽이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일반 대중에게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주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네티즌이 기독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기독교도 기독교라고 똑바로 적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적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투표와 관련한 것입니다. 따져보면 국고가 화수분도 아니고, 국민들도 세금에 허리가 휘는 판국에 전면 무상급식보다 단계적 무상급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상위층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식비를 부담하고, 하위층은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렇다고 합니다. 이럴 때 보수의 역할은 국민을 차분하게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세훈의 실패한 도박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쪽에서 선별 무상급식시 아이들이 차별을 받게 된다고 걱정했을 때 오세훈 시장이 했어야 할 일은 선거로 한판 붙어보자고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차별을 받지 않게 제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차별급식으로 상처받는 어린 동심에 대한 생각은 있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맞으니까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관철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오세훈 시장은 단계적 무상 급식을 하자고 했고, 야당은 전면 무상급식을 하자고 했는데 단계적 무상 급식으로 절약할 수 있는 돈이 700억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상 급식 투표 비용이 161억이었고, 이제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해야 하는데 선거 비용이 310억 정도, 각 정당이 지출할 비용까지 합하면 5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서 오 시장은 시장직 사퇴를 공언하는 도박을 했고 결국 그 도박에서 짐으로써 단계적 무상급식으로 절약할 수 있었던 돈보다 더 큰 돈을 허공에 날리게 했습니다. 오 시장의 논리라면 700억의 무상급식이 실시되게 생겼으니 그 것도 낭비요, 두 번의 선거로 660억을 날리게 되었으니 도합 1360억이 날아가는 셈입니다.
진정한 도박사는 이기는 경우의 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경우의 수도 생각하고 도박을 합니다. 오 시장은 도박사의 과감성은 가졌지만 단순한 감정적 충동의 조절이 안 되어 냉철한 계산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오 시장이 차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라니 눈이 아찔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멋지게 생겼지만 가장 무능했던 29대 대통령인 워렌 하딩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요? 오 시장이 물러나면서 시민의 세금을 피같이 써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 자신의 승부수로 1360억을 날리게 되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진짜 중간층의 표를 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수주의도 꽤 괜찮은 이념입니다. 제대로만 작동하기만 한다면 개인의 자유와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고, 경제적 번영도 이룰 수 있으며, 사회는 안정화될 수 있고, 국가도 튼튼한 재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일, 부패, 불공정으로 뿌리가 썩어가는 한국 보수는 한국 국민,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보수에 대한 혐오감을 줌으로써 보수주의를 질식시키면서 보수주의의 입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이번 무상급식 투표이전에 인터뷰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중간층’을 믿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상급식 투표가 끝난 뒤의 여론조사 조차도 단계적 무상급식안에 대해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중간층이 상당히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증명이 된 듯 합니다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움직이지 않은 이유를 저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한국 보수의 행태에서 찾고 싶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그 자신이 공화당 출신이고 ‘보수는 오랜 된 것, 하지만 검증된 것을 좋아하고, 진보는 새로운 것, 검증되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보수주의자이지만 흑인은 인권이 없는 소유물에 불과하다는 종래의 개념에 반기를 드는 용기가 있었고 결국 남북전쟁에도 승리하고 흑인도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도 매년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 1위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프랑스에서 루이 16세가 1789년 삼부회의를 소집할 때 평민을 넣어주는 용단을 내렸다면 어땠을까요? 프랑스 대혁명은 없었을 수도 있고, 아직도 프랑스에 왕가가 존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오세훈 시장이 조금 더 겸손하게 서울 시의회의 입장을 경청하고,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금 더 양보하는 미덕이 있었으면 수백억의 ‘피 같은’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조금 더 보수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진보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서 우리나라를 부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반대되는 두 개의 길인 것도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는 너그러웠고 남에게는 엄격했던 것과 반대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너그럽게 생각을 해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한국은 거대한 보수의 무덤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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