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보복 조치로 시작된 반일감정, 일본 불매운동으로 확대 -일본 의존도 높은 프로야구도 직격탄…스폰서 계약, 전지훈련지 문제 ‘발등의 불’
-일본 안 가고 싶어도 마땅한 전훈지 없어 고민 “하루빨리 갈등 해소되길 바랄 뿐”
-야구계 우려 커지는 가운데 정운찬 총재 신문 기고 통해 정부 비판 ‘엇박자 행보’
커지는 국민적 반일감정에 KBO와 구단들도 노심초사다. 이미 계약한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물론 전지훈련지 등 화약고가 한둘이 아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이 일파만파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일본 기업 제품의 매출이 뚝 떨어졌고, 일본 여행객도 눈에 띄게 줄었다. 소비자들은 국산품에 일본산 재료가 사용됐는지부터 바코드 숫자까지 확인하고 나섰다. 일본 제품 목록과 대체 국산품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갈수록 커지는 반일감정을 야구계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한국야구는 탄생부터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프로야구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선수와 지도자가 일본에서 건너와 활동했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장비도 일본 제품이 많고, 구단들이 마무리 캠프와 스프링캠프지로 가장 선호하는 곳도 일본이다. ‘일본 불매운동’이 야구계 입장에서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일본 브랜드와 국가대표 유니폼 스폰서 계약한 KBO, 구단들도 전지훈련 장소 문제로 골머리
일본은 국내 구단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지훈련지다(사진=엠스플뉴스)
최근 KBO 한 관계자는 엠스플뉴스와 대화 도중 곤혹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 열리는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 업체 때문이다.
KBO는 일찌감치 대표팀 유니폼과 용품 스폰서 업체로 D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D사는 일본 오사카에서 창업한 스포츠 의류 브랜드로 그간 국내 여러 프로구단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제작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는 물론 1회 프리미어12 대표팀 유니폼도 D사 제품이었다.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야구대표팀도 이 회사와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KBO와 D사의 계약은 지금처럼 반일감정이 거세지기 전에 이뤄진 계약이다. 하지만 최근 한일관계가 험악해지면서, 대표팀이 D사 제품을 착용하고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KBO 실무 관계자는 “야구는 다른 종목보다 주목도가 높고, 사회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다.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인데 야구 대표팀이 일본 브랜드 마크가 찍힌 제품을 입고 나섰을 때 국내는 물론 일본 현지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지 걱정”이라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스폰서 계약을 철회하기도 쉽지 않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구단들도 시즌 뒤 마무리훈련과 스프링캠프지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10개 구단 중에 7개 구단이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한 바 있다. 1, 2차 캠프를 모두 일본에서 치른 구단도 있고 2차 캠프만 일본에서 치른 구단도 있었다. 마무리 캠프 역시 키움, NC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일본에서 진행했다.
한 지방구단 관계자는 “불매운동 초기엔 관망하는 쪽이었다. 일본 의원 선거가 끝나면 한일관계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겠나 낙관적인 예상도 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로 봐선 사태가 하루아침에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며 “아직 시즌 중이라 말하기 이른 감이 있지만, 마무리 캠프지 문제를 놓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큰 게 사실”이라 했다.
다른 지방구단 핵심 관계자도 “우리 구단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 중에도 일본과 스프링캠프지 사용 계약을 맺은 구단이 적지 않다. 수년간 일본 야구장에 큰돈을 투자한 팀도 있다”며 “손해를 감수하고 계약을 취소하더라도, 일본을 대체할 만한 훈련지가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키움, NC, KT가 사용하는 미국 애리조나는 전용 구장을 구하기 쉽지 않다. 2월 초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의 캠프지를 빌려 쓰더라도, MLB 스프링캠프가 시작하는 2월 중순 이후엔 구장을 비워줘야 한다. 지방구단 관계자는 “타이완과 중국, 필리핀, 호주 등 대체 캠프지는 구장 시설이 협소하거나 연습경기 상대를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우리 구단 같은 경우엔 해마다 미국에서 캠프를 차렸기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일본 캠프를 오랫동안 해온 다른 구단들의 경우 한일관계가 극적인 화해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캠프지 문제로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전했다.
칼럼 통해 정부 대일정책 비판한 정운찬 총재, “혼자만 다른 세상 산다” 비판
운찬 KBO 총재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개인이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한국야구 대표자 신분으로는 부적절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엠스플뉴스)
연일 악화하는 반일감정에 구단들과 KBO 실무진은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야구의 수장인 정운찬 KBO 총재는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나홀로’ 행보를 펼쳤다. 정 총재는 ‘자존보다 생존이 먼저다’란 제목의 칼럼에서 최근 런던 ‘외유’ 경험을 소개하며 이를 정부의 대일정책 비판으로 연결했다.
정 총재는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MLB가 유럽이라는 신흥 야구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종주국 자리까지 양보하는 혁명적 발상 전환을 보며, 내 뇌리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일련의 국제 관계, 특히 한일 관계와 우리 정부의 대처 방식이 떠올랐다”며 “4강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이야말로 자존(自尊)보다 생존(生存)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란 질문을 던졌다.
칼럼에서 정 총재는 “과거로 치우친 시계추를 현재와 미래로 재설정하고, 이념과 명분보다 실용과 실리를 앞세워야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정부가 먼저 이념의 우상에서 벗어나 국민을 설득하고 통합하는 데 앞장서야 할 때다. 과거라는 동굴에서 나와 대통령이 직접 아베와 담판을 벌이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한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 총재의 기고문을 놓고 시민사회는 물론 야구계에서도 적잖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해 정 총재의 칼럼에 대해 “제목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전 씨는 “이 제목은 그냥 한마디로 하면 노예의 명제다. 인간이 자기 인간성을 배신하고 동물 수준으로 격하할 때 들이대는 명분이 이거다. 살기 위해서는 자존심이고 인간의 존엄이건 모두 다 버릴 수 있다고 하는 거, 이거는 인간보고 동물로 떨어지라고 하는 이야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야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야구 관계자는 “정 총재는 외부 기고문을 쓸 때 항상 KBO 총재보다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직함을 먼저 앞세운다. 자신이 KBO 총재라는 자각이 없는 것”이라 비판한 뒤 “KBO 돈으로 런던까지 가서 메이저리그 이벤트를 보고 온 경험을 어떻게 정부 비판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상업적인 단체인 메이저리그와 한 국가의 정책을 비교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모 구단 관계자도 “그간 KBO의 정치색을 지우려는 노력이 정 총재의 칼럼으로 허사가 된 것 아닌가. 최근 KBO 총재 중에 이런 식으로 임기 중에 대놓고 정치색을 드러낸 경우가 없었다”며 “개인 자격이면 몰라도 한국야구 대표자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보다. 다음 총선 때 출마라도 하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관계 악화에 온 야구계가 전전긍긍하는데, 한국야구 수장인 총재만 혼자 딴 세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