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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25%의 비밀 - 오세훈이 사실상 승리한 비결
2011.08.25.목요일
필독
"투표을 25% 넘었으므로 사실상 승리"
- 홍준표 外
자위도 딸감이 있어야 한다. 여성지 속옷광고도 없으면 상상이라도 해야 한다. 홍준표의 지조때로 승리 선언은 딸감의 존재를 의심케 한다. 싸긴 쌌으되 무엇을 보고 싼 걸까.
그의 머릿속에 맴돌던 이웃집 누나의 정체는 뭘까. 주민투표 전날까지는 물론이고 당일 오전까지, 누구도 투표율 25%가 '정치적 저지선'이라는 얘기를 하지도 듣지도 못했다. 25%가 정치적 저지선인 이유 또한 아무도 모른다. 원래 서울시의 한나라당 지지 유권자 비율이 24%대라는 게 홍준표 옹의 설명이다. 이 설명이 조금의 타당성이라도 지니려면 투표자 전부가 오세훈(의 단계적 무상급식 추진안)을 지지했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거꾸로 투표를 거부한 75%의 유권자 전부가 전면무상급식에 찬성했다고 단정해야 공평하다.
25%가 넘으면 사실상 승리라는 딸감의 출처는 어디일까? 조선일보다. 내가 좆선이랑 쭝앙은 꽤 모니터하는 편이거든. 어제 오후,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투표율이 33.3%를 못 넘으면 진 게 아니라 무승부"라는 말을 할 때는 그냥 혼자 좆잡나 했다. 하지만 뒤이어 한나라당 양반들이 "투표율이 20%대 후반이 되면 이겼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조선일보 인터넷판 기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확신을 갖고 용두질을 할 때는 뭔가 섹시한 딸감이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난 직후였다. 한나라당의 과외선생님 좆선의 항우울제 처방전을 확인한 건.
"전문가들은 이번 투표의 개함이 무산되더라도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 유권자 투표율 24% 안팎을 한참 넘어선 30%에 가까운 투표율이 나오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보고, 반대로 20% 중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이 나오면 한나라당 위기론까지 나올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이 기사. 이 한 편의 기사가 25% 딸감의 최초 원본이다. 조선일보의 영원한 친구, 전문가氏가 등장한다. 친한 친구로 관계자氏, 한 제보자氏(이분은 성이 한씨인듯 하다), 유력인사氏가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전문가氏가 정확히 뭐하는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분이 무슨 근거로 '사실상 성공'의 기준을 산출했는지, 20% 중반이라는 애매한 수치의 출처는 어딘지 역시 우리는 모른다.
어쨌든, 전문가氏는 그렇게 말했다. 오세훈이 사실상 승리하는 신비한 비밀을 진작 좀 말해줬으면 헷갈리지 않고 좋았을텐데. 오후가 지나면서 시간대별 투표율이 소숫점으로 떨어지자 '사실상 승리' 기준이 25%로 하향조정된다. 이분은 아마 그 비밀을 실시간 투표율을 보다가 깨달았나 보다. 그리고 투표가 끝날 때까지, 몇 시간 전에 문득 생긴 25% 승리론은 그 이유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채 한나라당과 서울시, 청와대를 횡행한다. 이윽고 최종투표율이 25.7%로 집계되자 가카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제히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자 기사로 쓰려고 어제 기억해둔 기사가 당췌 검색이 되질 않는 거다. 아니 비슷한 기사는 있는데 우리의 전문가氏가 등장하는 그 부분이 없는 게 아닌가. 인터넷판 조선일보 DB를 헤매고 다닌지 한 시간여, 나는 어제 환상을 보았단 말인가. 이윽고 나는 나와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 이들을 발견한다. 다음은 <뷰스 앤 뉴스> 엄수아 기자의 어제(8월 24)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원문보기 클릭).
"<조선>은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이번 투표의 개함이 무산되더라도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 유권자 투표율 24% 안팎을 한참 넘어선 30%에 가까운 투표율이 나오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보고, 반대로 20% 중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이 나오면 한나라당 위기론까지 나올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며 투표가 무산되더라도 최종투표율이 30%에 가까우면 '오세훈의 승리'라는 궤변을 동원했다."
다음은 엄수아 기자의 기사가 웹에 게재된 지 40분 후에 한 네티즌이 남긴 게시글이다.
저기 있는 저 기사 주소. 내 손꾸락은 무언가에 홀린 듯 마우스를 클릭했다(독자열분도 여기를 클릭해보시라). 그런데...
아까 눈을 씻고 읽어본 그 기사가 아닌가. 나는 같은 기사를 보고 다른 기사라 생각했던 것이다. 헌데 이번에도 20% 중반을 이야기한 전문가氏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와 엄수아 기자와 이 네티즌은 어떤 윤회의 고리에 얽혀 있어서 한날 한시에 동일한 환상을 경험한 것일까. 아님 조선일보 기자는 마술이라도 부린 걸까. 그러나 나는 기사 상단에서 마술이 아닌 기술을 목격했다.
기사가 수.정.됐.다. 이렇게 호쾌하게 증거를 인멸하다니. 이 호연지기라니! 이제 우리는 전문가氏의 정체와 그의 이론을 탐구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전문가氏는 25%라는 딸감만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오늘 난 훌륭한 업계 동료를 발견했다. 앞으로 그의 기사를 열심히 모니터링할 생각이다. 김성모 기자는 조선일보 입사 46기이시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조선일보에 입사하고픈 기자 지망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메시지를 남긴 바 있다.(클릭)
정말 '빡센' 생활을 해야하지만 어떤 영화보다 격정적이고 감동적인 시나리오로 한 인생을 살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은 기자가 될 준비가 이미 되신 겁니다. 영화 예고편이 아니라 기자 예고편도 똑같습니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의 짓도 하게 되겠고 말이다. 김성모 기자는 파울료 코엘료의 유명한 문장도 소개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맞다. 오세훈이 승리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승리하지 못하면 '사실상 승리'하게 해 준다. 33.3%를 넘기지 못하면 합격 커트라인을 25%로 내려준다. 내 장담하는데, 20.7%가 나왔으면 '사실상 정치적 저지선'인 20%를 넘겼다고 박수를 쳐줬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기자들이 점심먹으러 나가기 전에 20%의 의미를 고찰했겠지. 오후 서너시 쯤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을 거고.
<오세훈, '정치적 저지선' 20% 넘을 수 있을까>
이종구는 라디오방송에서 20%를 넘긴 오세훈이 선전했다고 떠들었을 거고, 홍준표는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며 오세훈의 손을 들어줬을 거다. 우주는 이렇게나 관대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승리라 부를만한 결과를 내려면 패배한 측도 있어야 한다. 즉 과정 자체가 대결이어야 한다. 애초에 곽노현과 야당은 오세훈과 싸우지 않았다. 전면무상급식은 시민의 선택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원래 실시될 예정이었고, 이제 실시될 예정이다. 그게 다다. 아무도 오세훈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
오세훈은 전면무상급식에 혼자 반대하고, 혼자 주민투표를 조직하고, 혼자 대선출마 포기선언을 하고, 혼자 무릎꿇고 울고, 혼자 시장직 걸고, 혼자 망했다. 있지도 않은 정책투표를 만들고, 스스로를 탄핵해 그 투표를 재신임투표로 바꾼 건 오세훈 본인이다. 그의 상대는 링 위에 올라가지도 않았다. 엄밀히 말해 투표거부는 동의하지도 않은 싸움판에 등을 돌리는 동작일 뿐이다.
다섯살 훈이는 길가는 어른들한테 별다른 이유없이 싸움을 건다. 체급과 나이를 고려했을 때 대단한 용기라 할 수 있다. 이 운명적 대결에서 지면 학교에서 자퇴한다고 비장한 선언을 한다. 아저씨 무릎에 수차례 박치기를 하더니, 쌍코피를 흘리며 나자빠진다. 이제 홍준표 삼촌이 나타나 세훈어린이의 손을 들어준다.
"우리 훈이가 사실상 승리했다!"
병신은 몸이 불편한 이를 부르는 안 좋은 말이지만, 이제 이 말을 사전적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정신줄이 온전치 못한 인간을 병신이라 칭한다. 병신이 아니되 병신인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사실상 병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S. 조선일보 욕하지 말자. 한낱 찌라시지만 사실상 신문이다.
편집부국장 필독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