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의 주된 논점은 '여시에 대한 오해나 모욕'이고 '여론조작', '남성혐오' 등은 이미 '해명'한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서로 소통이 안된다고 느끼는 부분이 (여시가 폐쇄적이란 점을 제외하면) 서로 집중하고 있는 주제가 달라서인 것 같습니다.
오유에서는 여러 사안에 대한 의혹과 명확한 해명 대신 벌이고 있는 대대적인 정치질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여시에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해명, 모욕/비방에 대한 반응에 집중하고 있죠.
이 상황을 전체적으로 알고 있는 분들은 합리적으로 의심이 가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왜 여시 내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여시 유저들이 여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일시는 정신분석적 용어로, 방어기제의 일종입니다.
타인의 태도와 행동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방어기제가 발동되는 이유는 '무의식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인데요.
(Freud는 이 불안을 성격구조 간에 발생하는 갈등으로 보았습니다.)
즉, 여시가 곧 자신이 되고 여시가 모욕을 당하는 것은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가치=자신의 가치
가 된 셈이죠.
그래서 가능성과 의혹들을 무시하는 겁니다.
맹신하는 커뮤니티가 무너지면 곧 자기자신이 무너지는 것이거든요.
동일시 하는 대상은 완벽해야하며 깨끗해야합니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완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소수의 방어기제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방어기제를 이용하여 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 덜 불안하니까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간에 자기가 가장 존귀함'을 뜻하는 말인데요.
이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건 간에
자기 자신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존재조차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