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이른바 물적분할이 내일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인데요 국민연금까지 분할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사실상 가결될 것으로 보이고 이를 막기위해 노조 측에선 주주총회장을 점거하고 있고 사측은 자본권력이 늘상 하던대로 법원의 가처분결정문과 공권력의 백업 그리고 천명 단위의 사설 경비원 고용등을 이용해 강대강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적분할이란 기존의 현대중공업을 두 개의 법인으로 나누는 걸 의미하는데요 기존회사(현대중공업)이 어떤 사업 분야를 분할해 자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의 현대중공업은 한국해양조선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되고 분할돼 신설되는 자회사는 현대중공업이라는 이름의 회사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분할 계획서에 따르면 신설되는 현대중공업이라는 100% 자회사가 분할 전 장단기 부채 수조원의 거의 대부분을 안고 가게 됩니다. 기존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이 신설 현대중공업에 들어가게 되고요. 안 그래도 긴 조선업 불황에 고통 받던 노동자들이 이런 부실한 비상장 자회사로 이전되는 상황을 받아들일리 만무하죠. 이름만 현대중공업일 뿐 부채를 잔뜩 안고 시작하는, 게다가 비상장의 지방 자회사인데요. 뿐만 아니라 대우조선 인수합병까지 이뤄지면 겹치는 사업분야가 많아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수합병에 관여하고 있는 산업은행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고요. 단협승계 문제도 있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울산 시장의 삭발식으로도 알 수 있듯 울산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될 거란 우려가 있습니다. 이는 기존(존속)법인인 한국해양조선은 서울로 본사를 옮길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재무가 계산된 우량 존속법인은 서울로 이전하고 이름은 여전히 그 유명한 현대중공업이지만 부채만 떠안은 신설법인만 울산에 남는거죠. 이는 이번 정권의 균형발전에도 크게 반하는 일인데 말이죠.
이외에도 물적분할이 산업은행이 내간 대우조선 인수합병의 조건이었다는 사측의 말도 거짓으로 드러난 마당이라 이렇게 무리한 물적분할을 통해 현대가 얻으려는 것이 뭐냐는 의구심이 무성한 상황입니다. 재무가 개선된 존속법인의 고배당 정책을 통해 재벌 일가의 배를 불려주고 3세 승계를 편하게 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이 지경이 됐는데 무엇보다 무서운 건 정말 이상할 정도의 언론의 침묵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몰랐습니다. 며칠전 어디선가 노사가 대립하는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사태의 중요도에 비해 언론 커버리지가 말도 안되게 부족하더군요. 온갖 세상만사를 논평하는 라디오나 팟캐스트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고 있고. 지방 문제여서일까요? 민노총이라는 귀족 노조들이 또 시끄럽게 떠든다고 생각해서일까요? 보수는 저들이 귀족 빨갱이들이니까 무시하고 진보는 문 정권에 부담을 주니 관심 끄는 걸까요?
노조에 발 한쪽 들여놓은 적 없지만 제가 언론을 통해 접해본 대부분의 노동 운동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노조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겠죠. 투쟁 방식도 홈피 들어가보면 칠팔십년대에는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구식이라 보고있기 참 힘들기까지 하고요. 하지만 혼자선 아무도 거들떠 안보니 단체를 만들고 그래도 안되니 광장에 나오고 몸으로 막아도 보고 높은 곳에 올라가고 하는 것이고, 이런 투쟁의 상당수는 결과적으로 손배소 가압류를 통해, 직장 폐쇄를 통해, 혹은 공권력의 탄압이나 그냥 대중의 무관심으로 싸운 이들의 평범한 삶이나 때로는 목숨을 요구하죠. 그런 희생 속에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전진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작년말 한 노동자의 목이 절단되고나서야 산안법이 전면개정되었지만 다 됐나보다 관심 끈 사이 하위시행령은 누더기로 만들어졌고 국무총리실 산하의 화력발전소 진상조사위는 발전소들의 조사 방해행위가 너무 심해 더이상 못해먹겠다고 잠정 중단을 발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거죠. 적폐들 기득권들은 정말 꼼꼼하고 부지런하며 겁도 별로 없습니다. 국민들이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다시 원상복귀입니다.
아무튼 걱정이네요. 주총에서 대규모로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노동계와 현 정권의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될 게 뻔한데 적폐들 보기에 그렇게 좋은 꽃놀이패는 없을테니까요. 막판에라도 잘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