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베스트나 베오베의 여러 분들과 같이 성추행 피해자입니다
다만... 조금 다르다는 것이... 성이 남성이라는 정도일까요?
너무 어렷을 때 일이라 어떤 일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동네 5~6학년 누나들이 병원놀이를 하자고 불렀었죠
그 중에 한명은 저희 가족이 세들어 살았던 집주인 딸이었구요
한달정도 전 환자 역할만 했습니다. 바지 내리고 진찰하고 주사 맞는 시늉하고...
그리고 어느날 부터 오줌눌 때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오줌색도 점점 변하더니 빨간 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요도염이나 방광염에 걸린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생식기를 만지면서 세균 감염이 일어난 듯 합니다.)
그제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게 되었죠
그리고 어미님들은 누나들을 불러 이야기 했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너무 ㅇㅇ만 환자 시키지 말아라'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론... 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장소에서 꽤 오랫동안 같은 일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 일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사춘기 들어서 나게 되더군요(사춘기가 조금 늦게 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터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했는데... 지하철에 근처 학교의 여고생들이 있으면 그 칸에 타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가 지하철 옆에 서있거나 옆자리에 앉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정확히 그 당시엔 어떤 감정인지 몰랐지만... 미지의 공포였습니다)
학교는 남학교였기 때문에 상관 없었지만... 통학할 때는 누가 먼저 가기 전에 가장 먼저 나섰고, 집에 갈 때엔 학원 핑계를 되면서 늦게 가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웃기는 건 이런 상황에서 이성애자였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여체에 대한 욕구는 또 생기더군요
풀수 없는 욕구 때문에... 결국 음란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진학해도 이런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여성들이 저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늘 지저분하고 추레하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 생활은 완전히 아웃사이더일 수 밖에 없었고, 일반적인 연예는 완전히 남의 이야기였죠.
군 제대 이후 이런 저를 바꾸어보려고 난생 처음 패션잡지 같은것도 읽고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동아리 활동도 하고.. 결국 누군가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자친구였던 그 분에게 마음 속 깊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몰랐던 두번째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스킨쉽이.... 안되었습니다. 키스는 커녕... 손을 잡으려고 마음만 먹어도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내도록 안절부절 해야 했었고, 영화 끝날 때 쯤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같이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했고 불안하더군요
결국 저는 그녀를 마음으로 사랑했었지만... 스킨쉽으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지 못하는 저를 그녀는 견디지 못했고... 결국 헤어지고 말았죠. (솔직히 이야기 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 조차 제가 어떤 상태인지 몰랐거든요)
사실 그제서야 저는 저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성폭력피해 상담소에 제 발로 처음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벌써 십수년전 일입니다만... 그 당시엔 우리나라에 성폭력 상담이라는 것이 그리 활성화 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상담을 하시는 대부분이 여성분이셨으며, 그런 여성분들은 또 대부분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만 접하였거나, 자신이 피해자인 경우 였습니다. 제가 성폭력 남성피해자입니다... 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남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대부분의 반응은 '남성이 여성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진상부리려는 인간' 정도 였습니다.
혹시나 이런 이야기를 인터넷이나 편지로 상담하더라도 일반인의 반응은 '좋았겠네요' '부럽습니다'정도였죠...
다섯번째인가 찾아간 부산의 한 상담소에서 지금 제가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상담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대로된 상담이라는 것을 받기 시작했으며, 부모님 몰래 정신과 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정신과의 진료를 받으면서 받았던 진단명은 우울증, 분열성 인격장애, 강박장애, 대인공포증 중 여성공포증... 정도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여성과의 접촉을 무서워하는 저를 고치기 위해 스승님과 그 당시 상담소의 많은 여성분들 (대부분 세네살 위의 누님들이었지만)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땀투성이, 여드름 투성이의 제가 상담소에 오면 모든 여자분들이 나와 일일이 안아 주시면서 제 공포심을 호전시키려 도와주셨었죠.
지금은 혼자 지하철도 잘 타고, 옆자리에 여성분이 앉아도 일어서서 내리고 하는 증상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상담 중 저와 같이 보호받고 치료받지 못하는 수많은 남성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받은 도움을 그들에게도 주고자, 제 인생의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습니다. 아직 대인기피증이 남아있어 상담은 못하지만, 혼자 골방에서 책을 읽고 연구를 하는 것은 체질에 맞더군요. 결국 3년 전엔 학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저도 마흔이네요
아직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심리학으로 박사까지 딴 사람이 왜 장가를 못가냐고요... 그럴때 마다 전 그냥 웃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에서 보니 저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성에 대한 분노를 무의식에 가지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아내나 딸에게 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가정을 꾸려보고 싶긴 하지만... 그런 위험요소를 가지고 결혼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여자 손목도 못잡는 남자에게 시집을 오려는 사람이 있을까... 합니다 ㅎㅎ
너무 길었네요 ㅠㅠ
정말 생애 최초로 제 이야기를 한번 써 봤더니... 속이 많이 후련합니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픈이라고 합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어둠, 아픔들은 자신의 용기가 허락하는 한 믿을만한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믿을만한 우리 오유!!! 사랑합니다. ㅎㅎ
혹시 저와 같은 어려움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마음 깊숙히 응원하겠습니다.
힘 내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