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대책을 뿌리부터 불신하게 만드는 '오염 물질 측정 조작'이 만연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파장이 예상된다. 오염 물질 측정을 기업과 민간 측정업체에 대행시켜온 정부 정책의 예정된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등의 배출량을 조작한 사업장 235곳과 측정조작을 의뢰받은 4곳의 측정대행업체를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광주, 전남 지역의 대기오염 물질 측정대행업체들을 조사한 결과 LG화학, 한화케미칼을 포함한 전남 여수 산업단지 사업장들은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수치를 조작해 왔다. 이들 대기업은 올해 초 미세먼지 줄이는데 자발적으로 동참하겠다며 환경부와 업무협약을 맺고도 측정치 조작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수치 조작은 노골적인 공모와 뻔뻔한 수법으로 이뤄졌다. 지구환경공사, 정우엔텍연구소, 동부그린환경, 에어릭스 등 4곳의 측정대행업체는 지난 2015년부터 4년간 대기오염 물질 측정값을 축소해 조작하거나 실제로 측정하지도 않고 허위 성적서를 발행했다.
이들과 공모한 배출사업장은 LG화학 여수 화치공장, 한화케미칼 여수 1·2·3공장, 에스엔엔씨, 대한시멘트 광양태인공장, 남해환경, 쌍우아스콘 등 6곳을 포함한 235곳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4곳의 측정대행업체와 6곳의 배출업체를 기소 의견으로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 지난 15일 송치했다. 나머지 배출업체에 대해서는 현재 보강 수사를 진행 중으로,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추가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 대기오염물질 측정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진 한화케미칼 전경. ⓒ연합뉴스
조작 건수 67.5%는 측정도 안하고, 나머지는 30%대 수준으로 축소
4곳의 측정대행업체는 지난 4년간 총 1만3096건의 대기오염도 측정 기록부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발급했다. 직원 1명이 같은 시간대에 여러 장소에서 측정했다고 기록한 8843건(67.5%)은 실제 측정을 하지 않았고, 4253건은 실제 측정값을 축소했다. 축소한 측정값은 실제 대기오염 물질 배출 농도의 33.6% 수준으로 조작됐다. 심지어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 기준치를 173배 이상 초과했는데도 이상이 없다고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먼지와 황산화물 측정값도 법적 기준의 30% 미만으로 조작해 대기기본배출 부과금도 면제받았다.
배출업체와 측정대행업체가 측정치 조작을 위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은 충격적이다. 측정대행업체 직원이 '메일로 보내주신 날짜와 농도로 만들어 보내드리면 되나요?'라고 물으면 배출업체 직원이 "탄화수소 성적서 발행은 50언더로 다 맞춰주세요"라는 식으로 공모했다.
LG화학은 환경부 발표 직후 신학철 대표이사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신 대표는 "해당 사안을 인지한 즉시 모든 저감 조치를 취해 현재는 법적 기준치 및 지역사회와 약속한 배출량을 지키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련 생산시설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이번 광주·전남 지역의 적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본다"며 "올해 2월부터 실시 중인 감사원의 '대기 분야 측정대행업체 관리실태' 감사 결과와 전국 일제 점검 등을 통해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종합개선방안을 다음 달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지 않는 한 '전시행정'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은 오염물질 측정 조작 공모 사실이 인정될 경우 과태료 500만 원 이하를 지불하면 그만이다. 가장 강도 높은 처분은 지자체 등으로부터 최대 20일간 조업정지 조치를 받는 데 그친다.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배출기업이 측정업체에 배출조작을 적극 주문하고 공모해왔다"면서 "이번 사건은 정부의 허술한 규제와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빚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성명서는 "사업장이 오염배출량을 '셀프측정'하게 하는 정부의 규제 방식이 배출조작 비리를 방치하고 문제를 키웠다"면서 "배출사업자가 자가 측정하거나 측정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계약하는 방식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은 작동하지 않았고 공정성은 구조적으로 담보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환경연은 "정부와 지자체의 배출측정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해 기존의 유착구조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일 환경부는 2018년 626개 사업장의 오염물질 배출량 자료를 공개하며, 배출량이 전년에 비해 9% 저감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배출조작 사건은 과소 측정된 엉터리 통계에 정부의 미세먼지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환경연은 "최근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의 고로 오염물질 무단배출 건과 같이 제철, 석유화학 단지 배출량 측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사각지대 오염원에 대해서도 촘촘한 관리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면서 "허술한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미세먼지 저감에 '무임승차' 하면서도 행정처분은 영업정지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기업 봐주기식 솜방망이 처벌 관행이 문제를 키워왔다"고 정부의 책임을 강도높게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