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괘종시계
출처 - 판
작성자 - 공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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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0:30
가게에서 나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가볍게 몸을 추스리며 재빨
리 발을 옮겼다.
가게 일이 끝나고 한잔 하고 가자는 영배형의 권유를 어렵게 만류하고 5분이라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만끽하고 싶었다. 불철주야로 계속 되는 연장 근무에 온 몸이 거미줄처럼 축 늘어
진 기분이었다. 피로가 온몸에 진득한 수액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그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따듯한 물을 가득 받아
놓은 욕조에 아늑한 내 방 침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집으로 돌아간
다는 생각에 온몸이 가볍게 부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들뜬 마음을 감추기 위해 유리창 밖을 내다
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잔뜩 들어선 거리를 빠르게 지날 무렵 문득 영배형이 떠올랐다.
호프집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나를 불러세웠다.
“기태야, 우리집 가서 한잔 하고 가지 않을래?”
“다음에요. 너무 피곤해서요”
몇 번의 거절 끝에 영배형은 못내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어쩔수 없
었다.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몸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나의 몸은
술보다는 휴식을 원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괜시리 영배형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방황하던 내게 그
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덕분에 강남의 한 작은 호프집에 취직하게
됐고 그와 함께 일하게 된 게 작년 8월쯤이니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었다.
영배형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어떤 명실상부한 이유도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내가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내 의사표현을 했을 뿐이고 그가 내 의사와는 상
관없이 자꾸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몇 차례 짜증을 냈던 것 뿐이다. 짜증에 살짝 욕이 섞여 있었
던 건 미안한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별 일도 아닌데 의례적인 말로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것 자체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배형이 처음부터 술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그의 모습은 처음 내가 그를 알게
됐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입대 전 대학 동아리에서 알게 된 그는 한잔의 술도 입에 대지 않
을 정도로 술을 멀리했다. 그런 그가 어떤 뜻 깊은 계기와의 조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안먹
던 술을 먹기 시작한 건 6개월 전 쯤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얼굴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날은 손님도 없고 가게 안이 아주 한산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테이블
정리를 하던 중 문득 영배형이 있는 카운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허
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이상해서 물었다.
“형 요즘 이상해요. 무슨 일 있어요?”
나의 물음에 영배형은 약간 당황한 듯 하다가 짐짓 태연하게 되물었다.
“뭐가?”
나는 더 집요하게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죠? 그쵸? 돈 때문에 그래요? 아니면 여자? 혹시 아직도...?”
“그런 거 아냐, 임마”
“그럼 뭐예요? 그거 알아요? 형 요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요. 잠은 제대로 자요?”
“그럼”
“그러지말고 내일이라도 한번 병원에 들러봐요. 사람 몰골이 장난이 아니야”
“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냐?”
“말도 마요. 꼭 무슨 살아있는 시체 같다니까?”
나의 말을 듣고 영배형은 걱정이 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살아있는 시체의 몰골이었
다. 언제부터인지 눈 밑의 시커먼 윤곽이 그의 얼굴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눈가와 이마에 잔
주름이 늘어나고 광대뼈가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바싹 말라가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그의 모습이 걱정되서 재차 물었다.
"정말 별 일 없는거죠?"
"그렇다니까"
분명 영배형은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돈이나 여자와 같은 단순한 문제
인줄로만 치부했다. 어쩌면 갑작스레 형편이 어려워져 사채라도 빌려 쓴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그에게서 어떠한 대답도 들
을 수가 없었다.
넋놓고 창밖을 응시하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택시기사가 인사불성이 된 나
를 흔들어 깨웠다. 희미하게 눈을 떴다. 감았던 눈커플을 다시 들어올리는 일만큼 버거운 일도
없었다. 피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잠에서 깬 탓인지 술마신 다음날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택시기사가 한번 더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2만원까지 올라가 있는 미터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여기가 어디죠?”
“댁이지, 어디긴 어디유. 젊은 양반이 오밤중에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디야?”
“술이라뇨, 피곤해서 그래요”
“어디보자, 2만 500원인데 2만원만 주슈”
나는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나서 집까지 어떻게 가게 됐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방에 도착해 있었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 참
았던 졸음을 쏟아냈다.
- 2 -
PM 11:40
나는 황급하게 눈을 떴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쉴새없이 베어나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곤두박질
쳤다.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다시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꿈이었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생생했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뻗
어버렸던 게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어떤
소리가 거실 쪽에서 들렸다. 규칙적이며 반복적인 소리였다. 요란한 소리가 멈추고 낮은 정적이 깔
렸다. 기괴한 음성이 들린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기이이이...”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가위에 눌린 기분이었다. 눈에 힘을
주어 눈커플을 밀어올렸다. 기괴한 음성이 속사포처럼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침대 밑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그 기분 나쁜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느껴
졌다. 다시한번 듣기 싫은 소리와 동시에 검은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무언가가 침대밑에서 스
멀스멀 기어나왔다.
“기이이이....”
그 형체는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여자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남
자의 생식기가 달려 있었고 팔과 다리의 위치가 모두 바껴있었다. 나는 그 형체의 얼굴이라는 부분
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눈 앞에서 이해할수 없는 모순이 생겼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입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눈이 달려 있었고 귀, 이빨, 혓바닥, 눈썹이 뒤죽박죽 섞여서 제멋대
로 엉겨 붙어 있었는데 마치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조각들을 보는 듯 했다.
괴생명체가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놈이 침대 위로 기어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격렬하게 저항
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않았다. 잠들어있던 모공 하나하나가 열리면서 머리칼이 쭈뼛쭈뼛 섰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마른 침을 삼키며 알람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한참동안 잔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았다. 며칠 사이 몸이 많이 허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다.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타는듯한 갈증을 느꼈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냉수 한 모금을 뽑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부재중 전화 여덟 통과 이십여개의 문자메시지가 핸드폰에 찍혀있
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영배형이었다.
‘기태야, 정말 미안한데 안 자고 있으면 잠깐 우리집으로 와 줄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였다.
내용이 길어서 두 파트씩 여러개로 나눠서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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