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로이터 “트럼프, 북 수용 어려운 CVID 문서화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사실상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의 문서화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미 대화 재개가 쉽지 않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관계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을 갖기 이전의 상태로 ‘초기화’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장에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그리고 모든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 등을 요구하는 내용의 ‘비핵화 문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또 미국은 핵프로그램의 포괄적 신고, 국제검증단의 완전한 접근 보장, 모든 핵 인프라 제거, 핵 관련 과학자들의 상업적 활동 전환 등도 요구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 보도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 문건의 내용은 미국이 비핵화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엔드 스테이트’다. 하지만 정상회담장에서 북한이 거부감을 보이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내밀고 합의문에 도장을 찍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은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미국이 이 같은 요구를 관철시키려면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해야 할 의무도 같은 수준으로 자세하게 제시했어야 하지만 미국이 그런 반대급부를 진지하게 제안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 ‘판을 깨기 위해’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고강도 요구를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익명의 외교소식통은 1일 “이 문건의 내용은 미국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합의에 담았어야 할 내용”이라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준비 없이 회담에 나섰다가 북한의 요구대로 합의를 해준 뒤 이를 뒤늦게 만회하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첫 정상회담에서의 실패를 2차 정상회담에서 바로잡고 협상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싱가포르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어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줄곧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전직 고위관료는 “미국 대통령이 협상장에서 직접 요구한 것이라는 점에서 물러설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면서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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