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윤덕, 이자연 기자]
아파트 분양 추첨에 떨어져 낙담하고 있는 엄마에게 말한다.
“한숨 좀 쉬지 마. 인생이 원래 그런 거잖아.”
주변 식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모, 서른셋씩이나 먹어서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 안 해?"
선생님에게도 스스럼없다.
“선생님, 오늘 (신문) 헤드라인 봤어요? 검찰총장이 물러났대요.”
자기네끼리는 선생님을 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싸가지는 없는데 실력은 있으니 우리가 참자."
이런 대화는 요즘 초등학생이 하는 말이다. 조선일보와 맘스쿨(www.momschool.co.kr) 공동조사 및 초등학생 20명 심층 인터뷰, 교사·학부모·학원강사 인터뷰에서는 초등학생 것이라 믿기 어려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더이상 아이들이 ‘애들’이 아니다.
마우스(인터넷)와 리모컨(TV)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세상을 너무 일찍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대학생이 읽는 책을 읽고, 성인의 말투를 닮아간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들은“우리 애가 언어 영역에 영재성이 있는 것 같다”며 은근히 ‘자랑 반, 기대 반’이지만, ‘진실’은 좀 다르다. ‘입심’에 비례해 지적 능력이 높아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7차 교육과정의 개방성이 오히려 초등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판단, 지난 3월 학력평가를 부활시켰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 수도 2001년 6530명이던 것이 2003년 1만7677명으로 급증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과잉사회화’라고 설명한다. “군비축소 관련 웹사이트에 초등생 댓글이 올라온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는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에 오기 전 이미 머릿속 용량이 꽉 찬 아이들이 대학에 와서는 ‘교수님, 제발 요약해 주세요!’라는 말을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TV 및 인터넷 이용은 물론 대입 논술을 겨냥한 무차별 독서교육은 아이들의 조숙(早熟)을 재촉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양으로만 승부를 거는 ‘다이제스트’식 독서교육이 아이를 헛똑똑이로 만드는 것이다.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은 “얼마 전 대치동 한 논술학원에서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을 초등학교 때 다 떼어주겠다고 광고해, 150명 정원에 그 세 배의 지망생이 몰렸다. ‘백 년 동안의 고독’ ‘과학혁명의 구조’ ‘카프카’ ‘대학-중용’을 과연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입시 과열이 어른 흉내만 내는 아이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와 아이들이 평등한 인격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평등 교육’, 자율성을 중시해 가장 합리적인 교육방식이라 믿어온 ‘열린 교육(Open Education)’의 함정도 드러나고 있다.
조연순 이대부속초등학교 교장은 “요즘 아이들이 자기 의사와 감정 표현이 확실하지만, 대신 깊이와 집중력이 없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책임의식이 부족하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에 진저리를 치는 부모들이 정반대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효정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과거 아이들이 웃어른과 형제를 통해 어른이 되는 법을 익혔다면, 요즘엔 컴퓨터가 그 역할을 대리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조숙한 아이들이 늘면서, ‘죽음’, ‘허무함’등을 고민하는 경향도 짙어진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20명에 대한 심층면접에서 ‘죽음에 관해 고민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15명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청담동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는 “학교, 학원을 뛰어다니며 이렇게 숨가쁘게 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도시가 싫다. 늙으면 조용한 산속에서 남편이랑 단 둘이서 살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송라초등학교 교사는 “5학년만 되면 중고생처럼 뭐든지 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즘’이 나타나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 과제물을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너무 자주 검색하거나 게시물을 무비판적으로 베끼는 일은 삼가고 ▲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행동을 무조건 대견해 하지 말고 ▲‘조숙’한 언어 사용을 ‘영재성’으로 착각하지 말며 ▲ 명작이라고 무조건 읽게 하는 것보다는 한 권이라도 깊이 있게 정독한 뒤 부모가 함께 토론하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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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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