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김영수 "軍을 사랑하니까 고발했다, 난 왕따가 아니었다"국민권익위 조사관 된 '내부고발자' 김영수 前 해군 소령
"비리 저지른 그들이 왕따 돼야"
남보라기자
[email protected] 입력시간 : 2011.08.20 02:31:15수정시간 : 2011.08.20 10:06:32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넥타이를 꺼내어 맸다. 신입사원이라 깔끔하게 나와야 된단다. 국민권익위원회 사원증도 목에 걸었다. '백수'가 돼 보니 직장이 너무 소중하단다. 그런데 넥타이 핀은 해군 마크가 새겨진, 군복 넥타이에 꽂던 그 핀이다. "다들 내가 군을 원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예요. 군은 나를 명예롭게 한 내 영원한 뿌리죠."
2009년 군내 납품비리 고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내부고발자', 그리고 이달 초 국민권익위 국방보훈과 조사관이 된 김영수(43) 전 해군 소령을 만났다.
'내부고발자=조직 내 왕따'는 선입견
사건은 2006년 김 전 소령이 계룡대 근무지원단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군수품과 예산을 담당했던 그는 지원단이 물품을 살 때 특정업체의 제품만, 그것도 시가보다 더 비싸게 사들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이로 인한 국고 낭비가 2003~2005년 최소 9억4,000만원. 김 전 소령은 이를 국방부 검찰단 등 군내 수사기관에 신고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국민권익위(당시 국가청렴위)가 고단가 수의계약으로 인한 국고 손실을 인정했음에도 군내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는 결국 2009년 10월 MBC 'PD수첩'에 출연해 비리를 고발했다. 방송 후에야 국방부는 사건을 재수사, 이 사건 관계자 등 비리 군인 31명을 형사처벌했다.
군의 허락 없이 방송에 출연하면 군법상 구속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보다 군과 사회, 어디에도 영영 발을 붙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김 전 소령은 "무너진 군 감시시스템과 나의 명예, 두 가지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는 '진급에 불만을 품어서 그런다'는 음해와 회유, 협박에 시달렸다. "오해를 불식시키려 진급심사 때 아예 신체검사 증명서를 안 냈고, 신변 위협으로 1년간 경찰의 신변보호도 받았어요."
하지만 군은 끈질겼다. 김 전 소령이 전역을 한 달 앞둔 지난 5월 사건의 한 당사자가 그를 뇌물공여죄로 군 검찰에 고소했다. 2006년 이 사건을 맡은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이 만나자고 해 얼떨결에 그의 안마방비를 낸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에 이미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김 전 소령이 군에 경위를 밝힌 뒤 '나와 수사관 둘 다 처벌하라'고 하자, 해당 수사관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전역했고 김 전 소령에 대해서는 잘못이 없다고 결론 났던 사안이었다. 결국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군은 전역 당일 그에게 경고장을 줬다.
정작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내부 고발자는 조직 내 '왕따'였을 것"이란 선입견이다. 그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개인적인 화풀이로 내부 고발을 하고 결국 삶이 파탄난다는 편견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비리를 저지른 이들이 왕따를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007년 위아래 3년 선ㆍ후배들과 동기들 다면평가에서 1위를 했다.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힘을 실어준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20년 군생활 동안 비리를 많이 봤다고 했다. "이전에도 많이 봤고, 그래서 많이 싸웠죠. 지금 알고 있는 것도 있고." 하지만 그는 입을 닫았다. 내부고발 '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권익위서 군 담당, 이제 큰일났다?
"아무리 군대라도 적법하지 않은 명령은 명령이 아닙니다." 위계서열과 명령체계가 확실한 군에서 상관을 신고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인터뷰 전 상상했던 칼 같은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FM(원리원칙주의자)'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몇 가지 꼭 지켜야 하는 게 있어요. 국가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절대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겁니다."
김 전 소령은 전남 장성군 빈농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도 고구마와 감자는 안 먹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밤낮 농사일하는 부모를 앞에 두고 혼자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대학 갈 돈도 없었다. 그는 결국 학교에서 먹고 잤다. "부모님이 일하는 걸 보면 안 도울 수가 없으니 차라리 보지 않으려고 교실에서 공부하고 자며 친구들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어요." 그리곤 등록금이 없는 해군사관학교에, 출신 고교 최초로 입학했다.
노모는 그가 91년 임관 때 받은 해군 반지를 한번도 뺀 적이 없다. "나와 가족들은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해준 군을 정말 사랑합니다. 내부고발 후 받은 불이익 때문에 군을 원망한다고 생각하면 오해예요. 사랑하니까 고발했고, 내 뿌리에 대한 애정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 6월, 임기보다 2년 반 먼저 전역했다. 납품비리 싸움을 벌이며 전역 생각을 했지만 군 생활 20년을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권익위 국방보훈과 5년 계약직 조사관 공채에 합격, 이달 초 첫 출근을 했다. 발 빠른 한 민원인은 이제 막 교육을 마친 그에게 벌써 사건을 들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일각에서는 '김영수가 권익위에서 군 담당하니 이제 큰일났다'고 말하지만 그건 편협한 생각"이라며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것은 바꾸도록 지원하는 것이 조사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왜 꼭 권익위였을까. 그는 면접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부고발을 한 나 같은 소수자도 다른 사람들 도우며 살 수 있다는 것, 정직하게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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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08/h201108200231152195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