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박명수는 왜 음반을 내는가
[경향신문 2005-11-03 15:49:29]
“노래는 배로 부르란 말이야, 배로!”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가수들에게 거침없이 호통을 쳐대는 모습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박명수’이기 때문이다.
박명수가 누구던가. 한때 ‘나 오늘 박명수 CD 샀다’, 이 한 문장이면 온갖 유머가 난립하던 인터넷 게시판조차 대번에 평정됐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번 ‘탈랄라’로 또다시 집안을 거덜낸 박명수입니다.” “난 목으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1절만 부르면 목이 쉬어서 라이브를 못해.” 스스럼없이 내뱉는 그의 개그를 들으며 키득키득 웃다가도 한편으론 저절로 솟아나는 궁금증. 대체 박명수는 왜 앨범을 내는 걸까.
어느새 그는 앨범 네개에 한장의 싱글까지 낸, 데뷔 7년차의 중견가수(?)로 접어들었다. 본인조차 새삼스러웠 던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어보며 “벌써 그렇게 됐나? 용케 버텨왔구만~” 씨익 웃고 만다.
노래는 ‘목으로’ 호통은 ‘복식으로’. 일명 호통개그를 통해 ‘제8의 전성기’(본인의 표현이다)를 맞이한 그의 앨범에 얽힌 미스터리, 이참에 하나하나 밝혀보도록 하자.
-진짜 ‘탈랄라’로 집안이 거덜났는지 궁금하다.
“에이, 그건 아니죠~ 진짜 거덜냈으면 비참하게 방송에서 그런 말 하겠어요? 1집 낼 때야 2천만원 넘게 깨졌죠. 노래 한곡당 3백만원 정도 드니까. 그런데 타이틀곡 한두개 빼곤 계속 예전 앨범 곡들을 우려먹고 있거든요. 앨범이 안 팔려도 공연비 받은 거 이래저래 합치면 완전 적자는 아니죠. 게다가 난 PR비가 필요없어. ‘사는 게 힘든데 한번만 도와주세요’ 최대한 불쌍하게 호소하면서, 내가 또 그런 거 잘 하잖아. 동시에 꾸준히 닭을 대령하는 거지~.”
-작곡가·작사가 등을 섭외하는 과정은 순탄했나.
“1997년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음반 제작사 사장이 돼있더라고요. 딱 걸린 거지. 작사는 내 매니저가 해요. 나의 대표곡, ‘바다의 왕자’랑 싱글앨범 ‘위 러브 독도’도 그 친구가 했죠. 저작료 들어가는 게 아까워서 직접 한 거지, 뭐.”
-그럼 설마 어릴 때부터 꿈이 가수였나.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음악을 즐겨들었죠. 고등학교 때 허구한 날 세운상가에 ‘빽판’ 사러 다녔으니까. 200장 넘게 모았었는데, 사실 그만큼 모으기도 쉽지 않아요.”
-그럼 ‘나 박명수 CD 샀다’란 유머까지 나왔는데도 끊임없이 앨범을 낸 이유가 뭔가.
“사람들이 앨범 갖고 웃어도 상관없어요. 그러라고 낸 건데 뭘. 내가 가수로서 큰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을 뿐이에요. 어찌보면 가수 활동은 개그맨 활동의 연장선이고. 그래도 사람들이 내 노래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정말 살아있는 거 같아. 재석이(유재석)는 지금도 내 1집 타이틀곡 ‘바보사랑’을 외우고 다닌다니까, 이거 진짜예요. 클럽에서 DJ하던 시절부터 막연히 ‘내 노래를 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꿈을 이룬 거지. 하기야, 1집 낼 때는 이렇게 4집까지 내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그만 내려고 했던 적은 없었나.
“있었죠. 3집 앨범으로 끝내려고 했었지. 당시 타이틀곡이었던 ‘바람의 아들’ 반응도 신통치 않았고, 앨범 한번 내면 이것저것 연습하고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래도 3집 다음에 ‘닭집’이라도 냈잖아요.”
-그런데 왜 또 4집을 낸 건가.
“‘탈랄라’란 노래가 너무 좋아서. 매니저가 어디서 들었는지 스웨덴 원곡을 들고 와서는 ‘딱 니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나도 듣고 한번에 필이 확 꽂혔지. ‘탈랄라’는 내가 직접 작사도 한 거예요. 요즘엔 꼬마애들도 ‘탈랄라’는 다 알더라고. 밖에 나가서 한번 물어봐요.”
-방송에서 보니까 조혜련씨의 ‘아나까나’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데.
“(예의 호통개그 버전으로) 조혜련과 내 앨범을 비교하지마! 이거 진짜 농담 아니에요. 혜련이 앨범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건 완전히 코믹이고, 내 앨범은 가요잖아. 아, 물론 개그맨이 너무 진지한 발라드를 부르는 건 보는 사람이 몰입이 안되기 때문에 안돼요(그러나 사실 그의 1집은 전형적인 발라드였다). 휘재 앨범이 망했던 것도 너무 멋을 부려 그랬던 거고. 그래서 난 누구나 흥겹게 따라부를 수 있는 유로댄스를 고집하는 거죠.”
-항간엔 이승철 닮았다고 하니까 앨범까지 따라 냈다는 우스갯말도 있더라.
“제가 진짜 팬이에요. 학창시절부터 닮았단 말도 많이 들었고. 개그맨 출발도 이승철씨 노래 흉내로 시작했죠. 첫 앨범엔 이승철씨와의 듀엣곡도 있어요. 사실 말만 듀엣이지 난 두소절쯤 부르다 도중에 쫓겨났지만. 이제와 얘기지만 그때 이승철씨가 ‘이 놈 미친 거 아니야’ 생각했다더라고. 하긴 개그맨이 앨범내면서 발라드의 황제 이승철씨와 듀엣을 하자고 하니 황당하셨을 거야.”
-혹시 노래부르다 가사 까먹어 본적은 있나.
“당연히 없죠, 난 립싱크만 해요. (잠시 생각하더니) 아, 한번 있구나. ‘탈랄라’로 라이브를 하는데 가사가 기억이 안나 마이크를 관객에게 넘겼죠. 재석이가 새로 나온 신곡 부르면서 마이크 넘겨가지고 관객들 깜짝 놀라 긴장시키면 어떡하느냐며 놀리더라고.
-몇 집까지 낼 예정인가.
“글쎄, 잘 모르겠어요. 내년에 5집을 낼까 생각 중이기도 한데. 개그맨이 앨범을 내는 그 명맥을 나라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요.”
자신의 앨범조차 개그로 승화시켜 웃음을 선사하는 박씨. 가수에, 개그맨에, 최근엔 한 피자체인점의 서울지사장까지 맡아 번듯한 사업가로 영역을 확장해, 본인 말대로 엄연한 ‘제8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1, 제2, 제3의 전성기가 언제였느냐고는 묻지 마세요”란 단서를 달긴 하지만. 개그맨 데뷔 이래 13년 동안 홈런을 쳐본 적은 없어도, 안보이면 왠지 허전한 감초처럼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이젠 그가 앨범을 내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할 것 같다.
〈글 정유진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박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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