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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한 화성인 바이러스 오덕녀 방송부분을 재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필자는 이 방송 초반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은 이진규씨가 나온 것이다. 이진규씨라는 인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에서 분노를 느낀 것보다는 방송국이 이진규씨라는 인물로 통해 전국에 있는 모든 오타쿠들의 척도를 거기에 맞추려 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진규씨가 소개해서 나온 오덕녀 이한희씨에서도 역시 분노를 느꼈다. 필자는 이진희씨라는 인물을 보고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이한희씨를 통해 오타쿠의 척도를 정하려고 하는 방송국에게 분노를 느낀 것이다.
그 방송에 출현한 모든 MC들은 자신들이 모두 한국 내의 오타쿠들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발언한 점에서 가장 불쾌했으며, 하위문화 중의 하나인 오타쿠문화를 하나의 조롱거리로 만들려는 점이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진규씨나 이한희씨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고 의지이다. 모든 행동에 대해 자유가 있다면 그 자유에 대한 책임만 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납득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서는 책임을 지는 것보다는 책임소재가 불투명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필자는 방송 이후 그들의 행위에 따라 벌어지는 여파가 정말 두렵다. 왜냐하면 이한희씨가 말했듯이 오타쿠는 하위문화의 존재이므로 수면 위로 등장하지 않은 존재이다.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그들은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받기 보다는 그 대중문화를 누리는 대중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얼마나 많은 오타쿠문화가 존재하는지 그 많고 많은 오타쿠문화에서 그들이 즐기고 누리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하고 개성적인지 대중문화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 한 가지 틀을 정해 버려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비켜나가게 될 경우 이른바 마녀사냥이란 무서운 일들이 생긴다. 실제 일본에서는 오타쿠처럼 보이는 행인이 있으면 일부 과격한 시민들이 그 오타쿠 행인을 몰래 납치하여 지독한 폭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들은 아무 죄 없는 오타쿠를 괴롭히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보단 오히려 사회의 악을 응징했다는 극단적인 방어적 배타주의에 빠져 버린다. 이런 집단적 배타주의가 일본보다 더 강력한 한국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대중문화에서 결코 누락될 수 없는 방송매체의 위력은 상당한 흉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송에서 평소 일반 대중들이 모르는 존재가 나오면 그것은 하나의 관심거리이고 하나의 오락요소이다. 그래서 방송에 나오는 화성인들이란 정말 좋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보단 마치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자신들만 세계에 빠져 더 이상 일반 사회인으로서 자질을 갖추기 어려운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한다. 이번 화성인 바이러스 출현한 이한희씨는 겉모습과 사회적 위치에서 보면 외관적으로 미모가 있다는 점과 제대로 된 직장이 있다는 점에서 예전에 나온 이진규씨보단 사회외적인 조건은 유리하다. 그러나 문제는 외적조건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이한희씨라는 인물의 생활과 가치관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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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blog아마추어 애니매이션 칼럼니스트 --<다시 시작되는 오타쿠죽이기(화성인 바이러스 오덕녀 이한희편 보고)>
http://blog.daum.net/k2guitarist/37 서브컬쳐는 웁니다 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