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중개인 "매매는 커녕 전세수요도 없다"
임대사업 물량과 새 아파트 입주로 선순환 흐름 중단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
1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일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수능 직후엔 전세 찾아달라는 전화가 빗발쳐야 하는데 올해는 완전히 다른 세상 같습니다." (압구정동 A공인중개업소 대표)
지난 3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소재한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동안 매물을 찾는 전화는 단 한통도 걸려오지 않았다. 매매는 커녕 전세수요 조차 자취를 감춘 듯 했다. 중개업소 대표는 "대책 이후엔 저가매물을 찾는 문의는 간혹 있다"면서도 "지금은 전세 계약서 쓰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에선 대출은 조이고 세금은 높인 9·13대책 후폭풍이 과거 그 어느 대책 때보다 거세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정부의 각종 규제 이후에도 그럭저럭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9·13대책 이후는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9월 이전까지는 '똘똘한 한채'를 노리는 자산가들이 강남권 진입을 노리면서 그런대로 매기가 있었다. 하지만 고가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 강화와 종부세를 올리면서 시장 분위기가 침체로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최고가를 찍고 다시 1억∼2억원 밑으로 계약이 진행됐다"며 "실거래가 신고가 확인되면 호가는 더 낮아지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일단 내년까지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3% 떨어져 전주(-0.01%)보다 하락폭이 커졌다. 특히 강남4구가 하락세를 주도했다는 점이 시장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집값이 하향 안정세에 돌아서자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 매매를 서두를 이유가 없어진 셈이 됐다.
강남권 일대 중개사들은 정부 9월 대책 발표 전후로 내집마련을 고민했던 수요자들은 이미 거래를 끝낸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신고일 기준)이 9만2566건으로 1년 전(6만3210건)보다 46.4% 증가했다. 서울 거래량은 1만8787건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119.4% 늘었다. 주택거래신고기간이 계약 후 60일 이내에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9월 대책 상황이 상당수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을 보면 강남 랜드마크로 꼽히는 아크로리버파트 전용면적 84㎡(31억원)의 최고가를 갈아치운 계약은 9월12일 진행됐다.
반면 내집마련에 미련이 남은 대기자들은 대출 어려움 등으로 기존 전세에 눌러앉는 모양새다. 추격매수를 택하기보단 추후 집값 안정화 시점에 다시 매매를 선택하겠다는 의도다.
임대사업자 물량이 증가해 전세계약을 찾는 수요가 줄어든 점도 거래 절벽현상의 이유로 꼽힌다. 장기임차가 가능해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신규등록 임대주택 수는 2만8809가구다. 전국에 약 130만가구에 달하는 임대사업 물량이 포진해 있다. 임대사업자 세입자는 새로운 전세매물을 찾는 수고가 필요 없는 셈이다.
또 강남권 신규 단지가 증가해 대기 세입자들이 기존주택을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강남권에선 미니신도시규모인 9510가구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개포동에서 래미안루체하임(850가구·2018년11월)과 래미안블레스티지(1957가구·2019년2월)가 곧 집들이를 시작한다.
송파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재건축 이주수요와 실수요 입주로 10년 전 잠실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의 역전세난 재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변 잠실과 위례신도시 영향으로 첫 계약의 전세가율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공백을 새로운 세입자가 채우는 구조가 깨졌다고 설명했다. 집주인들은 당장 눈치보기로 저가에 매물을 내놓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세입자 역시 전세 재계약을 통해 내집마련 시기를 늦출 공산이 크다.
압구정동 중개업소 대표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면 또다시 규제를 꺼낼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 매매량이 증가하긴 어렵다"며 "새 아파트와 임대사업 물량으로 기존주택 전세를 찾는 수요는 과거보다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