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 선을 두개 긋고 그 사이를 걷는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그 선 사이를 잘 걸어갑니다. 하지만 지상에서 100미터쯤 되는 높이에 그 폭과 같은 길이 있으면 그걸 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공포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 선바깥으로 나가게 만드는 겁니다. 평지라면 아무 문제없을 폭인데 말이죠.
우리는 이런 정신적 낭떠러지들을 가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박사모입니다. 그들은 종북, 빨갱이, 주사파, 공산주의자로 부르는 낭떠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보통 사람들은 너무나 유약하고 저 빨갱이들은 무서워서 빨갱이 한 사람이 한 도시에 뜨면 그 도시 전체가 폭도로 변해 미쳐 날뛰게 됩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운동도 광주사태고 촛불집회도 종북주의자들에게 속아서 나온 사람들인 겁니다. 그래서 빨갱이가 보이면 서둘러 잡아 없애야 합니다. 빨갱이는 마치 메르스 보균자와 같아서 순식간에 나라전체를 망치고 마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들의 이런 공포가 북한에게 우리의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합리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부패를 합리화하는데 쓰이고 북한과의 체재경쟁을 이길 수 없게 만듭니다. 심지어 국방도 약하게 만들고 체제경쟁이 끝난 상황에서도 북한에 휘둘리게 만듭니다. 북한을 한없이 강하게 보이게 만드니까요. 북한이 허풍한번치면 난리가 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농협 데이타서버도 날리고 보이지 않는 어뢰로 천안함도 좌초시킨 무적의 군대를 가진 나라가 아닙니까? 북한군부대 한소대만 국경선 넘어오면 남한은 그걸로 끝날 것처럼 난리치는 것이 바로 그 태극기부대고 우리나라의 우파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어리석다고 계속 외치는 것이 그들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이런 정신적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입니다. 저는 이명박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이제 나라가 망했다며 반년간 우울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우울했고 그런 일이 있고나서는 더 우울했죠. 이명박을 찍은 한국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명박과 노무현이 차이가 뭐냐고 하는 사람과는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똥과 된장의 맛을 구분못하는 사람과 좋은 음식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선거철이 아니기 때문이고 돌아보면 이명박을 낭떠러지로 생각한 것이 이명박을 당선시키는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지적하자면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도 여기 이렇게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끔찍했지만 그걸 통과해서 촛불혁명을 하지 않고는 재벌개혁과 적폐청산을 이룩할 힘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도 말하더군요. 저는 꼭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은 지금도 이렇게 망하지 않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명박을 낭떠러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되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들입니다. 우선 저에게는 이명박이 너무도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이명박을 찍을 수도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이명박을 비판하는 일도 단순했습니다. 이명박의 나쁜 점들을 죽 나열하면 그런 인간쓰레기를 누가 지지하겠는가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명박이 나쁘다는 것을 지나치게 확신하면 잊게 되는 것은 왜 누가 이명박을 찍게 되는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겁니다. 비슷한 일은 미국에도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나쁘다고만 생각할 뿐 누가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박탈감을 느끼며 왜 트럼프에게 넘어가는 가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명박이 싫습니다. 하지만 선거철에는 좀 더 생각이 깊었어야 했고 이명박 욕을 하는 대신에 사회 전체가 가지는 박탈감과 아픔에 대해 둘러 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이 나쁜 놈이니 선거결과는 보나마나라는 식이 되어서는 안되었다는 겁니다.
도덕적 타락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은 절대악이니 그를 당선시키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고 그를 위해서는 우리의 선택은 뻔하다라는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도덕적 고려를, 정치적 명분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게 합니다. 그냥 이기는 것이 절대선이 되고 맙니다. 말하자면 인간과 악마의 선거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악마에게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좋은 인간이 되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이미 뻔한 것이니까요. 누구도 이명박보다 나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혹시 악마에게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마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짓을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전부 바보거나 악마에게 홀린 악마의 지지자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요 몇달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이재명을 낭떠러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들이 정말 전부 작전세력일 수는 없는거니까요. 사실 종북도 나쁘고 위험합니다. 이명박도 물론 나쁘고 위험합니다. 이재명이 정말 낭떠러지냐 아니냐는 논쟁은 제 경험에 무의미합니다. 적어도 온라인 토론 정도로는 어림없습니다. 팩트? 그런 것도 소용없습니다. 뭔가를 낭떠러지로 보면 설득이 불가능합니다. 저도 아마 제 살아생전에 이명박을 지지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걸 전제하고도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재명 반대자들이나 박사모나 이명박 반대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지만 행동패턴에 비슷한 점이 있고 같은 실수를 하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뭔가를 낭떠러지로 보기 때문에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미국의 트럼프예를 들었죠.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민중이 미개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끝내면 트럼프의 치세는 오히려 길어집니다. 다른 입장, 다른 방향을 쳐다봐야 합니다. 제가 박사모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제가 이명박을 지지하게 되는 일은 없겠지만 박사모 바보, 이명박 지지하는 사람은 멍청이라고 계속 외치는 것만 계속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세상을 봐야죠.
이재명의 반대자 여러분들은 문재인 지지자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분들은 생각해 보지 않았더라면 본인들의 행동이 박사모와 같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이재명을 낭떠러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재명을 지지하는게 아닙니다. 지금 이재명이 차기 대권주자로 지지율이 얼마나 나올 것같습니까? 차트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낭떠러지로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잘 갈수 있는 길을 흔들어서 줄 바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이재명을 낭떠러지라고 생각해서 공포에 떠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재명을 공격하는 저 사람들이야 말로 이재명의 진정한 선전자이고 지지자라고도 합니다. 이재명 이슈에서 떠나지 못하는 분들은 이런 걸 생각해 보실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