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오래전 서프라이즈에는 갔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여기 저기 소식을 들을 겸 눈팅할 때만 있었지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까지 참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언젠가 지나가면서 그러더군요. 요새는 어디 갈 사이트가 없다고. 그말 듣고 찾아보니 정말 인터넷 유명 시사 게시판마다 난리가 아니더군요. 만약 그것이 선거 결과에까지 연결되었다면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할만 하지만 여론조사나 선거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으니 작전세력이 아니라고 해도 소수파가 자기들 몸집 이상의 발언권을 가지고 커뮤니티마다 장악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사게시판의 한가지 한계는 두줄로 쌍욕을 쓰나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같은 명문을 쓰나 글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경우에는 단 한명이서 수천명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것같은 것도 봤습니다. 그 반대처럼 보이는 문제도 있습니다. 분위기와 문화에 개인이 대항하기는 힘들고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이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보통 세 사람이 한 사람 바보만들기 쉽다고 하지요. 사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베같은 사이트에도 몇사람만 참여시키면 정화되지 않겠습니까? 그럴리가 없지요. 이 두가지 한계는 서로 모순되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게시판 분위기의 저질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시판이 도배되고 쌍욕과 비아냥이 난무하면서 개판이 되면 바쁘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발길을 끊고 결국 개판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 분위기 좋다'라고 말하면서 게시판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한번 만들어 지면 자정효과를 몇사람이서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아주 많은 분들이 토론이 뭔가에 대해 오해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아주 많은 분들은 토론을 일종의 이종격투기 같은 걸로 생각하며 한쪽이 말문이 막히면 지는걸로 생각합니다. 마치 애들 싸움에서 코피터지면 지는 걸로 하자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게시판에서 한두줄 댓글을 나누고는 상대방이 자기에게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자신의 모든 질문에 상대방이 답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패배한 걸로 생각합니다. 그런 판단이 옳을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닐때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치원생이 대학교수에게 계속 질문하면서 자신의 학력을 대학수준까지 못올려주면 대학교수의 패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때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왜 그래야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됩니까? 제 말은 말싸움하다가 한쪽이 말문이 막히면 말문이 막힌 쪽이 패배하는게 토론이나 대화가 아니라는 겁니다. 유시민이나 진중권도 전여옥이나 나경원, 홍준표, 김성태 같은 사람하고 토론하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게 유시민이 패배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상식을 너무 파괴하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게 되는 겁니다.
토론이 뭔가에 대한 고민의 부족은 결국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좋은 토론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 말문 막히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자해가 됩니다. 한두달 지나 돌아보면 공허합니다. 결국 배운게 없으니까요. 배운거라곤 맹랑한 질문던지기로 상대방 말문을 막히게 하고 사람들이 그 게시판에 발길을 끊게 만드는 방법 뿐이죠. 말문막히기 고수들이 즐비한 곳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 보면 영양가가 없으니까요. 단어 열개정도 아는걸 반복하는 것같은 짧은 게시물만 반복나열되고 그걸 쓰는 사람들이 잘난체 하는 곳에서 뭘 배우고 얻어가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트래픽줄면 결국 게시판 망하는 겁니다.
시사 게시판의 한계가 분명해진지는 아주 오래되었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해법이랄까 처방은 몇가지 이미 있습니다. 그게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오유에는 그 해법들조차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시사 게시판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표적 세가지 방법은 첫째로 베스트 글시스템으로 모든 글이 같은 노출을 받게 하지 않는 겁니다.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은 대문글이 되고 베스트 글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게 하는 것이죠. 제가 사연은 다 모릅니다만 현재는 오유의 시게에서는 이 시스템이 사라졌죠. 추천만 있지 결국 다음페이지 넘어가면 끝입니다.
두번째가 더 중요한데 인터넷 소통의 한계를 인정하고 게시판 운영자가 이 게시판이 허용하는 정치적 성향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는 겁니다. 불교신자와 기독교신자가 대화를 나눠서 개종을 하게 되는 일도 있지만 그런 걸 게시판에서 하려고 하면 끝이 없으니 그런건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거나 다른 곳에서 하라고 하고 이곳은 불교신자만 혹은 기독교신자만 오라고 선을 긋는 겁니다. 와서 전도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소위 정치 평론 사이트라고 불렸던 사이트들은 대개 그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박사모와 노사모를 한꺼번에 포용해서 그 안에서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사이트가 그걸 인내할 수 없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도 언제나 쓸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오유 시게는 전에는 저절로 그런 정파성이 어느정도 지켜졌지만 지금은 그게 깨진 것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게시판에서 자유한국당을 찍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가지고 토론을 합니다. 물론 그건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자유이며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건 대개 시게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제지요.
세번째는 논객의 존재입니다. 시사게시판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누구나 참여하는 것이지만 그게 작전세력이라서 그렇든 개인적 일탈이든 외부 세력이 정말 총력전을 펼칠 때 그 게시판의 주인들이 모두가 평등한 입장이라면 사실 방어가 안됩니다. 이건 소위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가진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 사이트에서 존경받고 신뢰받는 인물들이 버티고 있어야 교통정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논객들이 사라지거나 변심하거나 하면 사실 그 게시판은 거의 주인없는 산처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누굴 믿고 의견을 정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집니다. 논객은 시사게시판이라는 작은 세계안의 언론기관비슷합니다. 논객은 당연히 누가 일부러 지명하는 식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오랜 필자중의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더 신뢰를 해주는 것도 있고 시스템이 논객이라 여겨질 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더 주목받게 시스템을 돌려서 그렇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누가 논객인지 아닌지도 무슨 증명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식이건 논객없는 시사사이트는 주인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 오유를 잘 모릅니다. 눈팅은 많이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시사겔은 아주 가끔이었고 유머나 읽으러 들어왔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오유 시사게시판은 위에서 말하는 모든 방어막이 다 제거된 상태인 것같습니다. 아주 최근에 관리자가 차단명령을 내려서 약간 정체성이 분명해 질까 말까 해진 정도죠. 위에서 말한 방법들은 모든 사이트에서 쓸 수 있거나 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시대자체가 이제 게시판 시대가 끝난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거리는 있을 것입니다. 게시판 상태를 보다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몇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