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희 구급대원님께. 2010년 119구급차를 탔던 산모입니다. 그 아기가 무사히 잘 태어나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신 강연희 구급대원님 감사합니다.”
전북 익산 소방서에 근무했던 고 강경희 소방경에게 지난해 배달된 편지다. 대한민국 모든 소방관이 그렇듯, 그녀 또한 가슴에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First in Last out)’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이 말은 모든 소방관들이 현장활동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강 소방경은 지난 4월 2일 오후 1시20분쯤 전북 익산시의 한 종합병원 앞에서 근무 중 취객 윤모씨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함께 머리를 2차례 가격당했고 그 자리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해 200명이 넘는 소방관들이 주취자 등으로부터 폭력피해를 입고 있는 실태와 그들을 대하는 국가의 자세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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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고(故)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이 열린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유가족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폭행에 커터칼 휘두르고...심지어 목숨까지
강 소방경의 사례처럼 대한민국의 안전 최일선에 있는 소방관들이 주취자들로부터 폭행피해를 입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강원소방서 원주소방서 구급대원들은 응급처치 도중 신고자 조모씨로부터 커터칼로 위협을 받았다. 대원들은 신속한 응급처치를 위해 조씨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었지만, 술에 취해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조씨는 “왜 자꾸 물어보느냐”며 욕설을 퍼붓더니 소지하고 있던 커터칼로 대원들을 위협했다. 조씨는 구급차 양쪽 후사경(사이드미러)과 와이퍼를 부수고, 라이터로 종이를 태워 차에 불을 붙이려 했다.
◆소방청 “주폭에 3년간 660명 소방관이 울었다”
최근 3년간 무려 660명의 소방관이 주취 폭력 등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윤재옥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소방관 폭행피해 관련 현황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3년간 모두 660건의 소방관들이 업무중 폭행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결과는 윤 의원의 요청으로 소방청이 총 4만7365명의 전국 소방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다.
특히 가해자별 현황을 보면 553건이 술에 취한 주취자로부터 입은 폭행으로 드러났다. 또 사고피해자로부터 53건, 사고피해자 가족으로부터 12건 등이었다.
피해유형별로 보면 대부분인 644건이 신체폭력이었고, 16건만이 언어로 인한 폭력이었다.
즉 통계를 종합하면 3년간 4만7365명의 소방관들 중 660명이 주취자들로 인한 폭력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최근 소방관과 경찰 등 일선 현장의 공무원들이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주취자 폭력으로 인해 인력낭비가 심각한 수준으로 왔다”며 “공무방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제도적 대처와 공권력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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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낮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20일 현장대응단 구조 2대장 정윤태 소방위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대원들과 함께 걷고 있다.
◆징역은 고작 44명, 대부분 벌금과 집행유예
소방관에 대한 폭행·폭언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고 최근 4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소방관을 폭행한 주취자들에 대한 처벌은 약한 것으로 드러나 소방대원을 폭행·협박한 주취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기본법 제50조 제1호’는 출동한 소방대원에게 폭행 또는 협박을 행사해 화재진압·인명구조 또는 구급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윤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방활동방해사범 형사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총 453명이 소방활동을 방해해 처벌을 받거나 사건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실제 징역형에까지 나아간 사람은 44명에 불과했다. 194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집행유예가 94명, 기소유예가 21명이었다. 이어 무혐의가 4건, 불기소처분이 2건에 불과했다.
진행중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고작 11%만이 소방관을 폭행하는 등 업무를 방해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소방기본법 뿐만 아니라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는 구조·구급활동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한다고 명시돼 있고, 소방당국도 폭행방지를 위해 구급차 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구급대원들에게 웨어러블 캠도 배부했지만 폭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취자들의 경우 형의 감경을 통해 위와 같이 실제 처벌이 약하다 보니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상습 주취 및 폭행 경력자에 대한 별도의 정보 등록·공유 등을 통한 관리 대책 등도 필요하다.
“묵묵히 내 할일을 한다는 소명으로 일했고,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는 소방관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하지만 최근 선배들의 안좋은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속상합니다. 드러나진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저희 소방관들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울의 한 소방서 구급대원으로 근무중인 한 소방경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국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있을까.
소방관 초임봉급을 기준으로 교원직, 연구직, 지도직, 전문경력관 봉급의 나군, 가군, 헌법연구관보다 초봉이 적다. 9급 행정직 공무원보다 9만원 정도를 더 받는다.
그러나 계급이 한 단계 더 많은 소방관은 퇴직시 일반행정직 공무원보다 보수가 적다. 일반행정직은 9단계, 소방직은 계급이 10단계로 상대적으로 한 계급이 더 많은 소방관의 경우 퇴직 시 일반행정식 공무원보다 낮은 계급으로 퇴직할 가능성이 높다.
초과근무수당에서는 어떨까. 소방관의 초과근무 수당은 기본금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타 직종보다 시간당 고작 150원 정도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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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생명을 담보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다한 소방관들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2011년 7월 고양이를 구조하다 순직한 고 김종현 소방관은 인명구조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가 3년간 유가족의 법정 다툼 끝에 겨우 유가족의 이의를 받아들여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2014년 고 김범석 소방관은 혈액육종암 선고를 받고 7개월 만에 사망했다. 하지만 국가는 “업무와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며 거절했고 유족은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