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차. 남편이 이상하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아파트 옆 단지 아주머니의 주선 덕이었다. 남편은 웃음기 많고 상냥했으며,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곤 했다. 6개월 간의 연애 끝에 나와 남편은 결혼에 골인했고, 우리는 평범하고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맞이했다. 아침이면 언제나 나는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남편을 깨워 아침밥을 먹이곤 한다. 남편은 점심 무렵이면 잊지 않고 '사랑해.'라 문자를 보내곤 한다. 퇴근 무렵, 우리는 다정한 키스를 나누며 재회를 만끽하곤 한다.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으리라. 남편과 내가 서로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요즘, 나는 그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 남편이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이상해졌다. 퇴근 시각이 점차 늦어졌으며, 밤마다 내 옆자리를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심지어 여태까지 그런 적 없던 양반이 휴대폰에 잠금을 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닦달에 남편은 어설프게나마 해명했다. '그저 보이고 싶지 않은 어플이 있어서 잠궈놓은 것 뿐이야.' 라 말이다.
여자라도 생긴 것인가? 나는 의부증에 걸린 양 혈안이 된 채 남편의 메신저에 접속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회사 동료들과의 업무 대화들만이 존재할 뿐. 휴대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자 메시지, 통화 기록 모두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그럼 대체 이 갑작스러운 기행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이러한 나의 고민에 주부 사이트 내의 여자들은 별스럽지 않다는 듯 답변해주었다. '결혼 1년차면 슬슬 본성을 보일 때죠.' '내버려두세요. 남편도 숨 쉴 틈이 필요하잖아요.' '유부남들이 결혼 1년차면 보이곤 하는 전형적인 현상이에요.' 등...
별일 아닐거야. 나는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남편의 기행은 더욱이 정도가 지나쳐졌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중얼거림에 나는 부스스한 눈으로 잠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게 무슨 소리지? 두려움에 몸을 떨어젖히며 거실로 다가갔다. 어둠 속, 그 곳에는 남편이 있었다.
'...트에...올라갈거야. ...를 받을거야.'
부두 주술이라도 내뱉는 양 웅얼거리며 남편은 무언가로 제 손목을 내리치고 있었다. 경악에 질린 채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커터칼이었다. 남편은 날카로운 커터칼로 제 손목을 내리 긁으며 자해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사이, 나의 화장대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기까지 했다. 산산조각난 스킨병, 가루가 되어버린 팩트, 말라 비틀어진 마스카라... 의도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화장대 거울에는 립스틱으로 괴상한 문장을 적어놓기까지했다.―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휘갈겨 쓰여져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남편의 필체였다.― 이게 대체 무슨 노릇인가. 나는 그 엉망인 광경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넋을 뺄 도리밖에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항문이 파열된 강아지, 이웃으로부터의 신고, 괴상해진 말투... 남편의 기이한 행각에 대해 열거하자면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으리라. 계속되는 남편의 만행에 나의 상상력 또한 한없이 뻗어갔다. 사이코패스, 정신병자, 살인사건... 우리 남편이 혹여 그런 것들과 연관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공포스러웠다. 견딜 수 없었다. 기어코 나는 남편이 자주 바라보며 섬뜩히 조소짓곤 하던 사진―이는 괴상한 형상의 동물, 남자가 피를 쏟아내는 광경이 현상된 사진들이었다.―을 들고 정신과를 찾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신과 의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런 후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진단내렸다.
'요새 사회에 자주 문제시 되곤 하더군요. 보호자 분들이 자주 찾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측에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내 분께서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도닥이는 수 밖에 방법이 없어요.'
그리하여 나는 결심했다. 남편을 설득시키리라.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 또한 나를 사랑한다. 남편의 기괴한 성향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교정하리라. 정신병자면 어떠한가.
남편이 비밀스러운 행동을 할 때 급습할 목적으로 퇴근 후의 그를 미행했다. 직후 그가 향한 곳은 회사 근처의 PC방. 남편은 38번자리에 앉아 정신없이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마치 샤이닝의 한 장면인 양 광기어린 얼굴을 한 채.
나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다, 당신!"
남편이 나를 바라본다.
모니터 위, 새겨진 기괴하기 짝이 없는 텍스트의 향연. 그 안의 것들을 읽어내는 순간, 나의 머릿 속을 두들기는 감정은 배신감과 분노 뿐.
"여보 그런게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문득 나는 이혼 절차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일간 베스트 저장소
제목 : 우리집 보징어년 능욕한 ssul 풀어본다 일게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