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성인이를 보내며…….
쓸쓸한 가을바람과 함께 오늘 우리는 우리시대의 슬픈 아이 홍성인을 바람처럼 떠나보내려 합니다. 하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었던 성인이를 다시 하늘 저편으로 돌려보내려합니다.
제 기억 속의 성인이는 모든 곳에 있지만 그 어디에도 이제 성인이는 없습니다. 처음 성인이의 손을 잡고 갔던 유치원, 입학식, 운동회, 소풍……. 제 가슴, 제 온 몸은 그 아이의 기억으로 이렇게 생생하지만 그 아이는 이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저 먼 곳에 있습니다. 손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아이는 이제 신기루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무심한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무심하기만 한 세상을 향해 이 힘없는 아빠는 성인이가 못다 토해낸 울분을 대신 하려 합니다.
그 날도 우리 가족은 바쁜 아침을 보내며 성인이는 학교로 엄마와 아빠는 회사를 향했습니다. “엄마,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이 말이 우리 성인이로부터 듣는 마지막 말일 줄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여러분들과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같이 웃고 공부해왔던 성인이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이 공부하던 반 급우에게 처참하게 맞아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홀로 선 나약한 한 아이의 공포, 인간적인 모멸감을 생각하면 저는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 쓰라린 아픔을 생각하면 온 몸이 녹아내리는 이 암담함에 저는 할 말을 잃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아직 번데기 속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아이였습니다. 언제나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학교 교실에서 성인이는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비명에 갔습니다. 아이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학교가 성인이에게는 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이었던 것입니다. 성인이 말고도 비명을 질러도 들어줄 사람 없는 황량한 벌판 같은 학교 교실에 혼자 버려진 아이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학교 폭력 추방을 부르짖기만 했던 우리 사회와 언제나 형식적인 대책으로만 일관하는 학교와 친구가 맞아도 자신이 아니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학우 여러분, 성인이가 폭력 앞에 쓰러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학교 폭력 앞에 홀로 섰던 희생자 우리시대의 슬픈 아이 성인이의 죽음이 더 못 견디게 가슴 아픈 건 아직도 남아있는 제 2, 제 3의 성인이가 우리 옆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성인이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신성해야하고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학교가 더 이상 폭력으로 물들게 방치해선 안 됩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이전의 야만적인 시대가 아닙니다. 이 평화의 시대에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 폭력으로 멍들고 심지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야만적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나 방송 부원으로서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던 성인이는 이제 제 한 몸을 희생해 우리 시대의 아픔과 병폐를 또 우리 아이들의 소리 없는 피맺힌 절규를 대신 전해주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죽음으로 대신한 외침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통 받고 신음하는 학교 폭력의 진상을 더 이상 감추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진상을 밝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학교당국, 교육당국, 우리 사회에 강력하고 구체적인 학교 폭력 추방대책을 하루빨리 세울 것을 촉구합니다.
성인아!
폭력 앞에 무참히 꺾여버린 너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너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않고 기억하마. 이승에 미련을 두지 않게 너를 훌훌 떠나보내야겠지만 나는 너를 놓을 수가 없구나.
내 아들 성인아! 부르고 또 불러도 아쉬운 내 아들 성인아!
너는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 아빠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성인이란다. 너는 우리 생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 말을 너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게 한이 되는 구나.
성인아!
힘들었던 학교생활 잊고 하늘나라에서라도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너의 못다 이룬 꿈 펼쳐다오. 다음 세상에 다시 니가 우리 아들로 태어나 주길 기원 하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다시 기회를 준다면 다시는 너를 혼자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게 하지 않으마. 성인아 사랑했단다. 앞으로도 영원히 너를 사랑하마. 다음 생을 기약 할 수밖에 없는 이 힘없는 아빠지만 너는 내 인생 전부였다.
부디 좋은 곳으로 잘 가기를 엄마와 함께 기도하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우리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밝은 별이 되면 좋겠구나. 밝게 빛나는 밤 하늘 별을 보면 영원히 널 기억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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