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부분에 대해서 조사하다 보니까 참.. 황당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당시 기원전 1700년대에는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을 믿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고서
그나마 그 시기에 가까운 시기에 천문을 관측한 자료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다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찾아서 분석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고대 국가에서 지동설을 믿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게 그 국가의 주류로 잡으려면 최고 권력자가 그것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지동설을 주장해도 절대 권력기관이었던 당시 교황청이 허락해주지
않아 종교재판까지 받아 죽을 뻔했던 갈릴레이 꼴이 될테니까요..
당시 고대사회의 속성을 조직의 우두머리가 곧 왕이요 종교적 지도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지동설을 믿고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당시에 지동설을 믿었다면 천문관측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으로 농경산업이
발전해 세력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상이 아유사태님의 글과 제 반론에 대한 댓글입니다.
첫 글에서는 "1700년대에는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을 믿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죠.
단기고사에는 9행성과 지동설이 언급돼 있습니다. 이걸 반론하자 댓글로
당시 고대사회의 속성을 조직의 우두머리가 곧 왕이요 종교적 지도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지동설을 믿고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했습니다.
단기고사에는 "임금이 이것을 받아들여 조선 역서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단기고사에서는 지동설을 확실히 받아들여서 아예 단군조선 전체의 이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아유사태님의 댓글에는 그게 전혀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상황으로 미루어 과거의 기록을 필사하면서 분명 왜곡되어진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기서도 "지동설을 단기고사에서 믿은 건 왜곡이다"라는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단기고사는 발해 때 나온 책이고, 환단고기는 고려 때 나온 책입니다. 당연히 단기고사가 더 옛날 역사서니 환단고기를 지을 대 단기고사를 참고했겠죠.
환단고기에만 나온 일식 기록은 단 하나이고 이것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논문을 보면 알 겁니다. 다른 기록들은 모두 단기고사와 일치합니다. 이것은 환단고기가 단기고사를 참고했다는 것입니다.
아유사태님의 글에는 이런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환단고기가 단기고사를 참고할 때 오성취와 일식만 참고하고 나머지는 후대에 왜곡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유사태님의 글에는 이런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환단고기-단기고사의 연대를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아유사태님은 지금은 오성취 얘기를 하고 있으니 다른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성취는 박창범 교수 말대로 이 둘이 진서라는 가정 하에, 즉 옳은 얘기라는 가정 하에 다루어야 됩니다.
하지만 아유사태님은 단기고사의 천문학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천문학 기록을 의심한다면, "다른 건 틀려도 천문 관측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는 박창범 교수의 전제부터 의심해야 됩니다. 당연히 오성취루 얘기는 이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아유사태님은 "하나의 질문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유사태님이 단기고사와 환단고기의 내용을 "모른다"고 결론 낼 수 있습니다.
답변을 요구합니다. 모른 겁니까, 무시한 겁니까? 모른 거라면 저는 이 토론 자체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환단고기-단기고사의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면서 그 내용을 모르면 어떻게 하죠? 오성취루가 1734년이라고 한 것도 모두 환단고기-단기고사 내용을 분석해서입니다. 그 내용을 모르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무시한 거라면 바로 "환단고기-단기고사의 연대 검증"으로 토론을 넘길 것을 요청합니다. 다른 건 모두 무시하면서 오성취만 맞을 거라는 전제가 틀렸으니까요. 지금 얘기하는 확률 얘기는 모두 여기에 딸린 것이지 주가 아닙니다.
무시한 거라면 주로 돌아가죠. "환단고기-단기고사의 연대 검증"으로요. 하지만 "오성취"는 무시하지 않고 "천문학 기록"만 철저히 무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해명하셔야 됩니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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