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엔 아직 그분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뭐 개인의 대한 호불호는 취향이니 감히 어떻게 왈가왈부 하겠습니까? 세계사부분까지 쓰기엔 너무 길기도 하고 우선 3.1절 관련 뻘글입니다.
1. 몇년전 설민석선생님의 룸사롱, 마담등등 자극적워딩에 대해 한말씀 드립니다.
1)태화관은 기생집인가??
태화관은 본래 순화궁 자리였고 병합이후 이완용이 별장으로 쓰던 집으로 이등박문과 이완용의 을사늑약을 밀의, 고종 강제퇴위 음모, 강제병합 준비가 이집에서 이뤄졌습니다. 이에 상징적으로 망국의 밀의가 이뤄진 자리에서 독립을 선언한다는 의미로 일전의 모든 매국행위를 무효화한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신석호, ‘(개설) 3·1운동의 전개·3·1운동 70주년 기념논집’)
마담이라 표현한 주옥경은 기생출신이긴하나 이미 은퇴후 1916년쯤 손병희와 결혼한 상태로, 당시 민족대표간 연락과 안내를 담당했습니다. 이후로도 여성운동 계몽운동에 힘쓴 인물입니다.
+태화관 주인 안순환은 본래 궁내부, 즉 궁중 연회의 최고 주방장을 지낸 사람(식객의 대령숙수랄까요?) 1910년 망국과함께 벼슬을 사퇴하고 명월관과 태화관을 차린 배일성향의 사람입니다 (‘고하 송진우전기’)
3. 민족대표 33인 의 '변절'에 대한 오해가 종종 있네요.
33인 중 변절자는 3인 독립선언문을 쓴
최남선까지 쳐주면 34인 중에 변절자는 4인 으로 거의다 변절 했단 말은 틀렸습니다. 다른게아니라 틀렸습니다.
그나마 최린은 광복 후 자길 돌로쳐죽여달라고 진심으로 참회했고 정춘수는 적극친일이 고문에의해 굴복수준의 소극적인 친일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그렇다고 변절이 반역죄라는 대전제가 변하진않습니다.)
3~4인 외엔 대부분 독립운동하시다 순국, 옥고, 망명 등으로 고생하셨던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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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 뒷북글을 썼네요.
개인적으로 설선생님의 스타일은 감정적 호소력을 위해 야사와 정사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거나 , 문헌의 교차검증이 안되거나, 주관적 사견을 강의에 올리는 것에 대한 경계가 둔감한 편으로 보입니다.(물론 다 그렇지는 않죠.)
역사는 감정을 억누르며 단정을 지양하며 천천히 곱씹어야하는 부분과 분명히 햇갈리고 노잼인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 미지의 영역이 너무 많기에 그렇습니다. 과하게 단정짓고 단순화하고 희화화하는 것은 양날의 칼입니다. 앞으로 발견될 새로운 사료수용에 걸림돌입니다.
민족대표 33인이 거의 모두변절 했다는 둥 도시전설급 루머를 '강단'에 들고 올라오시다니 경솔했다고 생각합니다. 3.1운동의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우 분명 있지만 룸싸롱 마담이 dc해줘갔다느니 라는 소릴 함부러 감히 교육자라는 분이 '강단'에서 말해선 안될부분입니다.
이건 견해가 '다름'이 아니라 사실 관계가 '틀린'겁니다.
물론 지금의 대세가되는 사관도 새로운 고고학적 사료나 문헌의 발견으로 바뀔수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감정적, 단정적 워딩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교육자라면 더더욱 그래야만합니다.
설선생님은 분명 탁월한 강사입니다. 시험에서 100점맡게 해주는 기술과 호소력과 입담의 능력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부러운 달란트입니다.
그러나 자칭 '한국사전문가'로 소개하는건 다소 낯뜨겁습니다. (영역은 다르나 백종원씨는 쉐프라 부르면 손사래를 치며 스스로 외식경영자라 칭하는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만 부족한 제 생각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