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종주국 영국. 그중에서도 잉글랜드의 The Premireship은 이탈리아,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리그다. 더 이상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꿈의 리그.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는 그곳에 두발을 디딜 그날을 기다리며 척박한 그곳에서 희망의 슛을 날리는 한 청년이 있다.
신은석.
그의 꿈은 The Premireship에서 경기를 뛰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2000년 월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해서 잘 사는 집안의 소년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세차장에서 일하셨던 부모님을 도와드리며 생활을 해야 했던 한국 생활이었다. 돈도 없이 오로지 축구에 대한 열정과 The Premireship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 순간은 거의 대책없는 수준의 대단한 모험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축구부 회비조차 내지 못할 정도 였지만 아무런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머지않아 발을 디딜 꿈의 무대에 서기 위한 과정이라고 여기고 웃으며 부모님을 도와드렸던 하루하루였다. 시련없는 성공은 있을수 없으므로...
어려서부터 장난감이라고는 축구공 밖에 없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던 이 소년은 축구선수가 되기위해 경기도 안성에서 서울 영희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러나 이사온 뒤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가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실직하시고 난 뒤에는 가족 부양과 병간호를 어머니 혼자서 일정한 수입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 축구를 더이상 계속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고민 속에서 어쩔수 없이 축구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생활하던 그를,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영희 초등학교 축구팀 코치의 배려로 다시 그의 발에는 축구화가 신겨지게 되었다.
몇몇 대회해서 재능을 드러내며 우승팀의 주전멤버가 되기도 했던 그는 배재중학교로 진학을 하며 축구인생에 있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자율적이며 창의적인 축구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배재중학교로의 진학은 좀더 수준높은 창조적인 플레이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고, 최고의 무대라는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꿈을 꾸게 했던 것. 그 꿈은 백번 생각해도 집안 형편상 말도 안되는 꿈이었으나, 주위의 도움과 The Premireship을 향한 의지로 어렵사리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그의 가족과 그에게 허용된 기회는 갖고있던 돈 300만원어치에 불과했다. 영국에서는 한달 생활비도 안되는 돈만으로 몸을 실은 비행기 안에서 소년은 오로지 꿈이 펼쳐질 신세계에 대한 기대만 생각했다. 이미 한국에서도 지긋지긋하기까지했던 현실의 벽을 능히 헤쳐나왔기 때문에, 영국에서의 벽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지할 곳도, 돈을 벌 수단도,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그와 가족들만 남았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다. 살아야 꿈도 이루어 낼 수 있으니까... 아직 어린 그에게 영국에서의 첫발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고통의 쓴맛이었다. 애초에 무리한 일이었다.
영국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이 펼치기 시작한 세상은 장미 빛 꿈보다 절망적인 현실로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말조차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영국은 어름장같이 차갑기만 했다.
그러나 궁할 때엔 행하고 행하면 통한다라는 속담처럼 어렵사리 한인교회의 도움으로 한인 밀집 거주 지역인 뉴몰든에 안착을 하고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들을 하숙시키며 그 하숙비로 근근히 생활을 해 나갔다. 먹고자는 수준의 단순한 생활은 이제 가능해졌지만 체계적으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축구를 해야 했으나, 축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동아리나 다름없는 학교내 축구클럽을 통해 대회에 나가는 것이 축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기회였다. 한국에서 축구 유학을 온 다른 선수들이 보통 현지에서 Trial(입단 테스트)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6개월정도. 점점 영국생활에 적응이 되어 갈수록 자신감도 붙었다. 학교에서 하는 축구 묘기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계기로 친구도 늘었다.
그렇게 악천고투하며 기회를 노리던 그에게 우연히 정식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찬스가 찾아 왔다. 학교에서 출전한 대회에서 계속해서 골을 넣으며 두각을 나타낸 신은석 선수가 뛰게 된 대회의 결승전이 풀햄에서 열렸다. 결승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좋은 활약을 보인 그에게 대회를 주최한 Fulham FC는 6주간의 테스트를 제의한다. 집안상황이 매우 안좋은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테스트를 받았고, 2003년 5월 마침내 Fulham Academy U-16 계약을 하며 소년의 꿈은 한단계 현실로 가까이 왔다.
현재 풀햄은 U-17, U-19의 21명의 선수들이 유스클럽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영국내 다른 톱 클래스 구단 유소년 팀과 미래의 The Premireship이라고 할 수 있는 리그 경기를 매주 토요일 아침에 하고 있다. U-17에 소속되어 있는 신은석은 그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로서 팀의 주목받는 선수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풀햄 유소년클럽에서 7시즌동안 유스코치를 하고 있는 David Burke는 신은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데이빗(신은석의 영어이름)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그의 학교팀이 풀햄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 올랐을 때입니다. 결승전에서 그의 재능을 발견한후, 그는 우리와 훈련을 함께 하게되었죠. 그는 같은 레벨의 다른 선수들 보다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양발을 다 쓰는 환상적인 테크닉과 매우 빠른 스피드를 갖고 있습니다. 올시즌에 우리는 그를 여러 포지션에서 뛰게 하여 그의 체력과 수비 능력의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클럽내 같은 레벨의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는 신은석. 그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꿈에 앞서 미래를 보고 있다고 한다.
"풀햄에서 열심히 해서 먼저 제 이름을 알리고 싶어요. 한국 국가대표도 하고 싶고요. 청소년대표... 지금은 애들이랑 기량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풀햄 선생님들하고 이야기하며 먼 미래를 보고 있어요. 사실 한국에서 유명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리미어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가난한 한국선수들 영국으로 데려와서 유학도 시켜주고 싶구요. 하나 더 있다면 영국에서 클럽을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나만의 클럽. 영국의 선생님들로 한국 선수들을 가르치고 키우고 싶은거죠. 당장은 긴 안목에서 풀햄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는게 가장 중요하지만요."
Craven Cottage(Fulham의 홈구장)에 두발을 디딜 그 날을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있는 17세의 청년 신은석. 아직 배울 것은 많고, 지독한 생활고가 가족을 짖눌러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힘들지만 고통스러운 세공 과정없이 화려한 보석으로 태어나는 원석은 없듯이 그와 그의 가족 앞에 놓인 힘든 현실이 앞으로 프리미어쉽에서 실현될 그의 꿈에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외축구방 - Chelski 님이 올려주신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