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전 아유사태님의 글 중 일부를 반박한 것일 뿐인데 왜 욕을 먹어야 하지요? 그리고 환단고기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하고 쓴 글인데 왜 욕을 먹어야 하죠?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아서 따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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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차 범위라는 것은 +-로 따집니다. 하나의 수치에 있어서 2가 더 많은 게 오차라면 2가 더 적은 것도 역시 오차고, 이것이 오차 범위입니다. 박창범 교수가 오성 직렬의 1년 전을 오차로 본다면 1년 후도 오차로 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오차 범위입니다.
20년은 20년 주기로 일어나는 것이고, 저는 이것이 "직렬"이 아닌 단순 "집결"을 적은 거라고 보았기에 20년에 한 번 일어날 확률인 1/20, 여기서 박창범 교수의 오차 범위가 플러스 마이너스 1, 즉 3년이었으니 3/20으로 잡은 것입니다.
이게 왜 말장난이죠?
2. 5세 구을 때의 기록 다시 올립니다.
15년에 감성관 황포덕(皇甫德)이 임금께 아뢰기를 “제가 천문(天文)을 관측한 지 50년이 되므로 천체의 대강을 추측하였습니다. 천체 중에 제일 큰 것은 북극성같은 항성(恒星)입니다. 그 다음은 태양의 종류이며, 다음은 수성,금성,지구성(地球星),화성,목성,토성,천명성(天明星),해명은성(海明隱星),명성(明星)같은 행성이있어 태양을 중추(中樞)로 삼아 회전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역시 태양계의 하나인 행성입니다. 해는 땅의 온도를 조화(調和)하여 만물의 생장(生長)을 돕는 것이며, 지구의 외각에는 붉은 막이 포위하고 있어, 지면의 각종 기체를 보전함으로써 기체가 발산하지 못하고, 그 범위 안에 있어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바람과 구름도 되고, 우박도 되고 번개도 되고, 서리나 눈도 되어, 사계절이 서로 달라집니다. 그래서 지면에 사는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당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으니,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하면 음양(陰陽)을 따라 사시(四時)를 좇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음양을 따라 사시를 좇지 못하면, 백성이 농사절기를 맞추지 못하여 수확이 없어 농민이 굶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역법(曆法)을 정하시어 우리나라 기후에 맞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인 줄로 압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그렇다 하시고 국역(國曆)을 새로 만드니, 이것이 조선역서(朝鮮曆書)의 시작이다.
50년간 천문관측만을 한 신하의 말을 받아들여 "역서"를 만들었습니다. 역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군주였던 단군이 지동설과 9 행성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아유사태님 말씀대로 "알았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고대 단군조선에서는 지동설을 믿고 있었던 겁니다. 군주 단군이 인정한 건데요.
13세 흘달 때 역시 빛이 태양의 구성과 빛이 7가지로 구성돼 있고 다 흡수되면 검은색이 되고 다 반사되면 흰색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 단군 흘달의 말입니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옳은 말이라, 선생은 참 천고의 성인(聖人)이라.”하시고 궤장(几杖)을 내리셨다.]
모두 단기고사에 있는 내용입니다. 단군이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단군이 인정했으니 당시 단군조선에서는 이것들을 정설로 채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군조선 시기의 역서는 지동설과 9행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이것을 의심하는 것이라면 아유사태님 말씀대로 박창범 교수의 얘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부정한다 하나 아유사태님의 말씀을 듣고 일단 맞다고 전제하고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요.
이것을 의심하는 것인가요? 의심하지 말고 오성취 현상만 얘기하자고 한 것은 아유사태님입니다. 의심하면 박창범 교수의 논문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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