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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썰전을 마지막으로 유시민 작가가 정치평론의 세계를 떠난다고 합니다.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김어준 카르텔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그들을 대체하거나 상대할 스피커의 용량이 떨어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유시민 작가가 정치평론에서도 손을 떼겠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유시민은 노빠∙문파에게 등대 같은 존재였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유시민이 지난 주에 이재명을 작심하고 비판하고, 비문이 민주당 대표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을 때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었는데ㅡ어용지식인이라 해도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써 유시민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기에ㅡ슬픈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되나 봅니다. 유시민이 썰전을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총선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랐는데, 저만의 희망이었던 모양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청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어용지식인을 자임했던 유시민은 그의 대체 인물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빠∙문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최대 스피커를 잃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비트코인 광란을 일거에 정리했던 것에서 볼 수 있었듯이 문프의 어용지식인으로써 유시민의 능력과 영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었습니다.
말이 정치라는 의미(책임이 따르는 말)에서 노통의 토론 능력을 능가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만, 그와 대등한 수준에 이른 유일한 인물이 유시민이라는 점에서 김어준도 유시민과는 부딪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의 양과 깊이에서 차이가 날뿐더러, 사고와 성찰을 언어로 풀어내는 데도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김어준은 유시민과 충돌 나는 발언은 극도로 회피해왔습니다. <블랙하우스>를 시작하며 '유 작가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김어준의 비아냥을 무시할 수 있었던 것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질적 차이 때문이었습니다(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자라는 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김어준이 질문을 던지는 것에 집중했던 것도 그 외의 것에서 유시민을 따라잡는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문파들은 <정치신세계> <닥표간장> <백반토론> <뉴비씨> 등이 선전하기를 바라고 그들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유시민의 대체제로는 많이 약하다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다 보니 노빠∙문파는 유시민을 대체할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는 자기반성적 성찰에 이르게 됩니다.
문프가 워낙 잘하고 있고, 지지율이 난공불락의 수준에서 박스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문파의 집단지성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에서 그를 보내고도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사람을 키우는 점에서 많이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정치권 주변에 제대로 된 지식인이 없는 현실도 문제지만 젊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해 정치평론의 수준을 높이는데 노력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기득권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공적 공간(시사라디오, 거대 팟캐, TV 등)으로의 진입로를 40대 후반 이상의 꼰대들로 채우는 것입니다. 정치평론과 정치담론의 세계를 꼰대들로 채우면 젊은 피가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게 됩니다.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꼰대들의 세상에서 제2의 노통과 유시민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혁명에 성공하면 늙은이들이 기어 나와 권력을 잡는다’는 로렌스(영화 <아리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지혜의 일곱기둥』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서전을 남겼다)의 탄식도 기득권 위주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당정치도, 부정한 재벌체제도, 초국적기업의 압도적 네트워크도 기득권의 높은 벽을 난공불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도 어떤 면에서는 기득권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기득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청춘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희망이 현실의 탐욕에 짓눌릴 때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해집니다. 검색하는 지식과 경험 없는 성찰에 한계가 있듯이 꼰대들의 기득권 사이에서 대들고 깨지고 능가하는 청춘이 많을 때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기술적 진보가 항상 선이라는 개념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뒷세대가 앞세대보다 항상 잘살아야 한다는 신화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영육을 지닌 인간의 지적 발전에는 경험이라는 절대적 수단이 수반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칸트처럼,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았으면서도 누구도 이르기 힘든 선험적 종합판단에 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경험을 통한 성장은 진화론만큼 절대적 요소입니다.
유시민을 대체할 만큼 역량을 가진 청춘들이 나올 때까지 문파의 집단지성이 짊어져야 할 역사의 무게가 더욱 커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역량을 믿지만 꼰대들과 수준 미달의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평론과 시사프로그램을 물갈이 할 수 있을 때까지 문파 집단지성의 역할이 더욱 요구됩니다. 유시민 자리에 노회찬이 들어서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일인이기에 더욱 더 그러합니다.
유시민 작가님,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이 있었기에 노통의 부활도 문프의 성공도 가능했습니다. 이별에 관한 한용운의 시를 인용하지 않는다 해도 작가님의 떠나는 뒷모습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우며, 만날 때 헤어질 것을 걱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보내드림에 쿨하려 합니다, 누구보다도 힘겨운 삶을 살았으면서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웠다’고 노래했던 천상병 시인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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