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연 앞에서 벌어진 극우단체 집회, 막말-욕 오가는 천태만상
안진걸 기자
박정희바로알리기모임 등 우익단체 회원 10여명은 9일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연구소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친일파 제1차명단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근 <코리아포커스>는 극우단체들의 집회 및 시위 현장을 수차례 보도했다. 최근 이들의 시위에는 주장의 정당성 유무를 떠나 ‘욕설과 막말이 넘친다’는 특징이 있고 시민사회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9일 오후 1시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있었던 극우단체들의 집회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최근 극우단체들 행동 양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본보는 이날 집회현장을 자세하게 재현한다. 집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가감없이 보도하면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편집자주)
9월 9일 1시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극우단체들의 민족문제연구소 해체요구 집회가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원래 이들은 청량리 경찰서에 제출한 집회 신고서에 20년동안 집회를 신청했으나 바뀐 집시법 규정에 의해 집회신고는 ‘한 달’ 동안으로 수리됐다.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집회장에는 ‘박정희바로알리기모임’ 과 ‘새로운물결21’ 등 극우성향의 단체들 회원 10여명이 모여들었다.
도착하자마자 내건 펼침막이 눈에 띄었다.
“역사를 날조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사이비 지식인들의 집합소 민족말살연구소는 즉시 자폭하라”, “민족원흉은 독립군으로 둔갑시키고 민족은인은 친일조작 매도가 웬말이더냐”
주변을 살펴보니 극우단체들의 행사장에 단골 출연자인 ‘독립신문’의 신혜식 대표도 나와 있다. 손 펼침막을 들고 이날 1인 시위를 먼저 시작한, 평소 ‘돌출행동’으로 유명한 ‘활빈단’의 홍정식 대표에게 물었다.
- 펼침막에 쓰여진, 민족원흉이 독립군으로 둔갑된 사람이 누구죠?
“기자입니까, 혹시 좌파매체 기자인가요?”
-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그렇게 주장하시니까 누군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나중에 말해주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만주군 장교’였던 사실은 인정하시던데요. 왜 친일조작이라고 하는것이죠?
“그 분은 민족을 위한 리더십 함양을 위해서는 군이 적격이라 군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것일 뿐이에요”
집회장에는 경찰들이 나와 있었다.
- 이 단체들이 집회를 20년 동안 벌이겠다고 신고했다던데 사실인가요?
“예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신고 수리는 규정에 따라 한달만 해줬습니다.”
- 좀 황당하지 않나요?
“당연 황당하죠. 예전에도 이런 경우들이 가끔 있기는 했습니다.”, “집시법에 허위집회신고에 대한 제한이 없고, 허위신고라는 것을 따지기가 애매한 면도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 난입이 우려되는데요?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 10여명이 저렇게 크게 엠프를 틀어놓으면 되나요? 바뀐 집시법 규정에 저촉되는 것 같은데요.
“주택가, 영업장 옆에서는 75데시벨 이하로 집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렇게 크게 틀면 분명 위법이지요”
지나가다가 집회를 잠깐 구경하던 시민 김성일씨(38)에게 소감을 물었다. “좀 어이없네요”, “어떻게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들을 민족의 은인이라고 우기는 거죠?”, “이 사람들 플래카드나 행동들이 여기 연구소에게는 매우 위협적이겠는데요.”
이 때 집회장 바로 옆에 있는 현대자동차 대리점의 관계자는 “영업소 앞을 가로막고, 소리는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고... 이건 너무한다”라고 하소연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및 직원들도 여럿이 나와서 걱정스럽게 집회를 지켜봤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저 사람들 보고 있으니 시대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박한용 연구팀장은 “사무실 안에 귀중한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데, 난입할까 걱정”이라며 “경찰은 왜 이렇게 적게 온 것이냐”며 불안해했다.
또 위금남 연구원은 “우리는 친일파만 연구해서 발표한 것인데, 저 사람들이 와서 저렇게 하니 겁이 난다”고 두려운 표정이었다. 서우영 기획실장은 “안두희의 후손들이 안두희 후손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친일파를 옹호하는 저 사람들의 후손들도 결국 조상인 저들을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1시부터 모여들었지만 정식 집회는 오후 1시 40분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이 마련한 피켓에는 “박정희 매도하는 패륜아들의 집단, 민족말살연구소는 자폭하라” “사이비 지식인 임헌영, 윤경로는 무릎끓고 사죄하라” “연구소를 박살내자”등 ‘살벌한’ 문구들이 역시 눈에 띄었다.
집회는 이들의 성향을 반영하듯이 각종 군가와 새마을노래 등 60,70년대 노래를 크게 트는 것으로 시작됐다. 10여명의 참가자들은 손을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차례로 진행했다.
주변에는 민족문제연구소 난입을 우려해 달려온 연구소 회원들 3-4명이 보였다. 한 회원은 “너무 걱정돼서 달려왔다.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워낙 막하는 사람들이라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 '살벌한' 표현이 적힌 피켓들
최근 극우단체들의 집회 현장엔 '욕설과 막말'이 난무한다. 9일 민족문제연구소 앞 집회장의 극우단체 피켓들에는 '살벌한' 구호들이 눈에 띈다. ⓒ 허태주/코리아포커스
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박정희바로알리기모임’ 김동주 대표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하던 윤봉길, 안중근 의사처럼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몇이 안된다”면서 “사람이 적게 참여했어도 괜찮다”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구호를 제창했다.
“정치 모리배, 학자의 탈을 쓴 망나니들의 집합소를 즉각 해체하라”, “이를 무시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현정권과 연구소의 책임”, "연구소를 박살내자“, ”역사청산 때문에 경제파탄“ 등의 구호가 울려 펴졌다.
이어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민족문제를 연구한다면서 왜 북한은 가만히 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일제 36년간 어쩔 수없이 행해졌던 일까지도 모두 친일로 매도했다”면서 “연구소는 왜 이리 친북적이고 친정권적이냐”고 따져 물었다.
다음으로는 김병관 서울시 재향군인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강정구추방시민연대’라는 단체의 대표이기도 하다고 사회자가 소개했다. 그도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좌파를 척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3공, 5공은 최고의 나라였는데 문민, 국민, 참여정부가 우리나라를 낙오시켰다”, “우리나라를 인민민주주의 시스템으로 몰아간다”고 외쳤다.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좌파를 척결하자”, “빨갱이를 몰아내자”라는 선정적인 구호들이 주를 이뤘다.
집회는 끝나자 김동주 대표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겠다고 연구소 건물로 진입을 시도했다. 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이 “소장님은 안계십니다. 항의서한을 주고 가세요”라고 말하자, “들어가서 꼭 만나야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방학진 국장이 “안계신다는 데도, 약속도 없으셨는데 왜 남의 사무실로 들어가려 하세요”고 만류하자 반말과 막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회에 참여한 극우단체 회원 2명이 문을 잡고 흔들며 이를 말리는 경찰에게까지 항의하며 연구소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몸으로 밀기도 했다. 이와함께 “야, 빨갱이 새끼들 쳐죽여라”, “네놈들이 바로 친일파다, 개새끼들아”, “당신들말야, 시건방지게”, “왜 이렇게 임헌영과 윤경로는 김일성하고 친한거야, 정체를 밝혀라”, “똥대가리 빨갱이 새끼들아.” 고함과 욕설이 계속 이어졌다. 몇분간 소란이 계속 됐다.
이에 방학진 사무국장이 “우리 사무실에는 허락없이 들어오실 수 없으며, 계속 막말하면 사무실로 저는 들어겠습니다”고 말했고, 결국 김 대표는 항의서한을 방학진 국장에게 주고 돌아섰다.
항의서한 전달을 마친 시위대들은 청량리역까지 행진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민족문제연구소 앞 집회는 2시 35분쯤 끝났다. 사무실내 연구소 직원들은 허탈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한 관계자는 “어떻게 독립투사(조문기 이사장)가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에 일본군 장교출신 박정희 지지자들이 와서 ‘민족말살연구소’라고 하는지 기가 막히다”며 혀를 찼다.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80)은 고령임에도 전날(본보 9월 8일자 보도 참조) 공언한 대로 사무실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 박정희 지지자가 만든 책자
이 책의 저자인 김동주씨는 박정희가 일본 만주국 장교였지만 독립군 비밀첩보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안진걸/코리아포커스
뛰어가서 행진하고 있던 김동주 대표에게 물었다.
- 집회를 내일도 계속 하나요?
“내일, 모레 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민족문제연구소 해체될 때까지 계속 할 것입니다”
- 시민들 5천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후원비로 운영되는 자발적인 민간 연구소를 해체하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요?
“이 새끼들은 개새끼들이에요. 누가 돈을 내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나왔나요? 애들은 해체도 과분해요. 분쇄시켜야 하는거에요. 어디서 시건방지게, 누구 맘대로 친일파를 발표합니까? 검증도 안 된 놈들이 모여서...”
-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은 한성대 총장이기도 하고 저명한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도 유명한 교수 등 친일파문제 연구자들이 수십명씩 참여하고 있던데요?
“그 사람들이 진짜 역사학자인지 누가 압니까? 윤경로는 학교에서 공부 좀 더해야 합니다. 아니면 내려가서 농사나 짓던지... 내가 보내준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를 읽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했는데 아마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을 것이에요. 이 놈들은 쓰레기들입니다.”
- 독립투사인 조문기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에 ‘민족말살연구소’라고 해도 되나요?
“몇 사람의 독립투사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용당하고 있는 거에요. 몇 퍼센트도 안 되는 쥐새끼들이 속닥거려서 독립투사를 이용하고, 꼬시고 있는 거에요”
-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독립투사라는 것이죠?
“만주군 장교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박정희 대통령은 독립투사들을 위한 비밀 첩보원이었어요. 김구 선생에게 일본군 내부정보를 계속 제공했지요. 그런 기록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 이 책을 제가 썼는데요, 여기 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
- 박대통령이 독립군을 위한 비밀 첩보원이었다는 주장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독립투사라면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은 안하시나요? 연구소에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여러분 계시던데요?
“그 분은 그런 것 신청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살아계신다면 아마도 호통을 치실거에요. 우리가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일어나서 인정하고 신청하고 그럴겁니다. 이미 다 밝혀진 사실입니다. 우리 뒤에는 수없이 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저런 쥐새끼들 같은 단체들은 다 없애버릴 것입니다. 말이 됩니까?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총리가 북한을 옹호하고....”
- 민족문제연구소와 유홍준 문화재청장, 이해찬 총리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요?
“특별한 연관이 있다기 보다는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 박근혜 대표가 김정일 비서를 만난 것도 문제가 되겠네요?
“아니, 그 분이야 순수한 민족적 감정으로, 필요에 의해서 김정일을 만난 것인데,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됩니까?”
- 오늘 집회에 오신 분들은 어디 소속인가요?
“박정희바로알리기모임, 새로운물결21은 제가 하는 단체고요(두 단체 다 본인이 대표라고 함) 무한전진, 나라사랑시민연대 에서도 나왔어요”
- 박사모(박근혜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과는 연관이 없나요?
“박사모와 박알모는 연관이 없어요. 우리 박알모에는 전국적으로 현재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 오려고 합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
방학진 사무국장은 박정희가 독립투사라면 왜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신청을 안했으며, 제발 독립유공자 신청해서 검증을 받아보라고 반문한다. ⓒ 안진걸/코리아포커스
김동주 대표와 헤어진 후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 집회가 끝났습니다. 소감은 어떠세요?
“측은합니다... 박정희를 독립운동가로 말하고 다닌다니.. 생존해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들을까봐 정말 걱정이 됩니다”
- ‘박정희가 독립군 비밀 첩보원이었고 김구 선생에게 정보를 지속으로 제공했다’고 주장하던데요?
“박정희가 독립투사였다면 보훈처에 제발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서 입증을 받아보시라고 해주세요... 왜 아직까지도 신청조차 못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역사를 왜곡한다면 어떻게 일본의 역사왜곡을 탓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욕설이 쏟아지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던데 걱정은 안되셨나요?
“걱정이야 좀 되지만, 저희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극히 적은 몇몇이 와서 피운 소란인데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국민들은 친일파 명단 발표를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 주로 박정희, 백선엽... 이런 사람들이 친일파에 포함된 것을 문제삼던데요.
“명백한 친일경력이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아마 그 사람들을 빼주면 잠잠할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맘대로 있는 친일기록을 누락할 수는 없지요”
- 집회를 계속 한다고 하던데요?
“집회야 할 수 있고, 자료를 가지고 공개토론도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사무실에 난입해 자료에 손댈까봐 그게 걱정입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민족문제연구소 앞 극우단체들의 집회는 이렇게 2시간여만에 끝을 맺었다.